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반제국주의 의학 서사 59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은 여성이 남성과 다름을 인정하는 의학이다: 『이브의 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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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앤 J. 리가토가 2002년에 쓴『이브의 몸』은 2년 뒤 한국어로 번역·출간되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이 책을 옆에 두고 수시로 읽어왔다.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소개하려 애썼다. 그러는 동안 한국성인지의학회가 창립되고 그 자리에 메리앤 J. 리가토가 참석했다는 소식 정도를 들었다. 거기까지다. 지금 한국성인지의학회는 활동도 거의 하지 않는 듯하다. 사위는 예와 다름없이 고요하다. 제국주의 백색의학은 남성의학으로서 더욱 굳건한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브의 몸』은 진즉 절판되었다.
나는 오늘 이 책, 『이브의 몸』을 20여 년 만에 다시 불러낸다. 내가 고안한 주해 리뷰 형식을 빌려 찬찬히 돌아보려 한다.
여성 몸이 남성 몸과 다르다고 할 때, 그래서 병이 다르니 달리 진단하고 치료해야 한다, 여기까지만 가면 안 된다. 여성을 다른 몸으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새로운 의학 패러다임 이야기를 해야 한다. 여성이 인식하는 세계, 인간 생명, 건강, 질병, 진단, 치료와 치유 전체를 재구성해야 한다. 이 새로운 의학은 단순히 남성의학과 1;1 대응 관계에 서는 따위가 아니다. 남성의학을 포괄하면서 넘어서는 광대함과 남성의학이 담아내지 못한 소소함이 모두 들어 있는, 이를테면 ‘어머니’ 의학이다.
글을 써가면서 이런 이야기를 새로이 하겠지만, 이미 졸저 『안녕, 우울증』 14개 절(15-28) 70쪽(109-178)에 걸쳐 이야기한 내용과 포개지는 일은 불가피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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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단지 여성 건강에 관한 책이 아니다. 이 책은 남녀 양성 건강에 관한 책이자 성 차이를 고려한 새로운 과학에 관한 책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남성과 여성이 생식 기능을 제외하고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존재라고 가정하고 행동해 왔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모아온 정보에 따르면 이는 잘못된 가정이다. 어디를 돌아보든지, 정상적인 신체 기능뿐만 아니라 질병을 체험하는 과정에 있어서 남성과 여성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차이를 보인다.(7쪽)
기나긴 의학사에서 이 이야기를 정색하고 한 일이 2002년에야 일어났다는 사실이야말로 저자를 둘러싸고 있는 의학이 제국주의 백색의학임을 웅변으로 증명한다. 제국주의 서구의학이 그렇다고 해서 동북아시아 전통 의학은 뭐 좀 다르지 않을까, 기대하는 일도 부질없다. 도긴개긴이다.
위 다섯 문장은 이 책 첫 문단을 이룬다. 단호하면서도 함축이 깊은 선언을 머금고 있다.
여성이 남성과 다르다며 그 차이를 고려한 의학을 말하면 대부분 ‘여성에 관한’ 의학이라고 인식한다. 바로 이게 남성 사고방식이다; 형식논리 사고방식이다; A가 아니라고 하면 대뜸 non A를 떠올리는 유아적 사고방식이다. 이치를 따지고 보면 참으로 어이없는 이런 사고방식이 수천 년 동안 인류문명 주도권을 쥐어왔다. 의도된 무지를 탑재한 대중에게는 어이없음이 매력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부역 광풍이 그 전형에 해당한다.
A가 아니라는 말에는 부분은 오류라는 근원적 진실이 들어 있다. non A는 그 진실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A가 아니라는 말은 딸랑 non A를 겨냥하고 있지 않다. 전체 진실을 향해 두 팔을 한껏 벌리고 있다. “성 차이를 고려한 새로운 과학”은 여성과 남성 사이 화쟁을 통해 일심 진리를 밝혀 무애자재한 삶으로 나아간다는 선언이다. 종자 논리를 바꾸는 발본 혁명이다. 이 과학이 완숙기에 이르면 이 과학 주체들조차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되리라.
여성 몸 공부는 당연히 여성 맘 공부로 이어진다. 여성 몸 공부는 여성 오감과 제6감, 그리고 육감(肉感)을 거쳐 직관으로 이어질 터이기 때문이다. 여성 직관으로 보는 전체 진실이 어떻게 남성이 쌓아 올린 백색 문명 세계관과 다른지 알게 되면, 과학에 개벽이 들이닥친다. 개벽은 이상한 신흥종교가 떠드는 묵시록이 아니다. 제국주의 백색 과학 어이없음을 타파하는 죽비다. 둔탁해서 예리한 그 깨우침 소리를 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