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제국주의 서사 의학-
15. 녹색 비학(鼻學) (2)
2. 코 지정학
(1) 코는 코만 코다
코는 특별하다. 사람이 앞을 향해 우뚝 섰을 때, 코는 맨 앞에 있다. 코는 향도며 그가 지닌 용기다.
사람이 누웠을 때, 코는 맨 위에 있다. 코는 스스로를 느끼고(공감) 알아차리고(인정) 받아들이는(신뢰) 지고한 자리다.
코는 사람 얼굴 한가운데 있다. 코는 그 대칭성을 가르는 황금선이다. 코는 생명과 자아 출발점이자 기준이다.
코가 지닌 특별함이, 그래서, 장구한 시간 동안 시샘을 받는 까닭으로 작용하였다. 이제 그 은폐된 이야기를 돋을새김으로 드러내야 할 때가 왔다.
① 코는 생명 드날목-나들목은 잘못 만들어진 말이기에 바로잡음-이다.
생명 시작과 끝은 호흡이다. 이 호흡 절대 관문이 바로 코다. 코는 찰나마다 이어지는 생명 사건 특이점이다. 코를 통해 독립 생명체 폐호흡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그 숨결이 마지막으로 떠나는 순간까지 호흡은 생명에서 으뜸 관건 요소로 작용한다.
코호흡 작동 방식은 아주 특이하다. 콧구멍은 두 개다. 그러나 한꺼번에 두 개가 호흡에 참여하지 않는다. 1~5시간 간격을 주기로 교대하여 호흡한다. 아직 그 연유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결과적으로 보면, 오른쪽 콧구멍으로 호흡할 때 능동적이고 외향적인 면이 두드러지며, 왼쪽 콧구멍으로 호흡할 때 수동적이고 내향적인 성향이 두드러진다고 한다. 이 결과를 의도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생명 진화 방향을 추정해볼 수 있다.
이른바 “교호 호흡”이라는 호흡법이 있다. 먼저 오른쪽 엄지손가락으로 오른쪽 콧구멍을 막고 왼쪽 콧구멍을 열어 숨을 내쉰다. 이어서 왼쪽 콧구멍으로 숨을 들이마신다. 그리고 숨을 잠시 참는다. 다음에는 반대로 왼쪽 콧구멍을 막고 오른쪽 콧구멍을 열어서 숨을 내쉰다. 그 상태에서 다시 오른쪽 콧구멍으로 숨을 들이마신다. 역시 숨을 잠시 참는다. 이 과정들을 되풀이하는 호흡법이다.
연구에 따르면 이 교호 호흡은 좌우뇌와 자율신경을 균형 있게 조절함으로써 생명 항상성 유지에 도움을 준다고 밝혀졌다. 이 단순한 교호 호흡만으로 큰 깨달음에 이른 사람도 있다고 한다.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항상성은 조화로운 드나듦이기 때문이다. 조화로운 드나듦이 바로 생명 요체이기 때문이다. 그 생명 요체가 바로 코에 깃들어 있다. 교대로 구멍을 하나씩 열어 호흡을 빚는 대칭적 코 지혜가 생명 비밀인 셈이다.
② 코는 모든 감각을 낳은 어머니다.
코는 냄새를 맡는 기관이다. 후각은 인간이 최초로 가지는 감각이다. 정자는 후각 수용체를 지니고 있다. 이 주화성에 힘입어 난자 쪽으로 이동해간다. 수정을 거쳐 태아가 되면 그때부터는 직접적인 후각 기능을 지닌다. 적어도 인간 생명 감각에 관한 한 “태초에 후각이 있었다.”가 진리다. 이 감각 연대기는 신생아 때 수면 습관과 심리적 안정에서 시작하여 생애 마지막 회한까지 비가역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코가 지니는 통시적 유일성(diachronic uniqueness)이다.
③ 코는 모든 감각과 지각이 수렴·발산하는 중심이다.
코는 얼굴 중심이다. 눈·귀·입으로 둘러싸인 모든 감각 운동 허브다.
