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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는 김에 뉴질랜드 Nov 16. 2024

응급실의 아이스 블럭은 사랑이다.

뉴질랜드 감기 다 이겨!!

리나는 일요일부터 고열이 나기 시작했다. 목요일에 닥터스에서 진료를 보았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병원에서는 괜찮다고 했다. 바이러스가 들어와서 그렇지 물 많이 먹고 푹 자고 쉬면 나아진다고 했다. 그래서 따로 처방전 없이 집으로 돌아왔었다. 그렇게 금요일이 되었다. 금요일이 되어도 열은 38,39,39.8을 아슬아슬 넘나들었다. 기침도 심해지고 복통을 호소하는 횟수가 늘었다. 남편은 걱정이 된다며 다른 병원은 없는지 인터넷에 검색을 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리나는 해열제, 항생제, 콧물기침약, 유산균을 계속 먹으며 버텨내야 했다. 아이는 점점 기운이 쳐져서 잠이 드는 횟수가 늘어났다. 가래 끓는 기침은 숨이 막힐 정도로 해댔고, 기침이 심해지면서 먹은 음식을 토해냈다. 그러다 보니 음식도 잘 안 먹으려고 했다. 한국에서 의사를 했던 아빠의 입장에서는 고열이 5일 이상 지속되면 체크가 필요하다 판단했다.


하지만 이곳은 뉴질랜드. 


뉴질랜드에서 만난 의사 선생님은 보통 몇 주씩 지속될 수도 있으니까 해열제 먹고, 푹 쉬어야 한다고 했다. 한국인 의사 아빠 입장에서는 애가 타 들어가고 있었다. 도저히 안되어 우리는 유학원에 문의하여 응급실을 가기로 결정했다. 


두둥! 응급실이다.


응급실로 향한 시간은 금요일 저녁 9시다. 병원은 시내에 위치해 있다. 네비를 찍어 보니 집에서 20분 거리다. 하필 금요일은 하루 종일 비바람이 몰아 쳤다. 가방에는 물, 체온계, 담요, 패드, 충전기, 해열제, 열패치를 챙겼다. 유학원에서 뉴질랜드 응급실은 대기와의 싸움이기 때문에 충전기는 필수템이라고 알려줬다. 여권도 필수다. 응급실로 가는 길에 빨간색 차가 우리 앞에 신호대기를 하고 있었다. 유학원 원장님 차다. 우리는 나란히 병원 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원장님도 급하게 나온 티가 역력했다. 

리나는 정말 건강하다. 구릿빛 피부와 굳은살이 박힌 손바닥이 증명한다. 뜨거운 햇살아래 멍키버즈를 매일 같이 연습하고, 경험하지 않은 스포츠도 도전하려 하고, 누구와도 잘 이야기를 나누며 잘 노는 외향적인 아이다. 그런 아이가 5일이 넘게 고열이 지속되어 물먹은 솜처럼 축 쳐진 걸 보고 원장님도 흠칫 놀랐다. 응급실로 들어가 보니 의외로 사람들이 많이 앉아있다. 물어보니 기다리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접수대에서 접수를 하고 닥터스에서 썼던 서류와 비슷한 서류를 작성했다. 서류 작성은 원장님이 대신해 주었다. 


사람이 당황하니 Sur name, Last name이 기억이 나질 않았다. 해석 불가 상태였다.

데스크에 서류를 내고 웨이팅 룸에서 간호사가 부를 때까지 대기하라고 알려줬다. 팔목에 감는 노란색 밴드도 준다. 팔목에 차는 노란 밴드에는 이름, 나이, 생년월일, 주소, 전화번호가 적혀 있다. 응급실 대기실은 어린아이들의 울음소리와 텔레비전 사운드로 혼돈의 카오스였다. 대기실에서 20분 정도 대기 했을까? 간호사가 우리를 불렀다. 투명 플라스틱 벽 너머에 마스크를 쓰고 간호사는 몇 가지 질문을 했고, 당황한 우리를 대신해 원장님이 친절하게 통역을 해주었다. 대기가 길기에 원장님과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었다. 원장님과 앉아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년에 팔이 부러진 유학생을 데리고 응급실에 왔었어요. 엄청나게 쎈 진통제를 먹고 대기하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약이 너무 쎄서 애가 그걸 먹고 잠이 들었어요. 3시간 만에 겨우 의사를 만나서 붕대를 감았었어요. 여기는 정말 응급하다. 정말 생사를 넘나 든다. 그러면 곧장은 아니지만 조금 빨리 봐줘요. 그리고 응급의 순서에 따라 대기해야 해요. 한국에서는 이런 시스템이 적응이 안 되실 거예요.  한국의 의료 시스템과는 완전히 다르지만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니까 기다려 봅시다. 


