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반제국주의 의학 서사 76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은 여성이 남성과 다름을 인정하는 의학이다: 『이브의 몸』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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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암에 걸린 여성 흡연자에게는 특정 유전자(K-ras) 손상이 있는데, 남성에게는 일어나지 않는 현상이다. 다시 말해 이 유전적 취약성에 의해 담배 발암 물질을 중화시키는 신체 능력이 손상되어 암에 걸리기 쉽다는 얘기다. 이는 또한 여성이 간접흡연으로 암에 걸리기 쉬운 현상을 설명해준다.(371쪽)
담배회사들은···엄청난 니코틴 중독성을 숨겼을 뿐만 아니라, 이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담배 중독성을 교묘하게 강화해 왔다. 건강과 목숨을 앗아가는 흡연 습관에서 흡연자들이 언제까지나 헤어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367쪽)
결국 메리앤 J. 리가토와 피터 C. 괴체는 여기서 만난다.
“담배회사 경영자들은 1994년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니코틴에 중독성이 없다고 증언했지만, 실은 수십 년 전부터 그들은 거짓말임을 알고 있었다. 미국 거대 담배회사인 필립모리스는 연구 업체를 설립해서 부류연(sidestream) 흡연 위험성에 관한 증거를 확인했는데, 800편이 넘는 연구 보고서가 나왔지만, 단 한 편도 발표하지 않았다.”(『위험한 제약회사』 20쪽)
피터 C. 괴체 고발은 본디 이렇게 시작했다.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우리는 인간이 만든 두 가지 유행병 때문에 죽어가고 있다. 바로 담배와 처방약이다.”( 『위험한 제약회사』 19쪽)
“담배회사와 제약회사는 공통점이 많다. 도덕적인 관점에서 용납할 수 없는 인명 경시가 이 회사들 전형적인 행태다.”(『위험한 제약회사』 20쪽)
사실 담배회사와 제약회사 간 공통점은 좀 더 근본적이고 실재적이다.
“소녀들이 담배를 피우는 이유는 단지 멋있고 세련된 이미지 때문만은 아니다.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면 곧 담배가 체형을 날씬하게 유지하는 효과가 있음을 (또한 담배를 끊을 때 체중이 엄청나게 늘어난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그리고 흡연은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완화해 준다. 이들이 어른이 되어서 담배를 끊고 싶어 할 때, 비슷한 흡연 경력을 가진 같은 나이 남성보다 훨씬 끊기 어려워진다.”(369쪽)
그러니까 담배도 약물 일종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유사 마약 효과를 지닌 백색화학합성물질이다. 기본 재료가 자연 식물이어도 거기에 “담배 중독성을 교묘하게 강화”하는 첨가물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담배회사는 극력 부인하지만, 그들 전반적 행태로 보아 거짓말임이 틀림없다. 이름이 다를 뿐 담배회사와 제약회사는 동체다. 여기에 백색 의사 집단을 보태면 죽음을 팔아먹는 삼위일체 메두사가 완성된다.
담배는 더 이상 기호품이 아니다. 개인 취향 문제로 치부할 단계를 진즉 지났다. 사회정치적 의제로 하루빨리 설정해야 한다. 담뱃값 올려 천문학적 돈을 수탈하는 한편 공포심 조장하는 공익광고 때리는 야비한 짓 따위로는 어림없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20대 여성 흡연율이 상대적으로 높고, 10대 여성 흡연율도 높아지는 추세이기 때문에 촌각을 다투는 상황이다.
제국주의 백색의학이 담배회사와 제약회사 주구 노릇을 하면서 인류에게 뿌린 독은 여성에게 더욱 심각하다. 무엇보다 젊고 어린 여성에게 뿌려진 독은 다음 세대로 이어질 터이니 실로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녹색 의사를 천명 삼은 자로서 고민은 하염없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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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앤 J. 리가토가 제창한 Gender-specific Medicine을 번역자는 ‘성 차이를 고려한 의학’이라 옮겼다. 내 생각에는 ‘성차를 명시한 의학’ 심지어 ‘성 특정 의학’이라 하는 편이 나을 듯하다. 지금처럼 남성 중심이면서 ‘보편’을 전유하는 의학 아래 여성의학 아닌 산부인과 의학을 배속하는 식이 아니라 남성의학과 여성의학을 평등한 두 축, 엄밀하게 말하면 비대칭 대칭으로 놓되 둘도 아니고 하나도 아닌(不二而不一) 관계를 유지하는 식이다. 진단과 치료 전반에 걸친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된다. 교육 내용과 과정도 개편해야 한다. 이런 대대적 변화가 불가피한 까닭은 부분 손질에 그치면 반드시 여성의학은 ‘곁다리’가 되고 말 테니까 말이다. 부가적 지식을 얹어놓는 식으로 어물쩍 넘어가게 하면 안 된다. 여성의학은 남성의학과 전혀 다른 생명 감각으로 접근해야만 하는 지점과 영역이 명확히 존재한다.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결국 혁명 하나가 크게 필요하다.
이 책이 출간되고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현재 메리앤 J. 리가토가 새로운 땅 어디쯤 도달했는지 알지 못한다. 나는 내 나름대로 ‘성차를 명시한 의학’ 심지어 ‘성 특정 의학’을 실행하고 있다. 무엇보다 마음 병 문제에 주의하여 공부하고 치유한다. 갈 길은 먼데 벌써 황혼이 깃들기 시작했다. 초조해할 일은 아니다. 가는 꼭 그만큼이 내 천명 아니겠나. 삶에 둔 종자 신뢰를 거두어들이지 않는 한 갈 만큼 가게 되리라. 기댈랑 하지 않고 그저 어떤 궁금함으로 발맘발맘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