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는 피아노를 도전해 볼까 하다 포기했다. 40대(당시) 남자가, 다른 악기 경험도 없는데, 일 년 만에 배우기는 어렵다는 피아노 선생님의 조언을 들었다.
그래서, 통기타를 배워보기로 했다.
군대 시절, 기본코드 정도 잡아본 적이 있다. 마침 집에, 큰 아이가 사용하던 "세고비아 기타"도 있었다. 동네 주민센터에 강습을 등록했다. 초급반은 평일 낮이라 안되고, 시간을 낼 수 있는 토요일에는 중급반만 있었다. 실력은 전혀 중급이 안되었지만, 일단 여기에 신청했다. 강습료는 5개월에 6만 원으로 아주 저렴했다.
처음 수업하는 날, 연습곡이 '크라잉넛의밤이 깊었네'였다.
파워코드를 잡고, 어떤 줄은 소리 안 나게 뮤트도 시켜야 하는 주법이었다. 기본도 모르는 초보가 중급수업을 받으려니, 정신이 혼미했다.
연말에는 주민센터에서 발표회가 있었다. 공연에 참가할 실력이 안되는데, 인원을 채워야 지원금이 나온다고 해 억지로 참여했다. 다른 분들 연주할 때, 기타 치는 시늉만 했다. 무리하게 시작된 통기타 배우기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통기타 배우기'를 계속했다.
그리고, 9년의 시간이 흘렀다.
통기타 때문에 즐거운 때도 있었고, 후회되는 일도 있다.
"아 ~~~ 이렇게 했더라면, 좀 더 쉽게 기타를 즐길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도 남는다.
10년 차에 접어드는 요즘, 새로운 고민을 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기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나만의 방식으로 즐길 수 있을까?"
기타리스트(Guitarist) 선생님
주민센터에서 기타를 배울 때, 10여 명 수강생이 함께 했다. 가정주부와 중년 남자들이었는데, 최소 2년에서 10년 정도 기타를 배운 분들이었다. 가끔 수업 후,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선생님 흉을 보곤 했다.
"선생님은 어려운 숙제를 너무 많이 내주셔" "수업 시간에 화를 안내면 좋겠어, 왜 항상 열심히 안 한다고 혼내기만 하는 걸까?"
나중에 그 이유를 알았다. 통기타 선생님은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통기타 연주나 반주를 전문으로 하는 기타리스트(Guitarist),
둘째, 통기타를 치면서, 노래도 함께 가르쳐주는 선생님,
주민센터 선생님은 기타리스트였다. 노래에는 관심이 없고 많이 가르쳐주지도 않았다. 아마추어로 기타를 배우는 사람은 기타와 노래를 함께 배워야 한다. 그래야 배우기 쉽고, 기타 치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첫 선생님이 기타리스트였으니, 당연히 힘들 수밖에 없었다.
주민센터 수업이 끝나갈 무렵, 기타를 포기할 지경에 이르렀다.
제발, 열심히 하지 마세요
두 번째 수업은 회사 동료들과 받았다.
회사에서 소양교육을 받았는데, 본인이 원하는 예체능 분야를 정하고, 강사를 초빙해 배우는 프로그램이었다. 30명 넘는 동료들이 통기타 배우기를 지원했다. 절반 정도는 기타가 없어, 단체로 공동구매도 했다.
이번 선생님은 기타 연주와 노래를 함께 하는 분이었다. '유리창엔 비'를 부른 '그룹 햇빛촌' 활동도 하셨다. 최근에는 음악 녹음실을 운영하며, 대학교와 공공기관에 강의를 주로 하고 계셨다.
통기타 수업을 시작하면서, 선생님은 이렇게 강조하셨다.
"제발, 통기타 열심히 좀 하지 마세요."
"회사 일 하듯, 죽기 살기로 연습하는 분들이 있어요. 이런 분은 한 두 달 도전하다, 포기해 버립니다"
"여러분은 기타를 전공으로 할 게 아니죠? 그냥 기타 치고, 노래하며 즐기면 됩니다. 그러다 보면 기타 실력도 자연스레 늘게 됩니다."
수업을 시작한 지 3개월이 지났을 때,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처음 30명으로 시작했던, 수강자 중에 10명 정도가 포기했다. 평소에 남들보다 열심히 했던 분들이었다. 다행히, 남아 있는 20명은 선생님 조언대로 '열심히 하지 않고, 즐기려고' 노력했다.
통기타 열심히 하지 말라는 선생님과 송년 연주회
첫 번째 선생님은 열심히 안 한다고 혼을 냈는데, 이 선생님은 반대였다.
"열심히 하지 마라. 띵가 띵가, 즐겨라. 그러다 보면, 기타가 좋아지고, 실력도 늘게 된다."
주민센터 다니며 포기 직전이었는데, 덕분에 다시 기타를 즐기게 되었다.
개인 레슨
이후에도, 두 번 더 그룹레슨을 받았다.
