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해 오늘은 일터에서 기분 나쁜 일이 있었다. 그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나는 오만해서 일터 따위가 내 기분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필사적으로 부인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건-여기서만 하는 말인데-내 과실이다. 너무나도 하찮은 일이어서 반쯤 잠들어서 하다가 해보지도 않은 짓을 했고 누군가가 그걸로 기분이 나쁘게 되었다.
나는 내가 끝내 어떤 실수를 했다는 일, 또 그걸로 누군가 기분나쁘게 된 것에 큰 충격을 입고 있는둥 마는둥 일터에 왔다가 아무나 붙잡고 만나서 술을 마시고 있다. 지금은 화장실이다. 복분자주를 마시고 싶었지만 간교한 나는 시치미를 떼고 우연히 간 가게에 좋은 복분자주가 있는 걸 발견한 척을 하고, 거기에 탄산수를 섞어 마시고 있다. 상대도 이걸 즐기고 있으니 내가 행한 술수는 화이트 라이, 백색 거짓말로 해두자. 내 시급으로 이걸 마실 수 있는 걸 감사해해야 할까.
이와중에 권력자 Y는 오늘 공원 산책을 약속했는데 내가 안간다고 해서 유감을 표했다. 사실 지금 내 감정을 떠나 그저 추워서 약속을 깨려고 했다. 나는 추우면 우울해지기 때문이다. 추운 걸 싫어하는 것과 추운 걸 우울해하는 것은 다르다. 나는 추우면 바깥 활동을 내 자유의지가 닿는 한 최소화한다. 아파트에 내려와 예열한 차를 타고 직장의 지하주차장에 주차해서 곧바로 사무실에 들어갔다가, 다시 예열해둔 차에 오르고 아파트의 지하주차장까에 주차하는 것이 겨울철 내 이상적인 하루다. 야심가나 동기 충만한 이들이 보기에 지극히 건강하지 않은 하루이겠지만 말이다.
전에 말했었나, 물질에 어두운 나에게 부자란 두체스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나에게 부자의 정의를 하나 더 확립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북반구의 여름엔 북반구에서, 남반구의 여름엔 남반구에서 지낼 수 있는 사람. 나는 더위엔 강하다. 여름에 더운 나라들 여행을 잘도 다녔으니까. 다만 애석하게도 한국의 동절기에 내가 남미나 호주에서 지낼 수 있도록 인내해줄 직장도 없거니와 그런 직장에서 일할 능력이 없다. 역시, 세상엔 애석한 것 투성이다.
의식이 흘렀나?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요즈음은 의식의 흐름이 시쳇말처럼 남용된다. 나는 그걸 학부에서 첨 들었는데. 엘리엇한테 배웠다. 그게 뭐 중요하랴. Resiliency, 그게 난 없다. 그게 천추의 한일 때가 있다. 멋있는 단어고 있어뵈는 단어인데 말이야. 나는 나무젓가락처럼 툭, 부러질 뿐이다.
자, 문제상황이다. 해결책은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구원을 청하기엔 내가 너무 뻔뻔한데. 사실 문제는 대강 해결했다. 문제는 나 자신이다. 독실한 모친은 나를 낳자마자 봉헌했고 어릴 땐 나자렛 예수처럼 성전에서 날 잃어버렸다가 수녀님이 어머니에게 날 찾아준 적이 있다. 그렇다고 내가 거룩할까. 그건 아닐 텐데. 나는 비교적 자기객관화가 잘 된다. 그래서 더욱 등신 같을지도 모른다.
아. 이제 동행에게 연락이 온다. 숨겨둔 애인과 전화라도 하는 줄 배려해 기다렸으려나. 모든 글은 끝나기 마련이지만 내 현재 환경과 능력 덕에 지금 싸는 글은 덜 싼 똥같이 시원치 않을 것이다. 오늘 밤은 언제 어떻게 끝날지 도통 나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