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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Mar 12. 2024

3장. 두려움

생각하는 것을 멈추기로 했다

“치앙마이 언제가?“, ”가서 언제 돌아올 거야? “라는 질문에 나는 ”아직 모르겠어“라는 답만 했다.

왜냐면 정말 나에게 계획이라는 게 단 1도 없었다.


당장 오늘도 내 상태가 어떤지 모르겠는데, 한달살기 계획이 있을 리가 없었다. 아니 한달살기는 맞기는 한 걸까? 그렇게 떠나 온 이곳 치앙마이에서 둘째 날도 나는 계획이 없었다. 알람도 없이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고, 당장 배가 고프니 구글지도를 열어 가까우면서 별점 4.5는 넘는 식당을 찾은 후 대충 세수만 하고 모자를 눌러쓰고 나갔다.


운이 좋으면 그 식당은 진짜 맛집일 것이고 아니면 배만 채워도 그만이었다. 나의 팟타이가 나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운이 좋게도 맛집이었다. 다음 코스는 뻔하게 카페. 역시나 식당을 떠나기 전 구글지도를 열어 가까우면서 별점이 나쁘지 않은 카페를 찾는데, 오후 12시 30분까지만 운영한다는 카페의 영업시간이 이상하리 매력적이었다. 오케이! 여기로 가자. 인상 좋은 할머니가 맞이해 주는 카페의 분위기는 지금의 나에게 딱이었다. 라떼 한잔을 주문한 후 햇볕이 예쁘게 드는 곳에 자리를 잡아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 어제 가방에 그대로 둔 종이와 색연필을 꺼내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때마침 나온 귀여운 고양이 티스푼과 함께 나온 라떼는 드디어 카메라앱을 열게 만들었다. 카페가 문을 닫을 때쯤, 다시 구글지도를 열어 숙소를 갈까 잠시 고민하다 여기서도 멀지 않고 숙소와도 가까운 나의 최애 사원으로 가보기 했다. 10분 정도 걸었었나, 갑자기 내리째는 뜨거운 햇볕에 이 선택을 후회할 때쯤 사원에 도착했다. “와” 나도 모르게 나온 그날의 첫 육성. 어제도 본 사원이 새삼스레 아름다워 그 자리에 주저앉기로 마음먹었다. 예쁘게 들어온 오후 햇살, 금빛 시원과 푸른빛을 발산하는 나무들의 조화가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사원 한쪽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그 풍경을 그저 바라만 봤다.


그렇게 한동안 멍하니 있던 나에게 불현듯 ’세상에, 이게 얼마 만에 느끼는 여유지?’라는 행복감과 함께 ‘한국에 돌아가서 지금을 그리워하게 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훅 밀려왔다. 이런 감정이 동시에 느끼는 게 낯설고 불편했고, 곧 두려움의 감정이 나를 온전히 지배했다. 나라는 인간은 스스로 그 잠깐의 행복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건가 싶어 안타까웠다. 언제 돌아갈지 모르는 한국에서의 나를 벌써 걱정하고 지금의 기운을 잃게 될까 봐 두려워하는 나는 도대체 어디가 모자란 게 아닌가 싶었다. 긴 한숨을 내뱉고 나는 아직 반나절도 지내지 않은 오늘을 돌아봤다.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기대도 없이 여기까지 오며 너는 무엇을 걱정했고, 무엇이 두려웠냐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아니, 나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세상에 그 많던 생각들이 어디로 갔던 거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커진 생각 따위가 나를 이토록 괴롭혔구나라고 생각하니 소름이었다.


나는 이날 이후 생각을 멈추기로 했다. 그저 오늘만 살아가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어떤 판단도 가정도 하지 않기로.


그날 나는 사원에서 숙소로 돌아가 수영장을 이용하기로 했다. 왔다 갔다 하며 숙소의 수영장은 어째 내 키보다 깊어 보여 들어가지 않으려 했었기에 꽤 큰 용기를 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어떤 판단도 하지 않을 것이고 오늘만 살아가기로 했으니, 그깟 수영장 한번 들어는 가보자고, 뭐 깊으면 나오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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