직장 동료들과 선생님을 초빙해 수업을 받았다. 점심시간을 활용하고, 수업료도 일인당 3만 원 정도로 부담이 없었다. 하지만, 초보와 중급자가 섞여 있어, 진도를 나가기 어려웠다. 기본코드 잡고, 기본 주법(칼립소, 슬로 고고) 연주하며, 노래하는 게 전부였다. 이런 수업이 반복되었다.
기타를 배운 지 6년이 되었는데, 초급을 벗어나지 못했다.
기타 치며 즐기는 건 좋은데, 제대로 멋지게 한곡 연주할 실력은 안된다. 그러던 중, 대구에서 지방근무를 하게 되었다. 마침 회사 근처에 실용음악학원이 있어, 찾아가 상담을 받았다.
"통기타 배운 지 6년 되었는데, 아직 초보입니다."
"이것저것, 조금씩 배우긴 했는데, 한곡도 제대로 연주를 못합니다."
상담을 해 주던 실장님이 자신 있게 이야기했다.
"원장님께 일 년만 배우면, 통기타를 마스터할 수 있습니다."
"일단 믿고, 한번 배워보시지요"
처음으로 통기타 개인레슨을 받은 교재
주 1회, 1시간 개인레슨을 받았다.
일주일에 1시간이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전혀 그렇지 않았다.
새로운 코드와 연주법을 배우고, 일주일 연습한 후 검사를 받아야 했다. 레슨 받는 분들과 "버스킹 동호회"도 참여했다. 3개월에 한 번 발표회도 하고, 버스킹도 했다.
기타 배우기 7년 만에, 통기타 기본이론을 배우고, 다양한 연주법도 시도해 볼 수 있었다.
그룹레슨을 받으며, 이해되지 않았던 내용들이 조각조각 맞추어지는 느낌이었다.
비용은 좀 들었지만, 개인레슨을 받으면서, 왜 진작 하지 않았을까 후회했다.
주변만 맴돌던 음악 기본이론을 정리하고, 다양한 주법(16비트, 아르페지오, 퍼커시브 등)도 익혔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전주나, 간주에 나오는 멜로디 연주를 많이 배우지 못했다. 선생님은 몇 번 가르쳐 주려 했는데, 내가 부담스러워해, 중단했던 것 같다.
개인레슨을 받으며, 제자리를 맴돌던 기타 실력이 많이 좋아졌다. 처음부터 이렇게 배웠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2022년 11월, 개인 레슨을 받으며, 동호회원들과 정기 발표회
비싼 기타가 고장이 잘난다?
개인레슨을 받으면서, 기타도 하나 새로 장만했다.
동호회 회원 중에 '마틴 기타'를 가진 분이 계셨다. 중견기업 임원으로 계신 분인데, 700만 원에 구입했다고 자랑하셨다. 음악학원 원장 선생님도 같은 브랜드 기타를 가지고 계셨다.
다른 동호회원들이 가지고 있는 기타는 보통 4~50만 원대였다. 고가의 마틴기타를 만져보고, 소리도 들어보면서 다들 부러워했다. 어떻게 구입할 수 있는지, 원장님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비싼 기타가 좋긴 하지만, 요즘 달러 환율이 너무 높아요. 무리하게 구입하는 건 추천하지 않습니다."
"요즘 국산 기타 중에도, 소리가 좋고, 가성비가 우수한 기타가 많아요. 제가 하나 추천해 드릴게요."
원장님은 'G-wood'라는 국산 브랜드 기타를 추천해 주셨다. 동호회원들과 단체로 구매하며 할인도 받았다. 버스킹에 필요한 픽업(소리 증폭 장치)도 부착하고, 할인된 가격으로 100만 원 조금 더 주고 구입했다.
"세고비아 기타"로 시작해, 40만 원대 "DAME 기타", 이번 "G-wood 기타"가 세 번째다. 그동안 가져 본 기타 중, 가장 고가라 그런가, 소리가 좋았다.
기타를 구입한 지 몇 달 안 되었는데, 기타를 치면 "징~징~" 거슬리는 소리가 났다. 줄과 지판의 사이가 너무 가까워져 버징이 난 것이다. 기타 수리점에 가서, 손을 보고 왔다. 그리고, 3~4개월 지났는데, 이번에는 반대로 기타 줄과 지판이 많이 벌어졌다. 기타 줄을 누르기 힘들고, 하이코드를 잡을 때 맑은 소리가 나지 않았다. 기타 울림통 뒤편 나무가 갈라지는 현상도 보였다.
3달 만에 다시 수리점으로 달려갔다. 회사 강당에 기타를 두고 다녔는데, 날씨가 추워진 것이 원인이라 했다. 낮과 밤 온도가 급격히 변하면서, 기타에 변형이 일어난 것이다. 수리하시는 분이, 비싼 기타는 원래 고장이 잘 난다고 이야기해 주셨다.
처음에는 이게 믿어지지 않았다.
