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를 조각한 사람, 미켈란젤로

살아있는 전설, 조각을 넘어 공간으로

by 문명의 해석

로마에서 만난 미켈란젤로

로마에 가면 사람들은 대개 콜로세움이나 바티칸부터 떠올린다. 그런데 시선을 조금만 돌리면, 미켈란젤로를 조각가가 아니라 도시를 다룬 사람으로 만나게 되는 장소가 있다. 캄피돌리오 광장이다. 이곳 정면의 팔라초 세나토리오는 지금도 로마 시정의 중심 건물로 쓰인다. 광장 전체는 미켈란젤로가 공간을 어떻게 조직했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소 가운데 하나다.

이곳은 생각보다 오래 시선을 붙잡는 공간이다. 그런데도 캄피돌리오는 한국인 관광객들의 주요 관광 코스에서는 그다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 공간처럼 보인다. 아마도 관광버스의 정차 여건이나 동선상의 제약 같은 여러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쉽다. 로마를 조금 더 깊이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광장은 한 번쯤 천천히 멈춰 서서 바라볼 가치가 충분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계단과 광장과 건물이 하나의 시선을 만든다

캄피돌리오의 인상은 어느 한 요소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광장으로 올라가는 완만한 코르도나타 계단, 정면의 팔라초 세나토리오, 그 양옆을 감싸는 건물들, 그리고 중앙의 기마상과 바닥 문양이 따로 놓여 있지 않다. 모두가 하나의 축 안에서 함께 작동한다. 이곳에 서 있으면 미켈란젤로가 사람의 몸만 다룬 예술가가 아니라, 공간의 질서와 시선의 흐름까지 설계한 인물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래서 이 광장을 두고 단순히 원근법을 썼다고만 말하면 조금 거칠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미켈란젤로는 계단과 광장과 건물의 입면 전체를 통해 사람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중심으로 끌려 들어가도록 만드는 원근적 공간 연출을 해냈다. 조각가로만 알고 있던 이름이, 이곳에서는 도시 전체를 조직하는 설계자의 이름으로 다시 보인다.


하늘에서 보면 더 놀라운 바닥 문양

캄피돌리오에서 특히 눈길을 붙드는 것은 바닥 문양이다. 현장에서 보면 먼저 아름답다는 느낌이 오지만, 위에서 내려다보면 그 감탄은 곧 놀라움으로 바뀐다. 중앙의 기마상을 둘러싼 바닥은 타원형의 큰 질서를 이루고 있고, 그 안에는 열두 꼭짓점을 가진 별형 구조가 들어 있다. 선들은 바깥으로 퍼져 나가되 흩어지지 않고 곡선으로 맞물려, 광장 전체를 하나의 중심으로 끌어당긴다. 이것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바닥 전체가 중심과 비례와 방향을 계산해 만든 하나의 기하학적 질서처럼 보인다.

문양.jpg 로마 캄피돌리오 광장 (미켈란젤로는 타원형 바닥과 별형 문양, 계단과 건물의 축선을 하나의 질서로 묶어 광장 전체를 하나의 공간으로 설계했다)

이 문양이 더 경이로운 이유는 바로 그 정밀함에 있다. 원은 중심이 하나지만, 타원은 긴장감이 더 크다. 그런데 그 타원형 질서 안에 다시 열두 꼭짓점의 별형 구조를 얹고, 그 선들을 흐트러짐 없이 연결해 놓았다. 위에서 내려다본 이미지를 함께 보면, 이 설계의 정밀함은 더욱 또렷하게 보인다. 이건 바닥에 무늬를 넣은 것이 아니라, 선 하나와 곡선 하나까지 계산해서 광장 전체를 통제한 설계라는 점이다. 그래서 이 문양 앞에서는 먼저 “예쁘다”보다 “이걸 그 시대에 어떻게 이렇게 맞췄을까”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미켈란젤로는 조각가에 머문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는 대개 미켈란젤로를 다비드의 조각가로, 피에타의 창조자로,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남긴 화가로 기억한다. 그 기억은 틀리지 않다. 그러나 캄피돌리오에 서 보면 그 익숙한 이름이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그는 인체를 조각한 사람에 그치지 않았다. 건물의 정면을 어떻게 세울지, 계단의 경사를 어떻게 둘지, 광장의 중심을 어떻게 느끼게 할지, 시선이 어디로 모이게 할지를 함께 다룬 사람이었다. 이쯤 되면 미켈란젤로를 단지 조각가로만 기억하기는 어렵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가 스스로를 무엇보다 조각가로 여겼다는 점이다. 그런데 바로 그 사람이 시스티나 성당 천장을 그리고, 결국 회화에서도 시대를 바꾸어 놓았다. 본업은 조각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회화에서도 시대를 뒤흔든 것이다. 이 역설이야말로 미켈란젤로라는 인물을 더욱 크게 만든다.

