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의 장례식과 공동묘지
유독 평범했던 할머니의 마지막이 부채감으로 남아있는 이유를 생각해 봤어. 정답은 평범해서였던 것 같아. 감각으로 표현하자면 그날은 차갑기만 했어. 망자는 아무 감각도 의식도 없을 테지만 남아있는 사람들의 빈 구멍을 달래기엔 한국의 장례 문화가 썩 충분하지 않았던 것 같아. 할머니와 이별은 어느 정도 예상된 날짜에 다가오기는 했어. 전 날밤 온 가족이 병원에 들렀어. 나는 주삿바늘 때문에 멍이 가득하고 껍질만 남은 힘없는 손을 잡아봤고 왜인지 모르지만 사진도 찍었는데, 진짜 그게 마지막일 줄이야. 피곤할 테니 먼저 들어가서 자라던 이모의 말에 집으로 돌아갔어. 다음 날에 늘어지게 늦은 낮잠을 자고 일어났을 때, 열 통의 부재중 전화를 확인했어. 옷을 입으면서 손과 다리가 벌벌 떨리고 바지에 다리를 넣는데 정신이 없어서 잘 들어가지도 않더라니까. 그 날 낮잠을 자지 않았더라면 할머니의 온기를 한 번 더 느낄 수 있었을 거란 아쉬움이 들어. 왜냐하면 내가 할머니를 다시 만났을 땐, 명주천에 쌓여 차가운 철판 위에 있었으니까. 이별의 인사를 전해 줄 시간도 길지 않았어. 어색한 화장을 입힌 할머니를 바라보고 마지막 한 마디를 전해주면 바로 그 방을 비워줘야 했거든. 사람은 하지 말라니 더 하고 싶은 심보가 있잖아. 그 공간을 나오면서 다시는 할머니를 못 본다고 생각하니까, 그 방으로 뛰어 들어가 냉동고에서 할머니를 꺼내오고 싶단 생각을 몇 번을 했었는지…
부지런히 지었던 자식 농사 덕분이었을 거야. 할머니의 장례식장은 화환도, 깃발도 가득했던 데다가 장성한 네 자녀의 손님들로 바글바글했어. 엄마의 슬픔이 더 크겠거니 싶어서 마음껏 슬퍼하지 못했던 게, 내가 아직도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가장 큰 이유기도 한가 봐. 특별한 날이 아닌데도 나는 자주 할머니가 있는 곳을 찾아가. 할머니가 들어있는 작은 유리관 앞에서 많은 말을 삼키고, 10분 정도 보고 나오면 몇 개월은 마음이 괜찮아. 할머니, 내가 우리 가족 중에서 말이 제일 많잖아. 그래서 할머니한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할머니가 있는 공간에 다른 사람이 많이 오가니까 신경이 쓰여서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속으로 하고 돌아오게 되더라고.
내가 멕시코에 살았을 때, 장례식에 간 적이 있었어. 멕시코는 천주교를 믿는 국가인데, 그래서 대부 대모 문화가 있어. 친하게 지내던 가족의 엄마의 대부가 돌아가셨대. 멕시코는 굉장히 가족적인 면이 있어서, 대부모의 가족도 피 한 방울 안 섞였지만 한 가족처럼 뭉쳐서 지내더라고. 장례식은 특별한 장소에서 하는 게 아니라 집에서 해. 집에 들어가면, 제사상이 차려져 있는데, 우리나라처럼 어떤 규칙이 있는 건 아니고 살아생전 망자가 좋아했던 물건, 음식, 사진을 올려서 꾸며둔대. 그리고 꽃길을 따라 들어가면 거실 한편에 관이 있어. 관이 활짝 열려있어서, 사실 나는 가까이 가기가 무서웠어. 시체를 봐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게 인생에 처음 있는 일이어서 사실 조금 불편했거든? 어찌어찌 이별 인사를 하는 줄에 섞여 들어가는 바람에 같이 갔던 가족이 인사를 건네는 동안 곁눈질로 평온하게 눈을 감은 할아버지를 볼 수 있었어. 사람들은 깨끗한 옷을 입고 편안히 누운 고인을 가까이서 바라보면서, 만져도 보고 큰 소리로 울기도 하고, 마지막 대화를 할 충분한 시간이 있어. 편안한 장소에서, 편안한 이별 같은 느낌이랄까. 나는 사실 안 친했던 사람이라 불편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보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소중한 시간이지 않았을까 싶어.
할머니, 근데 더 신기한 건 묘지야. 공동묘지에 가면 묘지 모양이 전부 달라. 매장을 하고, 그 위에 각기 다른 모양의 영혼을 위한 집을 짓거든. 가난한 가족은 간신히 봉분에 비석만 올리지만, 부유한 가족일수록 묘 위에 집을 더 크고 화려하게 짓더라고. 어떤 집은 나무로 만든 집도 있고, 돌로 올린 집, 대리석으로 크게 짓고 샹들리에까지 건 묘지도 있어. 색깔도 빨간색, 노란색, 내가 제일 좋아하는 민트색, 전부 달라서 멀리 떨어져 보면 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작은 마을 같아. 내가 방문했던 묘지 주인의 가족은 그래도 중간정도는 되었던 모양이야. 좁은 계단을 올라가면 나오는 묘지 위에 서너 명의 사람이 앉을 수 있는 크기의 회색 집이었어. 바닥은 대리석이었는데 갓 지었어서 깨끗한 새것 냄새가 났어. 집 앞에는 정말 작은 마당 같은 공간이 있었거든. 가족들은 가져온 음식을 나눠먹고,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웃고 술을 마셨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는 분리된 공간이 있다는 게 문득 부럽더라. 그리고, 고인의 묘지 바로 위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도 부러웠어. 나는 유리창과 대화를 하지만, 이 사람들은 조금 더 가까이 고인의 곁을 지키는 느낌이 들었거든.
디즈니에서 멕시코를 배경으로 한 ‘코코’라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는데, 거기에 이런 집이 나와. 어린 주인공 미겔이 집을 가출해서 에르네스토 델라 크루즈의 묘지로 뛰어 들어가 기타를 훔치고 망자의 세계로 가게 되는 장면이야. 기타를 훔치던 그 공간이, 바로 멕시코 공동묘지의 집들이야. 물론 델라 크루즈는 성공한 가수였어서, 집이 꽤나 큰 편이긴 했어. 만약 할머니에게도 이런 공간이 있었다면, 나는 아마 담요까지 짊어지고 가서 몇 시간이고 앉아 수다를 떨었을 거야. 할머니가 좋아하던 꽃도 꺾어놓고, 내 사진도 가져다 놓고, 많이 보고 싶은 날에는 낮잠도 자고 올 수 있었으려나?
할머니가 지금 있는 곳이, 유달리 빡빡한 곳이긴 해. 아마 우리 가족 모두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 그래서 올해는 할머니를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한대. 할머니야 당연히 이러나저러나 상관없다 하겠지만, 내 이기심엔 내가 있기 편한 곳이었으면 좋겠어. 할머니를 더 실컷 그리워하고, 엉엉 울어도 울음소리가 동굴처럼 울리지 않는 곳이었으면 하는 바람이야 있는데, 어떨지 모르겠네. 아무튼, 다음에 또 생각나는 날 들를게!
테난신고의 공동묘지에서, 손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