비싼 제품이면 더 좋아야지, 고장이 잘 난다는 게 언뜻 이해되지 않았다. 자세한 설명을 듣고 보니, 이해가 되었다. 고급기타는 원목을 사용하고, 울림을 좋게 하기 위해 나무판을 얇게 하기 때문에, 합판을 사용한 저렴한 기타보다 온도와 습도 변화에 민감하게 변화가 일어난다.
그래서 고가 기타를 가진 경우, 항온, 항습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아주 고가의 기타를 가진 분들은 별도로 "악기 방"을 정해두기도 한단다. 일반인이 그리 하기는 어려우니, 한 가지 요령을 가르쳐 주셨다.
"거실처럼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에 기타를 보관하세요. 너무 춥거나 더운 곳에 두면 고장 나기 쉬워요."
가장 많은 돈을 투자해 구입한 세 번째 통기타
통기타 9년 쳤는데, 지판을 몰라요
10월의 마지막 날, 기타 동호회원들과 작은 음악회를 가졌다.
실력 좋은 회원이 멜로디로 전주와 간주를 연주하는데, 멋져 보였다. 멜로디 연주를 몇 번 도전해 보았는데, 잘 안된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지판의 음계를 외우지 못했다. 통기타 배운 지 9년이나 되었는데, 아직 기본 스케일(도레미파솔라시도)도 모르고 있다.
위로가 되는 것은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통기타 치시는 분들 중에 20년, 30년이 되었는데 이런 분들이 많다고 한다. 그냥 코드 잡고, 스트로크 하며, 노래 부르다 보니, 기타 지판에 어떤 음계가 있는지 전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유튜브에서 "기타 포기하지 않게 하는 남자, 오부리 킴"의 영상을 보게 되었다.
아주 쉽게 기타 지판 외우는 법, 멜로디 연주하는 법, 악보 없이 반주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9년 만에 처음으로 기타 지판을 외웠다. 멜로디 연주도 연습했다. 복잡하고, 손가락도 아프지만, 스크로크 연주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혼자 있는 시간에 잔잔한 멜로디를 연주하다 보면, 기타의 새로운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최근에는 '스케일'도 익히고 있다. 기타로 '도레미파솔라시도', 음계를 치는 것을 스케일이라 한다. 다른 악기에는 '도레미파솔라시도'가 하나 또는 두 세트 정도 있는데, 기타에는 5~6 세트로 아주 많다. 6줄, 15 프렛에 걸쳐, 90개의 음이 지판에 퍼져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기타는 다른 악기보다 음계를 외우기가 어렵다.
'팬타토닉'도 배우고 있다. 많이 들어보긴 했는데, 이해하지 못했던 개념이다. 의외로 간단하다. "도레미(파), 솔라(시)도"를 치면, 이게 팬타토닉이다. 스케일에서 "파"와 "시"를 빼고 치는 것이다. 이런 게 왜 필요한가? 기타 연주 중에 사이음을 넣을 때, 간편하게 넣기 위한 것이다. 이걸 익히면, 코드로 화음을 연주하는 중간에 멜로디를 즉흥적으로 반주로 넣을 수 있다.
이 영상을 보고, 멜로디 연주를 시작하면서, 한 가지 교훈을 얻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단, 도전은 하되, 욕심내지 말고, 내 수준에 맞게 즐겁게 연습하자."
나에게 맞는 통기타 즐기기
사람들이 가장 많이 도전하는 악기가 '통기타'라고 한다.
가장 많이 포기하는 악기도 역시, '통기타'다.
통기타를 연주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초보때는 기본코드로 스트로크, 아르페지오 연주를 주로 한다. 중급이 되면 파워코드, 세븐스 코드로 확장하고, 주법도 더 다양해진다. 코드로 화음을 치면서, 멜로디를 함께 연주하기도 한다.
잡기 힘든 코드, 복잡한 주법, 멜로디 연주 등등.... 어려운 연주를 하려고 하면 한도 끝도 없다.
얼마 전, TV 예능프로그램에서, 가수 노사현 님이 기타 치는 모습을 보았다.
양희은 님의 '한 사람'이란 곡을 직접 기타를 치면서 노래했다.
C코드를 잡고, 드르렁~ 한번 긋고서, 노래를 시작했다.
한~ 사람 여기, 또~ 그 곁에~
둘이 서로~, 바라보며~ 웃네~~~
노사현 님이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기타 실력이 돋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모습은 멋졌다. 기타의 반주음과 노사현 님 특유의 허스키한 음성으로 부르는 '한 사람'은 양희은 님의 원곡과는 다른 진한 감동을 주었다.
"맞아~~~, 기타는 노래를 위해 반주를 하는 거잖아."
"내 노래에 맞추어, 기타 연주를 활용하면, 즐겁게 노래하고, 멋진 연주를 할 수 있어."
통기타 배우기에 도전한 것은 참 잘한 일이다. 통기타는 내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제 10년 차를 맞이하며, 새롭게 각오를 다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