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공간에서 다섯 해를 지내다 보면, 청소년들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다는 특별한 선물을 얻게 된다. 장난기 가득하던 아이들이 어느새 어른스러워지고, 그 변화 속에서 성장의 나이테를 하나씩 발견하곤 했다. 그들과 함께하면서 나 역시, 시나브로 디딤돌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그들의 진로 고민은 물론, 사적인 이야기도 조용히 들어줄 수 있는 스킬을 터득했다. 지도사로서의 자질을 조금씩 갖춰가는 시간이었다. 물론, 나보다 더 능숙한 고수들이 여전히 많았다.
17기 청소년운영위원회는 유독 재치 있는 친구들로 구성됐다. 자기소개 시간마다 넉살 좋게 “서울대생입니다!”라고 외치던 상우와 명헌,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귀여운 표정을 짓던 홍관과 경환, 외모에 늘 신경 쓰던 종원까지, 각자의 개성으로 똘똘 뭉친 혈기왕성한 고등학생들이었다.
청소년운영위원회 교류활동이 열리던 날, 다른 시설 위원회가 우리 수련관에 방문해 함께 활동을 진행했다. 시설 라운딩 후 레크리에이션이 시작됐다. 팀 인원이 고르지 않아 한쪽이 부족할 때마다 청소년들은 어김없이 나를 불렀다. 몸을 사리지 않고 함께 망가져 주는 나의 모습은 그들과 호흡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무기였다.
그 모습을 본 타 기관 선생님들은 부러운 눈빛으로 다가왔다. 어떻게 하면 청소년들과 저렇게 가까워질 수 있냐며 조심스럽게 물어보기도 했다.
땀 흘린 레크리에이션이 끝난 뒤에는 각 시설과 청소년운영위원회를 소개하는 홍보 시간이 이어졌다. 팀별로 전지 1절 크기의 종이를 나눠주고, 그 위에 팀 미션을 작성하게 했다. 재미있게도 청소년들은 수련관 홍보 포스터 속에 내 캐리커처를 그려 넣고, “우리의 영원한 선생님”, “웰컴 투 청관”, “안 오면-콜” 같은 문구를 적어 카드뉴스를 만들었다.
회의나 활동이 있을 때마다 나는 4주 전부터 공지를 시작해 매주 단체 채팅방에 알림을 올렸다. 그래도 빠지는 친구들이 생겼고, 참석 의사를 밝혔던 친구가 불참하는 경우도 있었다.
20명 중 적어도 15명 이상은 참여할 수 있도록 늘 신경을 곤두세웠다. 물론, 그들도 바쁘다. 학사 일정이 빡빡하고, 시험이 끝나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영화도 보고, 친구들과 게임도 해야 한다. 그들의 시간도 소중하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수련관이 그들에게 조금 더 익숙하고 편안한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그래서인지 그들에게 자연스럽게 집착에 가까운 애정을 갖게 됐다.
누군가가 “오늘은 못 갈 것 같아요”라고 하면, 나는 “그래, 그렇게 해”라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대신 “왜?”부터 물었다. 진짜 이유가 있는지 확인하고, 정말 어렵다면 받아들였다. 하지만 약속의 중요성은 늘 강조했다. 그래서 한 달 전부터 공지를 하고, 일정이 다가오면 더 자주 알림을 보냈다. 필요하면 개별적으로 연락해서 상황을 확인하기도 했다. 늦은 밤까지도 청소년들과 톡을 주고받으며 함께 움직였다.
중요한 날에는 아침부터 그들을 깨우기 위해 직접 전화를 하기도 했다. 일어났는지, 준비는 했는지, 버스는 탔는지… 그렇게 나는 그들을 챙기며, 함께 걸어왔다.
나도 그들과 함께 한 뼘씩 성장할 수 있었다. 지금쯤 그들은, 어딘가에서 저마다의 빛을 조용히 밝혀가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