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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선영 Jun 09. 2020

검찰청에 무기계약직으로 입사하기. 1

나를 소개하는 서류편

  2018년 고맙게도 전국의 검찰청에서 무기계약직 공채가 대규모로 있었고, 지금은 청별로 소규모로 채용이 이루어지고 있다. 오늘은 2018년 내가 썼던 이력서와 면접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나는 검찰청 입사 전 작은 사회적기업에 근무를 하고 있었고, 제안서를 쓰는 게 나의 주 업무였다. 그래서 이력서도 제안서에 준해서 적고는 했다. 어떤 위탁 사업 공고가 나면, “사업지원이유 – 실행가능성 – 실행 계획 – 예산” 이런 것들을 밥 먹듯 적었는데, 그에 비해 이력서 적는 건 좀 쉬웠다. 분량도 적고, 예산의 사용처를 계획하지 않아도 되니까. (근로자는 예산=월급이 온전히 내 것이다.) 또한 증빙서류도 사업제안서는 재무제표부터 실적증명서 등 제출할 게 많은데, 이력서는 주민등록등본이나 졸업증명서, 경력증명서 정도만 제출하면 되니 내 기준에서는 쉬운 편이다.



  국어, 수학, 영어 셋 다 전혀 다른 과목 같지만, 공부하는 방법은 비슷하다. 우선 교재를 읽고, 핵심 개념을 이해하여, 문제에 적용했을 때 푸는 것이다. 회사 생활도 같다. 전혀 다른 회사 같지만 업무만 다르지 기본적인 회사 생활 태도는 같다. 업무(매뉴얼, 또는 스킬)를 익히고, 실무에 적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력서를 쓸 때도 내가 배운 것들을 어떻게 이 회사에 적용시킬 수 있을까를 적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나는 직무기술서에 검찰청과 1도 상관없는 사회적기업과 교직의 근무 경험을 이런 식으로 적용했다.


1. 밥 먹듯 제안서를 써봐서 문서작성은 어떤 것이든 소화시킬 수 있습니다.

2. 팀장까지 해봤기 때문에 인사, 회계 등 기본적인 회사 시스템은 알고 있습니다.

3. 말이 안 통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를 수없이 만나봤기 때문에 민원응대는 자신 있습니다.

4. 운전을 겁나 잘해서 성실한 출퇴근은 물론 외근도 잘 나갈 수 있습니다. (자차 보유)



  사회적기업 팀장으로 있을 때 나도 접수받은 이력서를 숱하게 검토하였다. 다들 어려서부터 우리집은 가난했었고 엄격하신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 밑에서 열공하여 장학금 탔다는 이야기를 바탕체로 적으시는데.

  정말 내가 궁금한 건 성장과정이 아니라, 이 선생님이 아이들과 수업하는데 어떤 식으로 지도할 것인지, 자유로운 놀이 타입인지, 엄격한 생활지도형인지, 아이들과 함께 놀아줄 본인만의 필살기는 있는지, 등등 이력서에 단어로 쓰기 애매한 자랑거리들이 궁금했다. 하다못해 체력이 좋아서 아이들이랑 3시간 동안 놀아도 지지치 않는다는 말이라도 있으면 좋겠건만,  그런 이야기는 아무것도 없고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취업을 희망하고 더 열심히 할 터이니 꼭 붙여주면 좋겠다는 본인의 요구사항만 써두신다. 열심히, 열심히, 열심히라는 단어만 잔뜩 적으시고, 뭘 잘하는지, 그간 살면서 무얼 했는지 다 비밀로 한 채 합격시켜 달라니... ㅠㅠ. 이러니 팀원들과 우리는 감히 이력서 앞면에 있는 스펙으로밖에 그분을 평가하지 못하는 참사가 일어난다. 작은 민간기업도 이러한데, 몇 번의 절차를 거치는 검찰청에서는 정성 들인 직무기술서의 비중이 훨씬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검찰청이 아니라, 어디에 입사지원을 하든지 최대한 나에 대해서 자세히 적는 게 중요하다. 예를 들어 이력서에는 내가 근무했던 회사의 이름밖에 적을 수 없지만, 직무기술서에는 어떤 업무를 했는지 적을 수 있으니까  <00구청 일자리 지원사업 운영 실무자. 00명 채용 관리 및 연수. (2016년), 00고등학교 2학년 부담임. 학급운영 전반> 이런 것들을, 사소한 것들까지 빼곡하게 적었다.


  검찰청 공무직(무기계약직) 지원자격은 진입장벽이 매우 낮다. 대한민국 국적, 만 18세 이상, 워드 또는 컴활 자격 소지자. 심지어 지원 서류에 나이 및 학력을 적는 란도 없다. 그러니 제출하는 서류가 중요하다. 나 역시 보통의 지방대학을 나왔고, 그 흔한 토익도 없다. 스펙이 좋다 보다는, 꼼지락꼼지락 쉬지 않고 일했던 경력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서류에, 특히 자기소개서에 정성을 들이는 편이다. 최대한 나를 깔끔하고 우아하게 자랑할 것. 막연하게 나에 대해 수다 떨지 말고, 내가 잘하는 것에 대한 진심을 적을 것.


  그리고 처음 사업제안서와 이력서를 비교해서 이력서 제출이 쉽다고 말한 것이 있다. 그러나 막상 공공기관에 응시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사실 매우 번거롭다. 소소하게 증빙할 서류가 많은데 그나마 검찰청은 학력과 관련된 증명서가 제외되어서 등본, 경력증명서 정도만 갖추면 된다. 그렇지만 가장 기본적인 증빙서류를 양식에 맞추어 제출하지 못하면 탈락은 당연하다고 본다. 반드시 제출할 때 편철 순서에 맞추어 제출하기를.


쉽다. 쉽다. 쉽다고 생각하자. 지원서를 내는 입장과, 받는 입장 둘다 해봤는데, 받는 입장이 더 어렵다. 그 사람이 60살이 될때까지 꼬박꼬박 200만원 이상을 줘야 하는데, 돈을 받으려고 하는 지원자보다는 돈을 주는 기업 쪽이 훨신 신중해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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