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라는 도전.
내 인생에서 이토록 뚜렷한 목표가 있었던 적이 있었을까? 간절히 원했던 적이 있었던 걸까?
고등학생이었을때 만연히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야겠다 생각을 했었다. 과는 상관없다. SKY 가면 좋겠지만 못가도 상관없다. 그저 서울 사대문 안에 있는 대학만 가면 된다. 이런 생각으로 공부를 했고, 수도권 대학에 진학했다. 그 후 나는 좌표 잃은 배처럼 물 흐르듯 살았다.
<대충대충 사는 거지 뭐. 내가 하고 싶은 공부도 없고, 이 전공도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이 성적 맞춰 쓰는 거라 해서 선택한 거고. 일단 3년간 최선을 다해 수도권 대학에 입학했으니 그걸로 된 거지.>
꿈과 희망은 사치고 일단 수도권 대학 진학을 목표로 경주마처럼 달려야만 했던 때였다. 합격 후 기쁜 건 잠시 뿐 허무했다. 대학이름을 따기 위해 6년간 귀밑 단발머리를 유지하고, 운동이나 악기는 하나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채로 20살이 되어버린 나 자신이 가여웠다. 아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지쳤던 것 같다. 재미있었던 부분도 있다. 같은 과 친구와 함께 SBS, KBS, MBC 방송국에 자주 갔었다. 출근하는 연예인을 보기 위해. 처음으로 방송국 앞에서 연예인을 보았던 날, 지방에서 서울로 대학 오길 참 잘했단 생각을 했다. 그 뒤로는 인생이 흐지부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냥 살던 인생이었다.
대학 졸업하고 취업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경력 단절 여성이 되었다.
<어차피 암환자라 다니던 회사도 떼려 쳐야 할 판이었는데 뭐. 내가 다 죽게 생겼는데 직장의 유무가 뭔 상관이야.>
이렇게 생각하니 한결 편안하다.
뉴질랜드의 삶은 평화롭다. 아침에 도시락을 싸고 등교시키고, 공원 산책 혹은 조깅을 하고, 카페에서 브런치 먹고, 샤워하고, 하교 시간에 맞춰 픽업 가기. 혹은 등교시키고 등산을 가기고 한다. 영어 공부를 위한 시간은 없다. 내 몸이 건강해지고 이곳 생활이 익숙해지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뉴질랜드에서 새로운 도전을 해봐?>
영어를 잘한다면 뉴질랜드에서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am8:30~pm2:30까지 자유다. 나의 딸이 학교를 가는 시간이다. 이 시간을 그냥 보내고 싶지 않았다. 유학생 부모들은 알 것이다. 대부분 엄마들만 온다. 그래서 크고 작은 유학원을 통해 입국한 엄마들은 유학원 입국 동기들과 교류를 많이 하는 편이다. 함께 브런치 카페를 가거나 골프, 테니스를 치기도 한다. 혹은 수영, 필라테스를 함께 하기도 한다. 큰 유학원에서는 무료 영어 수업이 있어 그곳에서 한 시간씩 영어 수업을 듣기도 한다. 가족끼리 함께 온 사람들은 부부 동반 골프 모임 혹은 부부 동반 카페 모임을 갖기도 한다.
나는 나의 딸이 학교를 간 사이 영어 공부를 하고 싶단 생각을 했다. 그래서 몇 주 전, 집 근처 어학원에 시험을 치고 왔었는데 그동안은 자리가 없어 수업을 듣지 못했다. 다행히 수업을 들을 수 있단 메일을 받고 지난주부터 학원을 다녔다. 영어 학원을 다니다 보니 글을 쓸 시간도 체력도 없어 글이 늦어졌다.
뉴질랜드 학교는 급식 시스템이 없다. 스낵 타임과 런치 타임이 있기 때문에 2개의 도시락이 필요하다. 아침에 도시락 싸고, 아침 차리고, 나도 학원 갈 준비 하고 하려면 평소보다 30분 일찍 일어나야 한다. 그래서 요즘은 새벽 6시 30분에 일어난다.
<힘들다. 그런데 할만하네.>
역시 사람은 목표가 있어야 한다. 내 삶의 목표가 뉴질랜드에서 대학 입학이 정해 지니까 새벽같이 일어나는 것도, 학원가는 것도 힘들지 않다. 뭔가 삶이 활력이 생긴다. 그동안은 무채색의 무의미한 시간들이었다면 지금은 환한 빛으로 가득한 컬러풀한 세상이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뉴질랜드에서 대학을 가려면 학과에 따라 요구하는 영어 시험 레벨이 다르다. 학과에 따라 그린 레벨이라면 영주권 도전도 가능하다. 대학에 대한 정보는 유학원에 문의해도 충분히 자세히 알려 준다. 또는 검색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뉴질랜드에서 대학을 다니면 아이는 학비가 무료라는 장점도 있다. 학비가 이중으로 들지 않고 한쪽은 무료이니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유학생이민자에게는 꿀팁이다.
영어 성적을 받기 위해서는 영어 공부가 필수다. 그래서 나는 집 근처 어학원에 등록했다. 등록비가 오우 비싸.
