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에 구었던 유과와 강정 맛을 아시나요?
요즘 들어 부쩍 초저녁잠이 들었다가 새벽녘에 눈을 뜨곤 합니다. 오늘 할 일을 머릿속에 그리기보다, 나이 든 탓인지 자꾸만 옛 기억의 타래가 새삼스레 풀려나옵니다. 특히 설이 가까워지니 온종일 설 음식 준비로 분주하던 그 시절, 굴뚝에서 끊임없이 피어오르던 하얀 연기가 못내 그립습니다.
지금도 코끝에는 유년의 기억이 밴 부엌 냄새가 맴도는 듯합니다. 부엌문을 열고 들어서면 입구에 나무 한 단 정도가 넉넉히 들어가는 '나무청'이 있었지요. 요즘으로 치면 연료를 공급해 주던 에너지원이었던 셈입니다. 나무가 떨어질 새라 일 도와주시는 삼촌들이 부지런히 짐을 날랐고, 가을이면 허가받은 산에서 베어온 솔갱이(솔가지) 단이 뒤꼍 나무청에 산처럼 높이 쌓이곤 했습니다.
설이 코앞으로 다가오면 가득했던 나무 곳간도 조금씩 비어갔습니다. 아궁이 속에서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소리와 집안 가득 퍼지던 마른 솔잎 향기가 참 좋았습니다. 유과나 강정을 만들려면 주재료인 쌀이 필요한데, 사실 그 달콤한 맛을 보기 위해서는 이른 봄부터 긴 정성을 들여야 했습니다. 어디 과자뿐이었을까요. 우리가 먹는 모든 먹거리는 이미 봄부터 그 여정을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집 농사 회의는 늘 밥상머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인자 볍씨 담글 때가 다 되가제?"
할머니의 말씀이 떨어지기 무섭게 어머니의 마음도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의 물음에 윤 씨 아저씨는 마시던 숭늉 대접을 내려놓으며 대답하셨지요.
"집 앞 논에 물이 어지간히 찼은게 담가도 돼겄구만요."
삼촌은 남은 숭늉을 단숨에 들이켰습니다. 대대로 내려온 집 앞 못자리에 물이 찰랑거리면, 하루 종일 써레질로 논을 골랐습니다. 그러고는 밀가루 반죽을 치대듯 흙을 주물러 정성껏 모판을 만들었습니다. 드디어 모판이 완성되고 며칠 전 담갔던 볍씨를 뿌리면, 어린 모들은 봄바람과 햇살 아래 삼촌들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라났습니다. 어느덧 바람결에 푸른빛이 이리저리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집 저 집 서로 품앗이를 하며 모내기에 나설 때면 마을 전체가 들썩였습니다. 학교 다녀오는 길에 얻어먹는 '모 밥'은 왜 그리 꿀맛이었는지요. 모가 뿌리를 내리자 뙤약볕 사이로 사그락사그락 소리를 내며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연둣빛 옷을 초록으로 갈아입은 나락들은 여름내 쏟아지는 장대비를 견디며 땅속 깊이 뿌리를 박았습니다.
밥상머리에서 할머니는 다시 한마디를 얹으셨습니다.
"배롱나무 꽃이 핀 걸 보니 부지런히 피살이를 해야겄다. 저 꽃이 세 번 피었다 지면 나락이 다 여물어간다."
하지만 처서가 지나고 몰아친 폭풍은 야속하게도 다 영글어가는 나락을 쓰러뜨려 논 한가운데 넓은 마당을 만들어놓곤 했습니다. 윤 씨 아저씨와 동현이 오빠는 바지를 정강이까지 걷어 올린 채 쓰러진 나락을 세우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거친 낱알에 긁혀 핏발이 선명해진 팔목과 정강이를 보며 농사의 고단함을 어린 마음에도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황금 들판에 메뚜기가 뛰놀면 드디어 수확의 계절입니다. 우물가 확독 밑 숫돌에 낫을 슥삭슥삭 갈아 손끝으로 날을 확인하던 삼촌들의 표정은 비장하기까지 했습니다. 한 손으로 나락 포기를 잡고 "착 착" 쳐대는 소리에 놀란 메뚜기들이 사방으로 날아올랐습니다.
며칠 동안 잘 마른 벼를 탈곡하는 날은 마을 잔칫날 같았습니다. 볏짚을 탈곡기 안으로 밀어 넣는 아저씨들, 볏단을 나르는 사람들, 옆에서 볏짚을 받아주는 아주머니들까지 모두가 한몸처럼 움직였습니다. 장정 둘이 탈곡기에 발을 올리고 구르기 시작하면 "와릉 와릉" 기계 소리가 해가 질 때까지 온 마을에 울려 퍼졌습니다. 덕석 위에 널어둔 벼를 쪼아 먹으려는 닭들을 쫓느라 긴 장대도 한몫을 톡톡히 했지요. 마침내 쌀 방아를 찧어 가마니가 마루에 차곡차곡 쌓일 때면 제 마음도 가마니만큼이나 넉넉해졌습니다.