막연하게 기다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원장님은 중간에 집으로 돌아가시고 우리는 남아서 대기를 했다. 그 후 20분 정도 기다리니 남자 의료진이 밖으로 나와 예진이 이름을 불렀다.


"웨진?"

우리는 벌떡 일어나 그 의료진을 따라 응급실 진료 안으로 들어갔다. 의사 선생님인 줄 알았는데 간호사였다. PA간호사다. 간호사 선생님은 아이가 긴장하지 않게 어디가 아픈지 물어보면서 중간중간 학교 생활에 대해 물었다. 요즘 유행하는 로제의 아파트 노래를 아냐며 노래를 불러 주기도 했다. 간호사 선생님의 진찰이 끝나고 나갈 때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해주었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필리핀 사람이라 한국인을 좋아하고 한국어도 조금은 할 수 있다고 했다. 대기실에서 다시 기다림의 연속.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그 간호사 선생님이 다시 불렀다. 진료실 안으로 들어간 우리는 간호사 선생님으로부터 간단한 키트 검사 결과를 듣고, 약과 물을 건네받았다. 

키트 검사는 괜찮아요. 이 약은 먹어야 해요. 

혹시 '아이스 블럭' 줄까요????

아이스 블럭???


약과 물, 아이스 블럭을 받아 들고 다시 웨이팅 룸으로 나왔다. 감기 때문에 병원에 왔는데, 아이스 블럭을 준다. 아이러니하다. 희한하다. 이상하다. 그런데 나쁘진 않은 것 같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니. 감긴데. 약이랑 함께 먹으라고 아이스 블럭을 준다. 와우.


리나는 아이스 블럭을 받아 들곤 또 응급실에 오고 싶단다. 리나는 기침을 하는 와중에 손 빠르게 아이스 블럭 봉지를 뜯어 입에 넣었다. 


엄마, 이건 의사 선생님이 합법적으로 먹으라고 준거야.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이 환자에게 준 아이스 블럭이니까 먹지 말라고 말하지 마. 이건 의사 선생님 처방이야.


한국인 입장에서는 어이없는 일일지 몰라도, 이곳에서는 강하게 키운다. 


강인한 정신에 강인한 마음에 강인한 몸. 이것이 뉴질랜드를 관통하는 세계관이다.


강인함.!!!! 또 강인함!!!

선생님이 준 약과 아이스 블럭을 먹고 기다린 지 1시간이 넘었다. 거의 2시간이 다 되어 갈 때 아시안 남자 의료진이 나와 리나의 이름을 불렀다. 의료진을 따라서 아까와는 다른 오른쪽 문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한국에서 보는 의사 선생님의 진료실 방이다. 진료실에 들어가니 의사 선생님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다시 침착하고 즐겁고 유쾌하게 리나의 상태를 물어보고 진료를 했다. 의사 선생님의 유머가 재미있었는지 리나는 연신 싱글벙글 이었다. 선생님께서 고열이 5일 이상 지속되어 피검사를 해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보통은 검사를 잘 안 한다고 들었는데 웬걸? 다행스러웠다. 의사 선생님이 피를 뽑기 위해 리나의 팔에 스프레이 마치제를 뿌렸다. 그리고 한 번에 피를 뽑았다. 그러는 동안 아이가 긴장하지 않게 리나의 일상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를 나누면서 알게 된 건 의사 선생님도 홍콩에서 온 이민자라는 것이다. 가만히 보니 의사도 간호사도 이민자들이 있다. 한국은 없는 것 같은데 말이다. 피검사 결과는 45분~50분 뒤에 나온다고 했다. 진료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의사 선생님이 또 아이스 블럭을 주었다. 

뉴질랜드. 정말 강인한 나라구나.


의사 선생님이 주고 간 아이스 블럭은 매직과도 같이 리나의 입으로 사라졌다. 그 후, 피검사도 괜찮다며 집으로 가도 좋다고 했다. 선생님은 해열제 2가지를 처방전으로 내주었다. 의사 선생님이 건네준 종이 2장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한국 같으면 계산을 하고 가야 하는데, 뉴질랜드는 카운실에서 청구한다. 결제 시스템도 살짝 다르다. 집에 돌아오니 새벽 2시가 훌쩍 넘었다. 


오늘도 기침과 열을 앓고 있다. 언제쯤 지독한 바이러스가 달아날까?


*아이스 블럭- 레몬에이드맛 아이스크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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