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는 봤니? 12년! 직업이 학부모회장이라는 말

월급 없는 풀타임 직업, 욕받이의 기록

by 하랑

2025년, 구덩이의 삶이 다시 시작되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미끄럼틀처럼.

분명 2024년에는 말했다. “이제 학교 일은 다시 안 한다.”
그런데 나는 왜 또 이 자리에 서 있을까.

“왜 이렇게까지 하세요?”라는 질문에 웃어 넘기지만, 정작 나도 모르겠다.

제2의 직업, 학부모회장. 처음엔 농담 같았지만 이제는 익숙하다.
웃으며 말하지만 실은 부끄럽고, 창피하다.

시작은 단순했다. “나이 제일 많은 언니가 회장, 어린 사람이 총무.”
그 말 한마디로 나는 친절하게 구덩이 입구에 섰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나는 욕받이라는 걸.

회의록을 쓰고, 연락을 돌리고, 갈등을 조율한다.
대신 사과하고, 대신 설명하고, 대신 욕을 먹는다. 대신 살지는 않는데, 대신 욕은 먹는다.

학부모회장은 늘 가운데에 선 사람이다. 왼쪽에는 학교, 오른쪽에는 학부모.
두 편의 말을 모두 듣다 보니 정작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

계약서도, 퇴직금도, 성과급도 없다. 남는 건 책임뿐이다.
잘 되면 “다 같이 잘해서”가 되고 어긋나면 “왜 회장이 그걸 못 챙겼냐”가 된다.

2024년에는 쉬려고 했다. ‘이제는 나를 좀 보자’고 마음먹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던 순간,
나는 또 이름을 올렸다. 그 선택이 확신이었던 건 아니다.


그래도 잊히지 않는 장면들이 있다. 1박 2일의 운동회.
그날은 행사가 아니라 마을 잔치다. 어르신들이 묻는다. “어디 육지 것이 회장이냐?”

나는 웃으며 말한다. “서울 육지것입니다.”

어르신들은 웃으며 아이들 위해 쓰라며 봉투를 건넨다.
고기 굽는 냄새, 아이들 웃음.
그사이 나는 술 단속을 하며 운동장을 돈다.

그날의 풍경에는 무게와 기쁨이 함께 있었다. 지치고, 때로는 부끄럽다. 그래도 하루를 버틴다.


회의가 끝나면 들려온다. “고생 많으셨어요.”

그 한마디가 나를 다시 세운다.

아마 나는 이 구덩이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건 헌신이 아니라 관계의 무게라는 걸.


2025년. 이번에는 조금 단단해진 내가 이 자리에서 나를 붙든다.

누군가는 말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행복은 진짜 마음을 통해 자란다고.
어쩌면 나는 이미 아이들 곁에서 행복의 씨앗을 심고 가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해마다 이곳에 이름을 올린 이유는 대단해서도, 용감해서도 아니었다.
아무도 나서지 않던 순간의 공기, 서로 눈을 피하던 침묵.

‘이대로는 안 되겠다.’ 그 마음이 나를 밀어 넣었을 뿐이다.

구덩이의 삶. 한 번 빠지면 바닥이 어딘지 알 수 없는데도 이상하게 발이 먼저 움직이는 그곳.

나의 직업은 학부모회장이다.

그리고 나는, 12년째 그 자리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