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죽은 뒤, 인간의 얼굴을 보기 시작한 서구 문명

신의 문법을 넘어, 인간의 문법으로

by 김욱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뒤 서구 지성계가 곧장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선언은 오래된 감옥의 문이 열렸다는 소식인 동시에, 그 감옥 밖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고백에 가까웠다. 신은 단순한 종교적 존재가 아니었다. 그는 진리의 보증인이었고, 도덕의 최종 심판자였으며, 인간 존재의 의미를 떠받치는 수직의 기둥이었다. 그러므로 신의 죽음은 한 신앙의 붕괴가 아니라 서구 문명 전체의 문법이 흔들린 사건이었다.


문제는 신이 사라진 뒤에도 질문의 형식은 그대로 남았다는 점이다. 인간은 여전히 묻는다. 나는 왜 존재하는가. 내 삶의 의미는 어디에서 오는가. 누가 나를 정당화하는가. 카뮈의 부조리는 침묵하는 우주 앞에 선 인간의 고독을 드러냈고,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신이 없다면 인간은 스스로를 선택으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은 분명 용감한 사유였다. 그러나 동시에 그 사유는 여전히 신이 남긴 존재론적 운동장 위에 서 있었다. 절대자가 대답해주어야 한다고 믿었던 질문을, 이제 인간이 혼자 떠맡은 것이다. 신은 사라졌지만 신이 차지하던 자리는 비어 있지 않았다. 인간은 그 빈자리를 스스로 감당하려다 더 깊은 고립에 빠졌다.


점차 서구 사상 안에서 다른 방향의 움직임이 고개를 들었다. 그것은 더 강한 자아를 세우거나, 더 냉혹한 자유를 주장하는 길이 아니었다. 오히려 인간을 다시 관계 속으로 돌려보내는 길이었다. 에리히 프롬은 사르트르식 자유가 인간을 해방시키기보다 절망으로 밀어 넣었다고 보았다. 인간은 무한한 선택의 주체이기 전에, 심리적·생물학적 한계를 가진 존재다. 인간에게는 세계를 이해할 지향의 틀과 삶을 바칠 헌신의 대상이 필요하다. “모든 것은 네 선택이다”라는 말은 겉으로는 자유의 선언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인간을 견딜 수 없는 고립 속에 방치할 수 있다.


프롬이 말한 진정한 자유는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에 머물지 않았다. 그것은 “무엇을 향한 자유”, 곧 타인과 세계와 생산적으로 관계 맺을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래서 그는 사랑을 감정이 아니라 기술로 보았다. 사랑은 우연히 떨어지는 열정이 아니라 배우고 익히고 훈련해야 할 능력이다. 이 지점은 유교의 인과 놀랍도록 맞아 떨어진다. 인은 타고난 선한 가능성이지만, 저절로 완성되는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몸가짐과 말, 마음의 절제와 배려를 통해 끊임없이 닦아야 하는 실천적 덕목이다. 사랑은 느낌이기 전에 수양이다. 프롬이 발견한 인간학적 해법은 동아시아 유교 문명이 오래전부터 문명의 중심에 놓아온 통찰이었다.


레비나스는 사르트르의 타자 이해를 더 근본적으로 뒤집었다. 사르트르에게 타자는 나를 대상화하고 나의 자유를 위협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레비나스에게 타자는 내가 소유하거나 해석하거나 범주화할 수 없는 무한의 존재다. 서구 철학은 오래도록 존재를 먼저 물었다. 세계는 무엇인가, 나는 무엇인가, 존재란 무엇인가. 레비나스는 이 순서를 바꾼다. 존재보다 윤리가 먼저다. 윤리는 추상적 규칙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그것은 타자의 얼굴과 마주치는 순간 시작된다.


타자의 얼굴은 나에게 말한다. 나를 죽이지 말라. 나에게 응답하라. 이것은 명령이면서 호소다. 맹자가 말한 측은지심을 떠올려보라.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볼 때 인간은 먼저 계산하지 않는다. 그것이 내게 이익인지, 사회적 평판에 도움이 되는지 따지기 전에 마음이 먼저 움직인다. 레비나스가 말한 얼굴의 윤리와 맹자의 측은지심은 서로 다른 문명에서 나온 사유이지만, 인간의 도덕성이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발생한다는 점에서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윤리는 신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는다. 타인의 고통이 이미 나를 부른다.


이 점에서 한국어의 “낯”은 흥미로운 철학적 언어다. “볼 낯이 없다”는 말은 내가 타인에게 해야 할 도리를 다하지 못했을 때 나온다. 낯은 단순한 얼굴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 앞에서 드러나는 나의 윤리적 자격이다. “낯이 뜨겁다”는 표현도 그렇다. 부끄러움은 머리로 계산되는 관념이 아니라 몸에 즉각적으로 번지는 감각이다. 서구의 죄가 신 앞에서 묻는 문제였다면, 한국적 부끄러움은 타인의 얼굴 앞에서 발생하는 윤리적 열감이다. 레비나스가 신의 흔적을 하늘이 아니라 타자와의 대면에서 찾았듯, 유교적 세계는 오래전부터 인간의 얼굴과 시선 속에서 윤리의 권위를 감지해왔다.


