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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이사도씨 Aug 04. 2024

다 나쁘지만은 않아.

불행이 닥쳤다고 생각했을 때

‘이 사람, 원래 이렇게 좀 멍청했었나?’


본사 사장님이 설명을 하면, 남친은 한 번에 알아 듣는 법이 없다.

꼭 두 번씩 묻는다.

나는 왠지 우리 커플이 말귀를 못알아듣는 멍청이처럼 보일까봐 불만스럽다.

아무도 없을 때, 왜 자꾸 두 번씩 묻냐고, 이해가 잘 안 가냐며 약간 빈정거리자 남친은 그게 아니란다.

우리는 초보이기 때문에 확실히 해두기 위해 두 번씩 묻는 거랜다.



‘아무리 우리가 초보래도, 멍청이처럼 보일 필요는 없잖아!’

설렘이 약간 가신다.



우리의 교육장은 부산에서 실제로 장사를 하는 가게였다.

앞으로 3일간 이곳 사장님과 같이 장사를 하며 감을 익히는 게 교육이란다.





가게에 들어서자 사장님은 우리에게 반죽부터 시켰는데, 반죽을 하자마자 ‘어? 이게 아닌데?’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반죽기가 있어도 왜 이렇게 힘이 드는 건지, 물과 만난 밀가루는 사방팔방으로 튀겨지며 내 옷과 얼굴에 자국을 남겨댔다.



그저 필기나 하며 방법을 익히려고 했을 뿐인데, 몸으로 익히려니 당황스러웠다.

내가 반죽을 생각보다 너무 못하자, 사장님은 걱정스럽다는 듯 지켜보다 자신이 다시 마무리하고, 이번에는 기름통 쪽으로 오라 했다.

지금부터는 치킨 초벌 준비를 해야 한단다.

일단 많이씩은 아니더라도, 손님이 몰릴 때를 대비해서 조금씩 튀겨놔야 한다며 치킨 튀기는 방법을 알려 줄 테니 같이 튀겨보자고 했다.



‘아니 치킨 튀기는 법은 무슨 치킨 튀기는 법이야? 그까짓 거 대충 기름 속에 치킨 집어넣었다가 빼내면 되는 거지. 교육을 빌미로 공짜로 일 시키고 싶으니까, 치킨 튀기는 법도 가르쳐준다라고 표현하네.’

나는 코웃음을 치며 기름통 주변으로 갔다가 또 한 번 당황했다.





눈이 어찌나 매운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180도 가까이 열이 오른 기름은, 굉장히 매워서, 주변에만 있어도 눈물이 줄줄 나왔다.

그렇다고 눈을 감은 채 닭을 넣을 수도 없어서 나는 울면서 치킨을 넣기 시작했다.

각각 치킨 조각들 조리 시간이 최대한 차이가 나지 않게 해야 한다는 말에 급하게 넣다가 치킨이 ‘퐁당’하고 떨어지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기름이 팍 튀어서 내 손에 끼얹어지기 일쑤였다.

눈은 맵고, 손엔 기름방울이 마구 튀고…….

생각했던 여유로운 모습이 아니라서 속으로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만 연발하고 있었다.

다리 아프고, 허리는 끊어질 것 같고, 또 당연히 어느 집이건 이 브랜드만 하면 대박이 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손님이 그리 많지 않은 점도 실망스러웠다.

장사 첫날도 아니고 교육 첫날에, 나는 모든 걸 놓고 도망치고 싶어졌다.



남자친구도 힘들어 보였지만, 이미 각오하고 왔는지 크게 당황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애초에 나처럼 머릿속에 꽃 그림만 그리고 온 것 같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주어진 일을 하고 있었다.

이 일을 같이 해보자고 먼저 제안한 것은 나였는데, 이제는 남자친구에게 다 미뤄버리고 홀로 떠나고 싶단 생각을 하며 숙소로 왔다.




몸이 고돼서였을까?

지금껏 단 한 번도 남친이 여자 문제로 속을 썩인 적도 없건만, 괜스레 시비를 걸었다.

“그때 그 여자, 좀 그런 눈빛으로 쳐다보던데, 왜 그랬던 건데요? 관심 있어서 그런 거 아니에요?”

실제로 냉각기에 잠시 다른 이성을 만났던 건 나였다.

물론 남친도 그런 사실을 다 알고 있다.

그런 주제에 나는 남친에게 계속 말도 안 되는 시비를 걸었다.

이렇게 해도 다 받아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결국 감정이 극에 치달은 우리는 서로 소리를 마구 질러대며 싸웠다.

사귀는 10년 동안 처음 있는 일이었다.

존중의 의미로 평상시에도 존대하던 우리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서로에게 쌍욕을 퍼붓고 있었다.





분을 이기지 못한 내가 남자친구의 뺨을 때렸다.

당연히 얌전히 맞아줄 거라 생각했건만, 남자친구도 내 뺨을 때렸다.

맞은 나도, 때린 남자친구도 눈이 동그래졌다.

