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그때

-숙의의학 소설-

by 강용원


누군가를 수탈한 사람은 수탈당한 사람이 얻은 이득(이라고 간주하는 무엇)을 들이미는 적반하장으로 합리화하기 마련이다. 지주는 소작농이 자기 소유의 논두렁에서 콩을 수확했다고 주장한다. 성폭행한 자는 상대방도 즐겼다고 주장한다. 일제(와 그 부역자인 뉴라이트)는 식민 통치가 조선을 근대화했다고 주장한다. 박정희와 유신 본당은 개발독재가 우리를 보릿고개에서 해방했다고 주장한다.


부모, 특히 아버지한테서 학대당하고 적반하장의 합리화에 20년 이상 시달려온 나는 한껏 피폐해진 영혼으로 숙의치료자 ㅂㅇ를 찾아갔다. 나는 자신의 내면 정체성이 아버지를 부정하는 에너지로 형성되어왔다는 사실을 익히 인지하고 있었다. 배우자나 자녀를 대하면서 아버지 그림자가 드리워진 자신 모습에 진저리 친 적이 많았다. 나는 ㅂㅇ에게 말했다.


“나 자신에게도 혐오 감정을 지닐 수밖에 없는 아버지‘표’ 현실이 죽도록 싫었습니다. 아버지‘표’ 현실은 힘이 매우 셌습니다. 어머니도 결국은 아버지의 부역자일 따름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돈을 쥐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애면글면하지만 여전히 쪼들리는 생활 속에서 그 사람도 아이들도 순간순간 미워지기 일쑤였습니다. 날로 까칠해지는 제 영혼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ㅍㅎ은 매우 이성적·논리적인 분위기를 풍기면서 그에 걸맞은 언어를 구사했다. 이 풍경이 상처 반응 또는 방어기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나는 한 박자 늦게 알아차렸다. 그는 첫 상담을 마치고 나서 기다란 비판 글을 온라인 상담실 게시판에 올렸다. 의사가 공감은 하지 않고 자기 틀로 분석만 하더라, 가 요지였다. 나는 심한 당혹 속에서 진심 어린 사과 글을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내 글을 보고 자기 글을 신속하게 내렸다. 나는 내 글을 그대로 두었다. 두고두고 보며 숙의 의식을 일깨우기 위해서였다.


내 정서적 공감과 지지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 뒤에도 ㅍㅎ은, 공개 글은 아니지만 이런 사후 비판을 계속했다. 긴 호흡이 필요한 문제였다. 몇 번 고비를 넘겨야 할 문제였다. 아직은 그에게 이 지구력을 요구할 시점이 아니었다. 그에게 수입은 멈춘 채였고, 시간은 흘러만 갔다. 이 어긋남은 끝내 우리 만남도 어긋나게 하고 말았다.


수탈자는 피수탈자가 방어할 힘이 없을 때를 노려 덮친다. 당하고 난 뒤, 복원은 불가능하다. 보상도 보복도 마찬가지다. 그때그때 맞서는 일만이 길이다. 그때그때 맞서는 일이 계속 지체될 경우, 피수탈자에게는 회한, 자책을 담은 상처 반응, 방어기제가 쟁여진다. 뼈아픈 진실이다. 그래, 그때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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