인간 생존 조건 중에 먹는 일, 그러니까 맛 문제만큼 전방위에 걸쳐 지속적 영향을 미치는 다른 무엇은 없다. 먹는 일을 통해 생명 운동에 필요한 영양물질과 에너지가 대부분 공급되기 때문이다. 이 맛 80~85%가 바로 후각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코가 냄새 맡기로써 면역 적합성을 판별해낸다는 사실이다. 특히 여성은 순식간에 200여 가지 남성 체취를 판독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여성 코가 인류 향방을 결정한다. 코가 후각을 통해 형성하는 미시의식 또는 무의식에 비한다면 다른 감각을 통해 형성되는 대뇌 전두엽 거시의식은 빙산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코가 지니는 공시적 유일성(synchronic uniqueness)이다.
④ 코는 관문을 거치지 않고 직접 뇌와 통한다.
시각은 각막, 청각은 고막이라는 관문을 거쳐 뇌에 전달되지만, 후각은 관문 없이 직통으로 뇌에 전달된다. 다른 감각과 달리 시상을 거치기 전에 후각 수용체가 자리 잡은 변연계부터 거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코는 최전방 뇌다. 후각은 뇌각(惱覺)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대뇌는 본디 후각세포가 부풀어 진화했기 때문이다.
이런 후각 특성은 아마도 시원적 경험에서 나왔음에 틀림없다. 맹수나 적이 눈에 띄지도 않고 소리 내지도 않고 다가올 때 공격하거나 도망치기 위해서는 후각을 통한 즉각적 반응 말고 다른 길이 없다. 후각은 생존을 위한 가장 은밀하고 빠른 정보 전달자이므로 냄새-공포반응을 코-변연계 감정 뇌 직접 연결로 시스템화했다. 일단 살고 나서 나중에 해석하고 평가하는 분별 절차가 진행된다. 코에서만 정석으로 인정되는 생명 수순이다.
⑤ 코는 마음, 특히 감정 안테나다.
후각 수용체가 있는 대뇌변연계는 감정 중추다. 후각에 대한 즉각적 반응에서 인간 감정이 생겨나 다양한 감정 켜와 결로 분화하였다. 다양한 감정들은 거꾸로 코 느낌을 날카롭게 벼려 냄새로 그 상태를 드러내거나 조절하는 길을 열었다. 코와 대뇌변연계는 이런 상호작용으로 감정 현현과 감성 잠재력 선순환을 끌어낸다.
양자 사이에 악순환도 일어날 수 있음은 물론이다. 감정 뇌에 이상이 생기면 코에 그 이상이 반영·증폭된다. 코에 이상이 생기면 감정 뇌에 그 이상이 반영·증폭된다. 예컨대 우울장애 환자가 비염이나 후각 이상을 동반하는 경우는 거의 필연에 해당하는 일이다. 비염이나 후각 이상은 우울증을 더욱 악화시킨다.
후각과 직결된 감정은 이성과 의지보다 먼저 발생한 마음 층위다. 그 에너지가 다른 마음을 압도한다. 인간 마음을 움직이려면 무엇보다 감정을 움직여야 한다. 인간 마음을 가라앉히려면 무엇보다 감정을 가라앉혀야 한다. 이 진실은 그리스 고전 수사학으로 증명된 바 있다. 그런데도 근대 철학 이후 심리학은 물론 정신의학조차 감정을 이성과 의지 아래 둔다. 비인간적이다. 진실에 반한다. 감정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코로 되돌아가야 한다.
⑥ 코점막은 발기조직이다.
우리 몸에는 발기조직이 있다. 성기(性器)가 그렇다는 사실은 우리가 익히 다 아는 바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거의 모든 사람이 모르고 있는 중요한 발기조직이 있다. 바로 코점막이다.
일상 활동을 통해 알 수 있는 길이 있다. 달리기 같은 운동을 하면 코가 뚫려 상쾌하다. 같은(?) 운동인데 섹스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코가 막힌다. 보통 운동은 교감신경 자극 상태므로 혈관이 수축해 막힘이 풀린다. 섹스는 정반대로 부교감신경 자극 상태, 그러니까 충혈 상태가 유지되어야만 하는 운동이다. 그 현상이 곧 발기다. 코가 막히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거의 늘 막힌 상태에 있는 신혼부부 코를 이비인후과 임상에서는 신혼여행 코 증후군(honeymoon nose syndrome)이라 부른다.