다시 설이 돌아왔습니다. 방아를 찧다 나온 싸라기를 모아 밥을 짓고 엿기름을 넣어 단술을 만듭니다. 그걸 베 주머니에 넣고 짜내느라 처마에 고드름이 맺힌 추위 속에서도 아저씨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습니다. 짜낸 단물은 무쇠솥에서 장작불로 고아내기 시작합니다. 갈색빛이 도는 조청은 떡을 찍어 먹을 용도로 따로 퍼 놓았습니다. 진한 커피색이 될 때까지 고운 조청으로는 엿을 만들었습니다.
며칠을 물에 담가 발효시킨 찹쌀을 윤기 나게 쪄서 확독에 넣고 떡메질을 시작했습니다. 삼촌들이 떡메를 칠 때마다 찰기 넘치는 떡덩이가 떡메 끝에 끈덕지게 매달려 하늘 높이 따라 올라갔습니다. 장정인 삼촌들이 온 힘을 다해 떡메를 높이 치켜든 뒤에야 겨우 반죽이 떨어졌고, 그 기세에 삼촌들 이마에는 금세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습니다. 그 찰나의 순간마다 어머니는 재빨리 손바닥에 물을 적셔 뜨거운 반죽을 요리조리 뒤적여 주셨습니다. '때왈' 터지는 소리와 함께 삼촌들의 "으쌰!" 소리가 어우러져, 마침내 반들반들하고 찰진 유과 반죽이 완성되었습니다.
요즘 유과는 조랭이 모양이지만, 그 시절 우리 집 유과는 넓적하고 둥근 모양이었습니다. 탁구공보다 조금 크게 뗀 반죽을 밀대로 동그랗게 밀어 밀가루를 솔솔 뿌려두었습니다. 장작불로 뜨겁게 달군 방에서 유과를 바싹 말린 뒤 밀가루를 털어내고 참기름을 발라주었습니다. 무쇠 솥뚜껑에 미리 달궈둔 작은 자갈 위에 유과 반죽을 올리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구불구불 피어오르며 부풀어 올랐습니다. 그렇게 잘 구워진 유과에 조청을 바르고 쌀 튀밥 고명을 입힌 뒤, 채 썬 김을 듬성듬성 올려주면 그보다 멋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만든 유과는 신기하게도 오래 두고 먹어도 기름 찌든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습니다.
강정도 종류가 참 많았습니다. 서숙, 검은콩, 보리쌀, 들깨, 참깨, 쌀강정까지... 끓는 조청을 붓고 굳기 전에 재빨리 뒤적여 암반에 펴서 모양을 잡았습니다. 특히 쌀강정은 만드는 법이 독특했습니다. 밥알이 붙지 않게 씻어 무명보에 말린 뒤, 뜨겁게 달궈진 모래 속에 묻어둡니다. 그러면 밥알이 하얀 꽃처럼 톡톡 불거져 나오는데, 그때 재빨리 모래랑 같이 얼개미에 쳐댑니다. 모래는 밑으로 빠지고 누에고치처럼 하얗게 핀 밥알만 남으면 거기에 조청을 버무려 네모반듯하게 잘라냈지요.
한 달 내내 설 음식과 다과를 만들어낸 부엌은 솔갱이 타는 소리와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로 가득했습니다. 실겅 위 석작마다 맛난 것들이 가득 채워지던 그 풍성한 기억은 제 인생의 행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시절, 설빔을 짓고 온갖 음식을 장만하느라 몸베 바지에 물 마를 날 없으셨던 우리 어머니. 이제는 다시 뵐 수 없지만, 백 세를 바라보시던 어머니께서는 그때를 회상하며 늘 "그래도 그때가 참 좋았노라" 환하게 웃으시곤 하셨습니다.
이제는 다시 올 수 없는, 서서히 잊혀가는 우리 시대의 설 문화입니다. 세상은 비교할 수 없이 편리해졌건만, 명절만 지나면 이혼 건수가 늘어난다는 씁쓸한 기사를 보며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집니다. 고단함 속에서도 서로의 품앗이로 정을 나누고, 계절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준비하던 그 따뜻한 설날이 유난히 그리운 새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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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설날 (시)
봄부터 시작된 달콤한 기다림
인자 볍씨 담글 때 아니냐 묻던 할머니 목소리
무논에 찰랑이던 햇살과 삼촌들의 땀방울
그 정직한 수고가 모여 황금 물결을 이뤘습니다.
타닥타닥 소리 내며 타오르던 솔갱이 불꽃은
시린 부엌을 녹이고 달큰한 조청 냄새를 피워올렸지요.
무쇠 솥뚜껑 위에서 꽃처럼 피어나던 하얀 유과와
모래 속에서 눈꽃처럼 튀어 오르던 쌀강정.
물 마를 날 없던 어머니의 몸베 바지엔
자식들 입에 넣어줄 풍성함이 배어 있었습니다.
백 세를 바라보며 "그때가 좋았노라" 웃으시던 그 말씀.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풍경이 되었지만
어머니의 부엌에서 피어나던 그 따스한 연기는
여전히 우리 마음속 가장 깊은 곳,
지워지지 않는 고향의 향기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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