마르틴 부버 역시 인간을 고립된 자아로 보지 않았다. 그의 철학에서 중요한 것은 “나”라는 실체가 아니라 “나와 너”의 관계다. 사람은 홀로 완성된 뒤 타인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너”와 접함으로써 비로소 “나”가 된다. 부버가 말한 “사이”는 단순한 물리적 간격이 아니다. 그것은 두 존재가 서로를 대상이 아니라 인격으로 만날 때 열리는 관계의 공간이다. 진정한 대화는 정보의 교환이 아니라 존재론적 사건이다. 부버는 인간의 본질이 고립된 자아의 내면적 성찰이나 외부 대상에 대한 차가운 이성적 인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와 존재 사이에서 일어나는 생생한 '만남'과 '대화'에 있다고 본 것이다.


이 또한 유교적 인간 이해와 멀지 않다. 유교에서 인간은 홀로 닦은 내면의 완성품이 아니다. 부모와 자식, 임금과 신하, 부부, 어른과 아이, 벗과 벗 사이에서 인간은 자기 자리를 배우고 도리를 익힌다. 부버가 “나와 너”의 만남에서 자아의 성립을 보았다면, 유교는 그 만남이 반복되는 구체적 관계의 질서 속에서 사람이 사람다워진다고 보았다. 자아는 관계 바깥에서 완성된 뒤 타인에게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주고받는 말과 몸짓, 책임과 응답 속에서 조금씩 형성된다. 그런 점에서 부버의 “사이”가 만남의 철학이라면, 유교의 “예”는 그 만남을 일상 속에서 지속시키는 관계의 형식이다.


허버트 핑거렛은 이 관계의 형식을 공자의 “예”에서 발견했다. 그는 공자의 예를 낡은 형식이나 겉치레로 보지 않았다. 예는 인간을 기계적으로 억누르는 규범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해치지 않고 조화를 이루게 하는 미묘한 형식이다. 누군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면 상대도 자연스럽게 손을 내민다. 물리적 강제는 없지만 행위는 이어지고, 관계는 성립하며, 공동체의 질서가 생긴다. 핑거렛이 예를 “마법”에 비유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는 초월적 기적이 아니라 세속적 관계 안에서 일어나는 인간적 기적이다.


서구의 오래된 전통에서 성스러움은 흔히 세속의 바깥에 있었다. 신은 위에 있고 인간은 아래에 있으며, 성스러움에 가까이 가려면 일상의 세계를 부정하거나 초월해야 했다. 그러나 공자에게 성스러움은 산속이나 성전 안에만 있지 않다. 그것은 밥상에서, 인사에서, 말투에서, 제사와 손님맞이에서,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대하는 몸짓 속에서 드러난다. 성인은 세상을 떠난 사람이 아니라 세상 한가운데서 막힘없이 타인과 조화를 이루는 사람이다. 이 말은 곧 세속이 성스럽다는 뜻이다. 인간관계 자체가 성스러움의 무대라는 뜻이다.


이러한 흐름을 하나로 묶어보면 분명한 방향이 보인다. 신의 죽음 이후 서구 사상은 처음에는 존재론의 폐허를 배회했다. 부조리, 무, 선택, 고독, 자유, 시선의 지옥이 그 풍경을 이루었다. 그러나 프롬, 레비나스, 부버, 핑거렛을 거치며 사유의 축은 조금씩 이동했다. 존재에서 관계로, 자유에서 책임으로, 자아에서 타자로, 초월에서 일상으로 옮겨간 것이다. 그 이동은 동아시아 유교가 오래전부터 붙들고 있던 인간 이해와 궤를 같이한다. 인간은 홀로 의미를 발명하는 고독한 신이 아니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자신을 닦고, 타인의 얼굴에 응답하며, 예를 통해 세계를 조율하는 존재다.


결국 신의 죽음 이후 서구 지성계의 진짜 전환은 무신론 자체가 아니었다. 신을 부정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신을 부정하면서도 신의 문법 안에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신이 남긴 존재론적 질문에서 빠져나와, 인간을 다시 인간 사이로 돌려보내는 일이었다. 프롬의 사랑, 레비나스의 얼굴, 부버의 만남, 핑거렛의 예는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인간은 신 없이도 살 수 있지만, 타인 없이 살 수는 없다. 신에 대한 애착이 인간에 대한 애착으로 전환될 때, 비로소 신의 죽음은 문명의 파멸이 아니라 인간의 탄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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