후각과 성호르몬 조절 부위는 발생학적 기원이 같다. 후각은 성 감각과 긍부(肯否) 양면으로 모두 관련을 맺을 수밖에 없다. 후각 상실과 성 또는 생식능력 상실이 맞물리는 경우는 성폭행당해 이른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나 우울장애를 겪는 여성들에게서 실제로 확인되고 있다. 대기 오염을 포함한 여러 가지 원인으로 다양한 코 질환 환자 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이는 반드시 성과 생식 문제로 이어진다.
성과 생식 문제는 인류 사활이 걸린 근본적인 문제다. 여기에는 후각이 개입해 있다. 코로 되돌아가야 할 마지막 또 다른 이유다.
(2) 코는 코 말고도 코다
① 코는 외부 조건과 생명 구조 마주 가장자리다.
생명 구조로서 인간이 외부 조건과 직접 마주하는 곳은 피부(를 포함한 다섯 가지 감각기관), 소화기관, 호흡기관이다. 피부는 외부 접촉 조건과 만나도록 노출된 생명 싸개, 좁은 의미에서 보는 바로 그 피부다. 소화기관은 외부 음식 조건과 만나는 ‘동굴’ 피부다. 허파는 외부 대기 조건과 만나는 또 다른 ‘동굴’ 피부다. 이들 피부 가족 연결고리가 바로 코다. 코는 이 네트워킹을 가능하게 하는 허브다.
코는 우선 호흡기관 드날목으로서 공기라는 외부 조건과 직접 만날 뿐만 아니라, 내부 공기를 최종 배출하는 곳이다. 코로 맡는 냄새는 입으로 먹는 음식에 대한 맛 느낌 거의 모두를 좌우하기 때문에 외부 조건인 음식은 식도, 위, 소장, 대장이 접하기 전에 먼저 코를 거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코는 냄새라는 외부 조건과 직접 만나는 피부이기도 하다.
인간의 생명 사건은 피부로 둘러싸인 독립 공간 내부구조에 있지 않다. 그 밖 외부 조건에 있지도 않다. 마주 가장자리에 있다. 좀 더 정확히는 그 마주 가장자리에서 일어나는 운동이 생명 사건이다. 마주 가장자리 코가 지닌 독보적 위상은 마주 가장자리 운동으로 증명된다. 코는 코 아닌 모든 감각기 마주 가장자리에서 일어나는 운동 표지임으로써 우뚝해진다.
프랑스 탁월한 정신분석의 디디에 앙지외는 저서 『피부자아』에서 “자아는 피부다.”라고 주장하였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가 주장한 피부는 좁은 의미 그러니까 제1피부다. 나는 여기에 제2, 제3, 제4 피부를 더한다. 그리고 이들 마주 가장자리 겹친 곳에 바로 코가 있다.
② 코는 몸과 맘 마주 가장자리다.
코가 생명 구조, 그러니까 몸 의 최전선에서 외부 조건을 처음 마주하는 곳임은 이미 우리가 아는 바다. 그런데 더 중요한 일은 바로 여기서 맘이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코는 몸과 외부 조건 마주 가장자리임을 넘어 몸과 맘 마주 가장자리다. 몸과 맘이 서로 가로지르는 역동적 시공이다. 코에서 몸과 맘은 하나가 되기도 하고 둘이 되기도 한다. 하나만도 아니고 둘만도 아닌 몸-맘 사건이 바로 코에서 일어난다.
백색의학은 맘을 뇌 산물이라고 한다. 맘 자리가 뇌라고 한다. 아니 맘이 곧 뇌라고 한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뇌가 맘 사건 전체와 관련 있는 몸속 슈퍼터미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슈퍼터미널은 코라는 허브가 없으면 거의 아무런 의미가 없다. 코는 장 신경-자율신경-대뇌변연계-대뇌 신피질로 이어지는 진화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이기 때문이다. 코는 본능-감정-이성·의지 성장·확산 과정을 잇는 결절점이기 때문이다. 코는 마음 켜와 결 비밀을 쥐고 있는 열쇠다. 이 열쇠를 꽂아야 몸은 맘‘의’ 몸이고, 맘은 몸‘의’ 맘이라는 진실 문이 열린다.
