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도시, 두 개의 이름
이탈리아를 여행하다 보면, 또는 이탈리아에 관한 글과 지도를 보다 보면 같은 도시가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장면을 자주 만나게 된다. 베네치아와 베니스, 피렌체와 플로렌스, 나폴리와 네이플스, 토리노와 튜린이 그렇다. 처음에는 그저 언어가 다르니 이름도 다르게 부르는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이것은 단순한 번역의 문제가 아니다. 한 도시가 오랜 시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기록되며, 각 언어 속에 자기 자리를 하나씩 만들어 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도시에는 원래 그곳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이 있다. 학술적으로는 이런 이름을 현지명(endonym)이라고 한다. 반대로 어떤 도시는 그 지역 안에서만 불리는 데 그치지 않고, 무역과 외교, 전쟁과 종교, 예술과 학문을 통해 다른 언어권에서도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이렇게 외부 언어권에서 자리 잡은 이름을 외부명(exonym)이라고 한다. 쉽게 말하면, 하나의 도시는 현지에서 부르는 이름과 바깥 세계가 불러온 이름을 함께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 개념을 너무 어렵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이름이 둘이라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도시가 자기 지역 안에만 머문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넓은 세계와 연결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이탈리아의 몇몇 도시들은 바로 그 흔적을 아주 선명하게 보여 준다. 그래서 이 문제는 단순히 베네치아를 베니스라고 부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한 도시가 얼마나 오랫동안 바깥 세계와 관계를 맺어 왔는가를 보여 주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베네치아가 베니스가 된 이유
이런 현상은 이탈리아만의 것은 아니다. 다만 이탈리아의 도시들은 이 문제를 설명하기에 특히 좋은 사례를 제공한다. 그 이유는 이탈리아의 주요 도시들이 오랜 세월 유럽사의 중심에서 불려 왔기 때문이다. 어떤 도시는 교역의 중심지였고, 어떤 도시는 예술과 사상의 중심지였으며, 또 어떤 도시는 정치와 군사의 무대가 되었다. 그렇게 도시가 넓은 세계와 오래 연결될수록, 그 도시를 부르는 이름도 하나만 남지 않는 경우가 많아진다.
베네치아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 도시는 단지 운하가 아름다운 관광지가 아니었다. 오랜 세월 동안 지중해 교역의 중심지였고, 동방과 서방을 잇는 해상 네트워크의 핵심이었다. 수많은 상인과 외교관, 성직자와 여행자들이 이 도시를 드나들었고, 각자의 언어로 이 도시를 기록했다. 그러니 베네치아라는 현지 이름만 남을 수는 없었다. 여러 언어권은 저마다의 발음과 철자에 맞게 이 도시를 다시 불렀고, 그렇게 베니스라는 이름도 함께 굳어졌다.
이 대목에서 마르코 폴로를 떠올려 보면 이해가 쉽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은 베네치아를 생각하면 곤돌라보다 먼저 마르코 폴로의 이름을 떠올리기도 한다. 실제로 그의 여행기는 동방에 대한 유럽인의 상상력을 크게 넓혔고, 그 출발점으로서 베네치아라는 도시에 대한 인식도 함께 퍼져 나갔다. 중요한 것은 마르코 폴로 한 사람 때문에 베네치아의 이름이 바뀌었다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베네치아가 일찍부터 유럽 바깥 세계와 연결된 도시로 기억되었다는 점이다. 도시 이름이 여러 언어권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은 결국 그만큼 많은 시선이 그 도시에 겹쳐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피렌체와 플로렌스, 그리고 다른 도시들
피렌체도 비슷하면서 다르다. 베네치아가 바다와 교역을 통해 세계와 연결되었다면, 피렌체는 문화와 사상을 통해 세계 속으로 들어갔다. 피렌체는 오늘날에는 예술과 관광의 도시로 먼저 떠오르지만, 유럽사에서는 르네상스의 중심지로 더 널리 각인된 곳이다. 메디치 가문, 인문주의, 미술과 건축, 금융과 정치가 한데 모여 있던 이 도시는 오래전부터 이탈리아 안에만 머문 도시가 아니었다. 유럽 여러 나라가 이 도시를 각자의 언어로 불렀고, 그렇게 플로렌스라는 이름도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이 점은 나폴리와 네이플스, 토리노와 튜린 같은 경우에도 이어진다. 다만 그 도시들이 바깥 세계에 알려진 방식은 서로 같지 않았다. 나폴리는 남이탈리아의 중요한 항구이자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였고, 토리노는 사보이아 가문과 이탈리아 통일의 역사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중요한 것은 도시마다 경로는 달랐지만, 넓은 세계와 오래 연결된 도시일수록 이름도 하나만 남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름의 차이는 단지 발음의 차이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그 도시가 어떤 방식으로 바깥 세계에 기억되었는지를 함께 보여 준다.
이름은 도시의 이력을 남긴다
이 점에서 지명은 단순한 표기가 아니다. 이름은 그 도시가 누구에게, 어떤 언어로, 어떤 시대를 거치며 불려 왔는지를 보여 주는 흔적이다. 우리는 흔히 도시를 지도 위의 한 점처럼 생각하지만, 실제로 도시는 여러 언어와 여러 기억 속에서 서로 다른 얼굴로 살아간다. 한 도시의 이름이 둘이라는 것은 그 도시가 둘이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 도시를 불러 온 세계가 하나가 아니었다는 뜻에 가깝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이 이야기는 조금 더 흥미로워진다. 우리는 대개 도시를 눈으로 본 뒤 이름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이름을 먼저 듣고 나중에 그 도시를 만나게 된다. 어떤 사람은 미술사 책에서 플로렌스를 먼저 배웠고, 어떤 사람은 여행 예약 사이트에서 베니스를 먼저 보았으며, 또 어떤 사람은 한국어 자료를 통해 베네치아와 피렌체를 먼저 익혔을 것이다. 즉 도시를 먼저 만나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이름을 먼저 만나는 셈이다. 그래서 같은 도시를 앞에 두고도 사람마다 가장 익숙하게 느끼는 이름이 다를 수 있다.
그래서 베네치아와 베니스 같은 두 이름은 단지 같은 도시를 다르게 읽은 두 표현이 아니다. 그 사이에는 교역의 역사, 언어의 이동, 외부 세계의 시선, 그리고 도시가 세계 속에서 살아온 시간이 들어 있다. 한 도시의 두 이름은 결국 그 도시가 얼마나 넓은 세계와 관계를 맺어 왔는지를 보여 주는 작은 흔적이다. 이탈리아의 도시 이름을 들여다보는 일은 그래서 단순한 지명 공부가 아니라, 그 도시가 지나온 역사의 결을 읽는 일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