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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Mar 15. 2024

4장. 동행(1)

나를 닮은 너

무슨 인간혐오증이라도 생긴 사람처럼 무조건 혼자, 무엇을 하든 동행자는 만들지 말아야지 했다.

하지만 나는 3일 만에 동행을 하기 시작했다.


치앙마이에 오기 전, 한달살기 선배라고 동생은 치앙마이 오픈톡방에 들어갈 것을 권유했다. 그곳에는 거주자부터 장기, 단기 여행자까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무엇보다 혼자 온 여행객들이 동행자를 구하기 쉽기 때문이었다. 동행은 모르겠고, 급히 떠난 여행이었기에 정보라도 얻기 위해 바로 오픈톡방에 들어갔다. 매일같이 최소 300개가 넘는 톡들이 올라왔고, 그 정보를 따라가기에도 벅찼다. 또, 식사 또는 투어를 위한 동행을 찾는 톡들이 대화의 빈틈을 채웠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혼자 여행을 왔고, 또 많은 이들이 동행을 찾았다. 하지만 난 동행을 찾는 톡들은 주의 깊게 보지 않을뿐더러 거의 무시했다.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야 한다는 부담감에, 뭔가를 같이 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은 왜인지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톡들 사이로 투어 동행을 찾는 톡들이 눈에 밟혔다(꽤나 심심했었을 시간이었을 거다). 마침 갈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던 곳을 간다는 동행 찾기 톡에 모두 답을 달았고, 2개의 투어에 동행자가 되기로 했다.


첫 번째 나의 동행자는 닉네임 ‘도리’를 쓰는 나보다 8살이나 어린 동생이었다. 우리가 정한 투어 일정은 설 연휴에 가까운 날이어서 투어 택시 기사를 구하는 일이 좀처럼 쉽지 않았다. 하지만 똑부러진 도리는 택시 기사를 어렵게 구해 약속장소에서 나를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 도리는 택시 뒷자리에 앉자마자 나의 나이와 이름을 묻더니 호칭을 정리했다. 그리고 나선 모든 여행자들이 그렇듯 언제 왔고, 어디를 갔으며, 언제 갈 것이냐며 여행지에서나 할 수 있는 대화를 이어갔다. 별거 아닌 질문과 대답이 오가는 몇 마디에 나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이 친구, 뭔가 나랑 비슷한 게 많은데?’


우리는 마치 오랜만에 만난 사촌들처럼 투어를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예쁜 곳이 보이면 서로 사진을 찍어 주겠다며 즐거워했다. 만족스러운 투어를 마치고 서로 아쉬움에 저녁도 먹고 이참에 재즈바도 가자고 했다.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나는 왜 내가 이 친구에게 비슷함을 느꼈는지 깨달았다. 나와 너무나 비슷한 이유로 퇴사를 했고(퇴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그녀의 성격은 나와 거의 똑같았다), 퇴사 후 나와 비슷한 상태를 느끼고 있으며, 심지어 연애를 안 하는 또는 못하는 이유도 너무 닮아 있었다. 평행이론을 몸소 겪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마치 나의 8년 전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아 속상함까지 느껴졌다. 이 친구도 나에게서 본인의 미래를 보았을까?(아니었길 바란다)


그날 나는 도리와 함께 재즈바를 두 군데나 돌며 치앙마이에서의 여유를 한껏 즐겼다. 철저히 혼자가 되겠다던 나는 어느새 새 친구를 사귀고, 그녀의 남은 여행을 걱정하고, 기꺼이 나의 호텔방 열쇠를 건네고(그녀의 여행 마지막날, 짐을 내 숙소에 맡겨주기로 했다), 그녀의 앞날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었다. 응원을 받던 내가 누군가를 응원할 수 있게 되니 뭉클하니 그 기분이 꽤나 오래갔다. 그리고 이후 도리는 다른 투어를 떠나 비워진 나의 숙소에 몰래 현금과 쌀과자를 남겨두고 떠났는데, 그 현금과 쌀과자는 비상 상황에 처한 나를 살렸다.


그렇게 나는 아무래도 철저히 혼자가 되겠다는 생각은 무리였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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