③ 코는 의식과 무의식 마주 가장자리다.
코가 몸과 맘 마주 가장자리임은 이미 우리가 아는 바다. 여기서 다시 한번 몸과 맘 문제를 생각해본다. 인간 생명은 몸 양상과 맘 양상이 모순적으로 공존하는 현상이다. 몸쪽으로 갈수록 질량(stock) 속성이 강해진다. 맘 쪽으로 갈수록 에너지(flow)의 속성이 강해진다. 이런 이치는 맘 내부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마치 자석을 쪼개면 다시 양극이 나타나 작은 자석이 되는 이치와 같다.
맘에도 질량 속성을 지닌 부분과 에너지 속성을 지닌 부분이 모순적으로 공존한다. 전자를 무의식이라 하고 후자를 의식이라 한다. 이를테면 무의식은 몸속으로 (깊이) 들어간 맘이고 의식은 몸의 표면이나 몸 밖으로 막 나와 있는 맘이다. 코는 몸 표면에서 그 출입과 상호작용 허브로 작동한다.
④ 코는 감정과 이성·의지 마주 가장자리다.
코가 의식과 무의식 마주 가장자리임은 이미 우리가 아는 바다. 그런데 몸속으로 (깊이) 들어간 맘은 감정과 맞물린다. 몸 표면이나 몸 밖으로 막 나와 있는 맘은 이성·의지와 맞물린다. 코는 자연스럽게 감정과 이성·의지 마주 가장자리에서 그 모순적 공존 기울기를 조절한다. 물론 햇빛 아래서 역사가 되는 이성·의지보다 달빛 아래서 신화가 되는 감정 쪽으로 기우뚱한 채 말이다.
(3) 코는 자아다, 아니 자아는 코다
시인 김선우는 이렇게 말한다.
“후각은 생의 비밀, 낮은 지대의 뒷골목에 가장 핍진하게 밀접해 있는 감각이며 가장 능동적으로 어딘가로 끊임없이 흘러가는 감각이다.”(「김선우의 사물들」130쪽)
능동적인 흐름으로서 존재하는 도저한 생 감각은 무엇인가? 그 이름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 자체가 바로 자아다. 시인 김선우가 의학적 진실을 탐구하고 나서 이러한 이야기를 했을 리 없다. 그러나 그 말은 가장 문학적이자 가장 의학적인 진실 표현임이 분명하다.
생의 비밀, 낮은 지대의 뒷골목이란 인간이면 누구나 지니는 트라우마 거처이며, 가장 예민한 감정 결이며, 인격적 사회적 본질이다. 그가 사람을 따라, 사건을 따라 끊임없이 흘러간다. 그가 자아다. 자아는 그런 무엇이다.
요컨대 자아는 관계 맺는 존재로서 인간이 상처를 따라 그려 나아가는 신음과 치유 궤적이다. 신음은 반응(reaction)이며 치유는 감응(response)이다. 물론 감응은 반응 없이는 불가능하다. 반응 불을 댕기는 주체가 바로 후각이다. 냄새 맡지 못하면 결국 치유는 없다. 하여, 살아야 하는, 살아 내야만 하는, 생명은 끊임없이 큼큼대며 냄새를 좇아 흘러가는 법이다.
나를 가리키는 한자, 스스로 자(自)는 갑골문자 형태로 볼 때 코를 본떴다고 한다. 고대 극동아시아인은 왜 코로써 자기 자신, 그러니까 자아를 제유(提喩)하였을까? 어떤 이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유일한 얼굴 부위가 코라는 사실에서 그 근거를 찾는다. 불가시성 수평선에 희미하나마 홀연히 솟아오른 가시성이 지닌 상징적 의미를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허나 그 솟아오름이 도리어 삶의 낮은 지대 어두움을 포착하는 더듬이일진대 생명을 향하여 양팔 벌린 생리학적 진실에 대한 직관이 낳은 결과일 터이다. 그렇다. 그리하여,
코는 자아다.
아니, 자아는 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