<영어를 쓰는 나라니까 영어 학원 비용은 저렴하겠지? 오산이다. 비싸다. 인건비가 비싼 나라이다. 그러니 당연히 학원비가 비쌀 수밖에. 그래도 너무 비싸.>
진짜 뉴질랜드는 돈 없으면 살 수 없겠다. 뭐만 하면 다 돈이다. 한국은 돈 많으면 생활의 편리함이라도 있지. 이곳은 돈이 많이 든다. 편리함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자연이 좋잖아....... 소고기도 싸잖아. 골프도 싸.........
어쨌든 주 3회 am 9시-12 수업 비용이 60만 원이 넘는다. 그중에 30분은 티 타임. 진짜 수업 시간은 2시간 30분이다. 나는 영어 학원을 가면 영어로 이야기를 많이 할 줄 알았는데. 영어 학원에서는 문법 위주의 수업이다. 강남 YBM 어학원이나 타우랑가 어학원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냥 문법 듣고 하루 종일 문제 풀고. 지친다.
<말이라도 많이 하면 좋겠구먼. speaking은 언제 하게 되나요?>
시험 대비반도 아닌 그냥 제너럴 반도 문법 위주로 수업을 한다. 내 생각이지만 영어 스피킹을 위해서는 학원을 다닐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차라리 현지 친구를 사귀어서 친구와 이야기를 하는 편이 훨씬 나은 방법이다.
나는 영어 시험을 쳐야 하니까 문법 수업에 큰 불만은 없다. 그런데 문제는 문법을 한국어로 들어도 어려운데 영어로 문법을 배우려니 엄청나게 힘들다.
학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오자마자 한국어로 다시 그 문법을 공부한다. 그렇다. 나는 해커스 온라인 1년을 등록했다. 뉴질랜드에서도 학원을 다니고, 온라인으로 해커스 수업을 또 듣는다. 그리고도 이해가 안 될 때는 유튜브로 다시 검색한다. 그리고 숙제도 있다. 항상 숙제가 있는 건 아니다. 숙제가 있을 때는 몇 장씩 있기도 하다.
<영어 공부는 왜 끝이 없나요? 학창 시절 대한민국에서 10년을 영어 공부를 했고, 외국어 영역시험으로 대학 입시까지 봤는데요? 왜 그런 거예요? 말을 못 해요. 문법도 다 까먹었어요.>
안타깝게도 암기식 입시 영어를 배운 탓에 내 기억 속에서 말도 문법도 단어도 많이 사라져 버렸다. 그래도 이곳에서 살면서 말은 곧잘 하는데, 문법은 어렵다. 문법을 위해 학원을 다니려고 한다면 한국어로 수업을 듣는 게 훨씬 좋을 것 같다.
그러면 학원은 왜 가야 할까? 영어 리스닝을 위해서다. 문법을 알려주기 위해서는 선생님이 끊임없이 영어로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자꾸 듣다 보면 귀가 뚫릴 것이라 믿는다. 또 다양한 나라의 외국인 친구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 그런데 학원생의 대부분은 한국 인다. 나의 반에는 중국인들도 있다. 중국어와 영어가 함께 들리는 수업을 매일 듣고 있다.
뉴질랜드에서 살면서 나의 교만함을 버리게 되었다.
<다 있다고 행복하지 않더라.>
한국에서 살 때는 크고 넓은 아파트에 비싼 외제차를 타고 명품을 들고 입고 신고 다녔다. 외부에서 나를 보는 시선을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뉴질랜드에서는 타인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다. 내가 살고 있는 타우랑가 학교에서 럭셔리 브랜드를 착용한 사람은 딱 세명 본것 같다. 한국인 한분은 셀린느 나일론 힙색을, 다른 한국인 한분은 디올 슈즈를. 인도인 아저씨는 버버리 티셔츠를.
한국에서는 많은것을 갖추고 살아도 행복하지 않을때가 많았다.
<**엄마. 아니 남편도 의사라면서 왜 가방을 그거 들고 왔어. 내가 보니까 몇번 들고 다니더라. 그거 자기가 좋아 하는 가방이구나? 나 오늘 백화점 **매장 가는데 같이 안갈래요? 가서 하나 사자. 신상도 많단 말이야. 같이 갈꺼지?>
이런 말을 듣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웃으며 친절을 가장한 말 속에는 경제력 차이로 사람을 내려 찍는 칼이 숨겨져 있다. 말속에 칼이 있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곤 했다. 학교를 보내고 나면 별의 별 사람들을 다 만나게 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뉴질랜드도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니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존재 한다. 하지만 집 밖에 만나는 낯선이 누구와도 인사를 나눌 수 있고, 하늘을 쳐다볼 수 있다. 새파란 하늘과 구름이 주는 아름다움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한국에 살때는 거창한 것에 현혹 되었었다면 지금은 나라는 사람 자체에 현혹되어 있다.
영어로 유창하게 이야기하고 대학을 다니고, 대학을 졸업하고 뉴질랜드에서 취업하여 안정적으로 타우랑가에서 살고 있을 미래의 나 자신에 대해 상상해 본다.
<뉴질랜드에서 이것 저것 도전하면서 나 다움을 발견 하는 것. 그로인해 나도 누군가에게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