남자친구는 무릎을 꿇은 채 미안하다고 했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한 건지 모르겠다며 눈물도 흘렸다.

아마도 진심일 거다. 그렇게 믿고 싶다.

분이 풀리지 않으면 다시 한번 자기를 때리라길래, 힘차게 남자친구의 뺨을 갈겼다.

남자친구는 진심을 다해 사과를 하면 내가 괜찮다며 넘어갈 줄 알았는데 다시 자신의 뺨을 때리니 기분이 상했는지 맞자마자 내 뺨을 다시 때렸다.



어째서 이런 인간이랑 동업을 하기로 했던 건지 과거의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건 남자친구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당장이라도 헤어지고 싶은 마음이지만, 동업하며 돈이 얽혀버려서 그럴 수 없는 현실이 징그럽다.

이곳에 올 때까지만 해도 소풍 오는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마치 지옥에 있는 것 같다.

온종일 일하느라, 온몸 구석구석 다 아픈데, 하다 하다 이제는 뺨도 아프고, 10년 다정했던 남자의 쌍욕 하는 모습에, 뺨 때리는 표정까지 봤더니 마음이 아파서 돌아버릴 것 같다.

정말 지옥이 있다면 딱 이곳이 아닌가 싶다. 도망가고 싶다.



그놈의 돈이 뭔지, 우리는 끝끝내 헤어지지 못하고, 개업을 맞이했다.

사이가 예전같을 리 없건만 쇼윈도 커플처럼 남들 앞에서는 다정한 척 했다.

나란히 이웃 가게에 떡도 돌리고, 닭도 튀기며 장사를 시작했다.

내 상상 속 닭집은, 그가 닭을 튀기고 버무리고 통에 담아주면, 나는 그저 계산이나 하는 거였는데, 그는 어림없는 소리 말라 했다.

그의 업무는 닭에 튀김옷을 입혀 튀기는 것까지였다.

버무리고 포장하고 계산하는 것은 온전히 나의 업무…….

그리고 영업이 종료되고 난 후 설거지도 내 몫이었다.

기름때가 덕지덕지 묻은 온갖 집기류를 씻어내는 일은 결코 만만치가 않았다.



“아이고~. 마 됐다. 네가 뭘 할 줄 안다고. 그냥 내가 할게. 저리 가라.”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우리 자매에게 설거지며 여타 집안일을 시키지 않으셨다.

그렇게 자란 내가 새삼 몸을 쓰며 닭을 조리하고 설거지를 하려니 아주 죽을 맛이었다.

영업이 12시에 마쳐도 설거지하는 데에만 거의 2~3시간 정도가 걸려 퇴근 시간이 아주 늦었다.

행복한 닭집 사장님이 되겠다는 꿈은, 말 그대로 꿈에 지나지 않았다.



닭집 사장은 현실이었다.

아침에 눈뜰 때마다 손가락 마디와 발가락 마디가 아픈 것으로 시작해, 밤이 되면 물병 열 힘도 없었다.

태어나 처음 겪어보는 매우 고된 직업이었다.

거기다 일을 마치고나면 남친과 집에서 꽁냥꽁냥 데이트하며 놀 줄 알았는데, 그것 역시 헛된 바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퇴근과 동시에 쌩하니 자기 집으로 가버리는 남친을 볼때면, 나는 늘 마음 속에 찬 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처음으로 독립하겠다고 얻은 투룸이 그렇게 크고 휑하니 느껴질 수가 없었다.

아픈 몸과 마음을 딱히 달랠만한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느날부턴가 퇴근 후에 내 손엔 소주 두 병이 들려있었다.



하루 한 병 반, 혹은 두 병.

일주일에 4~5일 정도는 그렇게 술을 마셨다.

아무에게도 이런 내 사정을 하소연할 수가 없었다.

내가 너무 하고 싶다며 선택한 일이니, 이제 와서 힘들다고 말한다는 게 자존심 상하고 부끄러웠다.

게다가 일은 해도해도 늘지 않았다.

10년 일한 사람마냥 점점 능숙해지는 남친과 달리, 나는 늘 서툴렀다.

한 번도 내 자신이 바보같다거나 멍청하다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닭집을 하면서 ‘나는 바보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늘 서투니까 남친 역시 나를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영업이 끝나면 나에게 이렇게 해보는 게 어떻겠냐며 나름 조언을 해주었는데 그 말을 듣기가 몹시 언짢았다. 결국 우린 교육 받던 그날처럼 또 언성을 높여가며 싸웠고, 쌍욕을 하는 일이 이제는 아주 자연스러웠다.

서로를 때리는 일은 더 이상 없었다.

하지만 경멸의 의미로 서로의 얼굴에 침을 뱉기 시작했다.

“퉤!!” “퉤!!!” 침을 뱉으며 남친의 얼굴을 보니, 웃고 있었다.

나는 너무 약이 오르는데 이 상황이 재밌나보다.

정말 헤어지고 싶다.

