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소연

-숙의의학 소설-

by 강용원


나는 진료가 끝나 한의원 철문을 닫고 막 돌아서는 숙의치료자 ㅂㅇ를 본다. 필사적으로 달려가 쿵쿵쿵 두드린다. 예상대로 ㅂㅇ는 문을 연다. 가슴 두근거림을 호소하며 두어 차례 침 맞았던 나를 기억한 그가 내 어둡고 다급한 표정을 한눈에 알아본다. 그는 나를 안으로 맞아들이고 침 치료를 위해 잠시 누워 기다리게 했다. 잠시 뒤, 그가 고요히 내 옆에 앉는다. 무엇에 홀린 듯 나는 다급히 입을 열었다.


“선생님, 저 하소연 좀 해도 되죠?”


문맥도 없이, 대중도 없이, 살아온 이야기를 나는 폭포처럼 쏟아내기 시작한다. 들을수록 답답하고 대책 없는 사연들을 나는 도무지 이로가 잡히지 않은 중구난방으로 펄떡펄떡 게워낸다. 어느 순간 나는 꺽꺽 울음을 토해낸다. 두 주먹을 불끈 쥔다. 가슴을 두드리다 못해 쥐어뜯는다. 사방팔방 팔을 휘두른다. 발버둥을 친다. 격심한 몸부림이 쓰디쓴 체취를 낭자하게 흩뿌린다.


ㅂㅇ는 그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의 아픈 말을 들었으리라. 눈물을 보았으리라. 손을 잡았으리라. 하지만 내가 말하는 동안, 우는 동안, ㅂㅇ는 끝내 내 손을 잡지 않았다. 손을 잡으면 그만하라는 메시지가 될 수밖에 없는 지경이었기 때문이었을 테다. 그저 못 박힌 듯 꼼짝 않고 내 퍼덕임에 주의·집중할 따름이었다. 그러는 40분 남짓한 시간 동안, 필경 ㅂㅇ는 작두 날 위에 선 만신이었다. 적어도 내겐 그래 보였다.



드디어 긴 한숨과 함께 날뛰던 내 언어와 몸짓과 울음이 한목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한참을 죽은 듯 숨소리조차 안 내고 있다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ㅂㅇ는 무어라 달리 할 말을 찾지 못하는 듯했다. 이해도 공감도 접근도 해결도 절연된 무력한 타인임이 분명하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래, 바로 이제-여기가 숙의 파트너 시공이지 싶다. ㅂㅇ는 뚜벅 내 말을 그대로 따라 했다.


“죄송합니다.”


이 말을 듣고 황감해 하는 내 젖은 영혼에 ㅂㅇ는 꽃 같은 한 마디를 놓아주었다.


“소리치고 울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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