천장화.jpg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미켈란젤로는 본래 자신을 조각가로 더 강하게 의식했던 인물이었지만, 이 천장화를 통해 회화에서도 시대를 바꾸는 업적을 남겼다)

레오나르도, 라파엘로와 함께 있었던 시대

미켈란젤로가 살았던 시대를 함께 떠올리면 이 인물의 크기는 더 분명해진다. 그 무렵 이탈리아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라파엘로 같은 거장들도 함께 있었다. 서로 다른 재능과 개성을 가진 거인들이 같은 시대를 살았고, 같은 문화적 긴장 속에서 작품을 남겼다. 르네상스는 한 사람의 이름으로 설명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 거대한 별들 사이에서도 미켈란젤로는 유독 강한 존재감을 가진 인물이었다.


레오나르도가 관찰과 탐구의 천재였다면, 라파엘로는 조화와 균형의 대가였다. 그에 비해 미켈란젤로는 인간의 몸과 긴장, 그리고 정신의 무게를 끝까지 밀어붙인 인물에 가까웠다.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각자가 시대를 빛낸 방식은 달랐다. 그래서 미켈란젤로를 보면, 단순히 위대한 예술가 한 명이 아니라 르네상스 전체의 밀도를 함께 떠올리게 된다.


살아 있는 전설, 그리고 시를 쓴 사람

미켈란젤로는 후대가 뒤늦게 발견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생전에 동시대 사람들 사이에서 경외의 대상이었고, 탁월한 조형 감각과 압도적인 창조력 때문에 ‘신적인 사람’이라는 뜻의 ‘Il Divino’라는 호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후대가 천재로 만들어 낸 인물이 아니라, 같은 시대 사람들이 먼저 경탄한 인물이었다는 뜻이다.


더 의외인 것은 그가 시까지 썼다는 사실이다. 미켈란젤로는 돌과 벽만 다룬 사람이 아니었다. 아름다움과 고통, 육체와 영혼, 신앙과 죽음을 언어로도 붙들고자 했던 사람이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미켈란젤로는 더 이상 단지 거대한 조각과 장엄한 프레스코를 남긴 예술가로만 보이지 않는다. 그는 형태를 만드는 손을 가진 사람이면서, 동시에 내면의 긴장과 구원을 오래 응시한 사람이었다.


한 시대를 조각한 사람

그의 업적을 하나하나 늘어놓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그는 다비드를 통해 르네상스 인체 표현의 정점을 보여주었고, 피에타에서는 차가운 대리석 안에 경건함과 슬픔을 함께 넣었다.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서는 성서의 이야기를 인간의 몸과 움직임으로 거대한 서사로 바꾸어 놓았고, 말년에는 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 설계에도 결정적인 흔적을 남겼다.


그렇지만 더 중요하게 남는 것은 업적의 목록이 아니다. 미켈란젤로의 위대함은 단지 훌륭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는 데 있지 않았다. 그는 대리석 속 인체를 끌어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계단과 광장과 건물의 축선까지 다루며 도시의 시선 자체를 설계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캄피돌리오 광장 앞에 서면, 조각가 미켈란젤로를 넘어 한 시대의 질서와 긴장을 형태로 바꾼 미켈란젤로를 만나게 된다.


미켈란젤로의 대표 소네트 「Non ha l’ottimo artista alcun concetto」의 첫 4행은, 그가 예술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Non ha l’ottimo artista alcun concetto
c’un marmo solo in sé non circonscriva
col suo superchio, e solo a quello arriva
la man che ubbidisce all’intelletto.


아무리 뛰어난 예술가라도 대리석이 이미 그 안에 품고 있지 않은 형상은 만들어 낼 수 없다. 예술가의 손이 하는 일은 새로운 형상을 억지로 만들어 붙이는 것이 아니라, 지성의 인도를 따라 불필요한 부분을 덜어내고 그 안에 잠재해 있던 형상을 드러내는 일이라는 뜻이다.


돌과 벽과 광장, 그리고 언어로 시대를 빚어낸 사람. 미켈란젤로는 정말 한 시대를 조각한 사람이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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