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딸, 리나는 스쿠터를 타고 학교를 간다. 그러면 나와 남편은 매일 아침 조깅을 하게 된다. 리나의 스쿠터를 따라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뛰고 또 뛴다. 리나가 스쿠터를 멈추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뛰다 보면 등교하는 아이들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걷는 아이, 뛰는 아이, 스쿠터 타는 아이, 자전거 타는 아이, 강아지의 리드줄을 잡고 등교하는 아이 등. 학교 정문에 도착하면 환한 미소로 등교하는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는 선생님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선생님들이 자동차를 타고 등교하는 아이들을 위하여 뒷좌석 문을 열어 주는 모습도 당연히 볼 수 있다. 학교의 행사가 있는 날이면 교장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이 코스튬 의상을 입고 아이들과 환화게 웃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오늘도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고 스쿠터 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주차 후 리나가 헬멧을 벗고 가방에 헬멧을 걸려고 가방을 찾는데, 앗뿔싸!!!
책가방이 없다.
책가방을 남편도 나도 리나도 챙기지 않은 것이다. 우리 가족 중 단 한 명도 리나의 책가방을 챙기지 않았던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방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셋이서 빵빵 터지게 웃었다.
당장 집으로 달려가야 할까? 아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
한국이었다면 어땠을까? 당장 집으로 뛰어가지 않았을까? 내가 지금처럼 속 편하게 아이와 함께 웃을 수 있었을까? 가끔은 책가방을 잊어버릴 수도 있는 거 아닐까?
뉴질랜드 공립 초등학교의 학생 책가방에는 반드시 도시락 2개와 물통, 학교 모자를 챙겨 가야 한다. 책은? 일주일에 한 번 학교 도서관에서 대출하거나 반납할 때 책을 넣어간다. 나머지는 학교 개인 서랍에 들어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한국의 학생들은 책가방에 많은 것들을 넣어 다닌다. 방과 후 수업도 가야 하고, 학원도 가야 하고, 학교 준비물들도 있고, 학교에서 책 읽는 시간에 읽어야 할 동화책 2~3권 넣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책가방은 학습을 위한 도구이고, 뉴질랜드에서의 책가방은 생존 도구이다. 뉴질랜드 책가방에는 도시락, 물이 필수이니까.
리나와 우리는 스쿠터&자전거 주차장에서 교실까지 걸어가며 리나의 친구를 만나 인사를 하기도 했다. 교실에 도착한우리는 선생님과 잠시 인사를 나누면서 가방을 놓고 온 해프닝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Oh. Lovley my girl."
이라며 선생님께서 환하게 웃으시며 리나를 안아주었다. 리나의 친구들도 반갑게 안으며 인사를 나누었다. 뉴질랜드 키위의 아이들은 눈빛이 초롱초롱하다. 맑고 투명하다. 그런 아이들과 함께 학교를 뛰어다니고, 함께 공부를 할 수 있다니..
서로를 향해 반갑게 눈을 마주치고 환한 미소로 서로를 안아준다.
평범한 아침이 특별한 아침이 되는 순간이다. 어쩌면 아이들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서로를 향한 솔직한 스킨십과 맑고 밝은 미소일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적절한 인성 교육이 되는 건 아닐까? 아이들은 언제나 솔직하다. 어릴수록 특히나 더. 작은 것에도 함께 웃고, 큰 것에는 더 크게 함께 웃는다. 오늘 아침 리나의 책가방 해프닝으로 리나의 반 친구들은 각자의 해프닝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웃고 떠들고 또 서로의 손도 잡고 서로 안기도 하고.
한국의 아이들이 지나친 선행 학습으로 몸도 마음도 정신도 빠르게만 채찍질하는 속도에 지친 모습이라면 뉴질랜드의 아이들은 느리지만 각자의 속도에 맞게 서로를 향해 미소 짓는 법을 먼저 배우는 것 같다. 한국인으로서 슬프지만 한국과 뉴질랜드는 문화도, 인종도, 나라가 처한 지리적 위치도, 역사도 다르기에 감히 비교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두 나라 모두 장단점이 있으니까 말이다.
나는 이곳 뉴질랜드에서 장점과 단점을 찾기보다 고요함 속의 풍요로움을 찾기를 바란다. 뉴질랜드의 환경은 한없이 고요하고 한없이 아름답고 한없이 눈이 부시다. 집 밖은 온통 초록으로 가득 차 있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향하면 온통 푸른색과 흰색으로 가득 차 있다. 귓가로 들려오는 소리는 새소리로 가득하다. 눈으로 보이는 모든 색과 귓가로 들려오는 모든 소리, 피부를 스쳐 지나가는 그 모든 것들은 충분히 아름답고 풍요롭다.
그 모든 것의 풍요로움이 전달될 때 비로소 나는 느낄 수 있다.
나는 지금 뉴질랜드에서 치유받고 있구나.
나의 집에서 학교를 가는 길은 2가지다. 도로를 따라가느냐, 공원을 지나서 가느냐. 리나의 책가방을 가지러 집으로 되돌아가야 했기에 나와 남편은 공원을 지나 집으로 가는 방향으로 정했다. 남편과 나는 손을 잡고 천천히 집을 향해 걸었다. 걸어가는 동안 왼손에는 신발을 든 채로. 맨발로 땅을 느끼며 걸었다. 걸어가는 동안 우리는 하늘의 구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올리브 나무의 나뭇잎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지나가는 새들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와 책가방을 다시 챙겨 학교에 갔다 주었다. 시간을 보니 오전 9시.
남편과 나는 단골 카페로 향했다. 그 카페는 학교에서 차를 타고 15분 정도 가면 있는 동네에 있다. 우연히 중고샵을 돌아다니다 발견한 곳이다. 작고 아담한 카페 벽에는 알파카 그림이 걸려 있다. 언뜻 보면 칠레보다 마야 문명의 그 어느 나라의 그림 같기도 한 그림들도 걸려 있다. 어쨌든 사장님은 칠레에서 온 이민자이다. 사장님은 유쾌하고 친절하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쿠폰에 도장을 확실하게 빼먹지 않고 찍어 주고, 그 쿠폰은 카페 카운터에 보관을 해준다. 게다가 커피가 정말 맛있다. 나는 커피 전문가는 아니지만 커피의 탄맛을 싫어한다. 여기 카페는 물 넘어가듯 술술 들어간다. 커피 향도 맛도 너무나 부드럽다. 사장님이 직접 만드는 베이커리와 샌드위치도 맛있다. 나는 항상 에그타르트와 카페 라떼, 남편은 아메리카노와 시금치가 들어간 샌드위치 혹은 당근케이크를 주문한다.
오늘도 똑같은 메뉴를 주문하고 똑같은 쿠폰 카드에 도장을 찍고 어제와는 다른 대화를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