닭집이고 뭐고 다 때려치고 싶다.

오늘은 소주 두 병이다!



“잘 지내고 있나?”

“응, 나야 잘 지내지. 돈도 잘~ 번다! 엄마는?”

가족이나 친구들이 전화 걸어올 때면, 내 목소리는 늘 밝았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어떤 친구는 무슨 복이길래, 늘 뭐만 했다하면 중박 이상은 치냐며, 남친도 잘생겼다고, 한참을 부러워했다. 나는 그저 빙긋이 웃었다. 그리고 퇴근 후 술을 마셨다.



우리 커플의 마음에 애정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건 분명했다.

가게만 접으면 우리는 이대로 끝날 인연인 게 보였다.

그렇다면 과연 언제쯤 이 가게를 접는 게 좋을까?

각자 속으로만 고민하며 그렇게 3년을 보냈다.

첫해는 차린지 얼마 안 돼서 못그만 두고, 둘째해는 장사가 너무 잘 돼서 못그만 뒀다.

3년째 되던 해는, 점점 저물어가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만둔다면 지금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보건증을 찾기 위해 보건소에 들렀다.



“선생님이 잠깐 들렀다 가시래요.”

보건증을 금방 찾은 남친과 달리, 나에게는 보건증을 주지 않는다.

굳이 보건소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가라는 직원의 말에 약간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의자에 앉은 내게, 선생님은 3장의 엑스레이 사진을 보여준다.

보건증을 만들기 위해, 이 보건소에서만 엑스레이를 매년 찍어왔다.

나의 가슴 사진이라며 3장을 나란히 보여주는데, 의학적 지식이 거의 없는 내가 봐도 뭔가 문제가 생겼음을 알 수 있었다.

“이 곳, 종격동에 큰 종양이 생긴 거 같아요. 큰 병원에 가보는 게 좋겠습니다.”

단 한 번도 상상한 적이 없던 장면이다.

아니 이런 건 가냘픈 사람들이 들어야 마땅한 대사 아닌가?

왜 나한테??



내가 생각보다 더 늦게 보건소 밖으로 나오자 기다리던 남자친구가 무슨 일이냐는 듯 표정을 까딱한다.

나는 ‘침착하자, 침착하자.’ 몇 번이나 다짐하고도, 끝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내 가슴에 뭐가 있대.”

남자친구의 표정은 나보다 더 심각해졌다.

그날 나는, 조금 울다가 이내 진정이 되었는데 남자친구는 굉장히 힘들어했다.

보건소에 오기 전에 미리 시켜놓았던 피자를 내가 반판이나 먹는 동안, 세입 깔짝거리더니 끝끝내 더 먹지를 못했다.





보건소에서 담아준 CD를 가지고 큰 병원에 갔다.

그 날 이후 우리는 더 이상 닭집을 열지 못했다.

‘며칠 쉽니다.’라고 잠시 붙여두었던 흰 종이는 이내 ‘임대’로 바뀌었고, 나는 상급병원에서 온갖 검사를 받은 후, 수술을 하기로 했다.

그동안에도 남친은 닭집 정리를 위해 몇 번이나 가게에 다녀왔는데, 누군가 ‘임대’라고 적어놓은 종이 위에다 ‘닭집 이모, 보고싶어요, 얼른 돌아와요!♡’라고 적어놨더라며, 사진을 찍어왔다.

유난히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던 우리 치킨을, 누군가 애타게 찾나보다며 우린 웃다가 살짝 울었다.



CT를 찍어본 결과, 나의 흉선에 굉장히 커다란 종양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오빠, 괜찮아요. 나 몸무게도 안 줄고……. 지금 봐봐. 나 너무 건강하잖아. 아마 큰 일은 아닐 거야.”

의사 선생님은 늘 가장 좋은 쪽과 가장 나쁜 쪽을 동시에 얘기했다.

그럴 때면 나는 늘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고, 남자친구는 늘 나쁜 쪽으로만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밥을 매우 잘 먹었는데, 남자친구는 식사를 제대로 못하고, 그런 주제에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혹시나, 만약에 큰 병이더라도 이겨나가면 된다고 했다.

‘큰 병일 리가 없는데, 바보! 저러다 자기가 병에 걸리겠네.’



우리는 어느새 서로를 얄밉게 보던 마음, 가게만 접으면 곧장 헤어지려던 마음을 다 잊고 다시 사랑하게 됐다.

이보다 더 완벽한 사랑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사랑하게 됐다.

그리고  수술이든 뭐든 받고 그 사이에도 닭집이 팔리지 않으면, 나는 다시 돌아가서 닭집 이모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땐 예전에 꿈 꿨던대로 행복한 닭집 사장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힘든 상황은 때때로 이렇게 오히려 사람의 마음을 더 예쁘고 좋은 방향으로 이끌기도 한다.

그러니, 나쁜 일이 꼭 다 나쁘다고만 할 수도 없을 것 같다.

난 아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전한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껴서인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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