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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샤뜨 Aug 22. 2024

40대 아줌마가 열심히 책 읽는 이유

나는 손절의 달인이다. 약 2년 전까지는 그래도 친구가 좀 있었다. 원래도 한 친구를 깊이 사귀는 성격이라서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몇 명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편하게 말하는 '친구'는 둘 뿐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각자의 삶이 있으므로 자주 연락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내 핸드폰은 철저히 가족용이다. 엄마와 남편을 위한. 


고등학생때까지는 친구가 많이 없었다. 워낙에 예민했고 친구들이 시시콜콜 하는 얘기가 재미없었고, 연예인에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가 대학에 들어오면서 또 다른 세계를 만났고 활발명랑한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매일매일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밤을 샜고 열심히 미팅을 했다. 재밌었다. 


애가 3살이 넘어갈 때쯤 공무원 공부를 시작했다. 남편과 이혼하기 위해서 독하게 했고 합격했다. 그리고 마흔이 넘어 공무원이 된 후 무언가 이전과 다른 차원을 느끼게 되었다.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내가 이제까지 믿었던 가치, 신념들이 흔들리는 경험을 겪으면서 대인관계에 대해 고찰하게 되었다. 그리고 가차없이 손절을 시작했다. 20년지기 대학친구들과도 손절했고 10년 산 아파트 엄마들과도 손절했다. 아이 학원에서 어떤 엄마를 만나게 되었는데 상식적으로 의문이 들면 바로 쳐내는 식이었다. 그래서 지금 남은 사람이 10년 넘은 친구 둘뿐이다. 


나는 정이 많다. 사람도 좋아하고 어울리는 것도 좋아한다. 그래서 혼자 있으면 그 나름대로 좋지만 외롭다는 생각도 자주 한다. 그런데 남편이나 엄마 말고는 수다할 사람이 없으니 너무 심심하고 답답했다. 그래서 책을 읽게 되었다. 원래도 책은 좋아한다. 결혼 전 10년동안 교보문고 옆에서 살았는데 거의 매일 갔다. 강남교보가 오픈할 때쯤이었던 거 같은데 퇴근하고 거의 매일 가서 20분이라도 책을 봤다. 


20대때는 자기계발서를 참 열심히 읽었다. 커리어우먼의 꿈을 키우며 열심히 읽어댔다. 그렇게 읽어대다가 쓰잘떼기 없다는 것을 깨닫고 여기저기 평대를 기웃기웃 거리다가 인문학에 관심이 생겨 세계사와 미술책을 열심히 읽어댔다. 이 때는 지식을 쌓아서 잘난 척을 하려고 읽었던 것 같다. 


30대때는 뚜렷한 테마 없이 닥치는대로 읽었다. 육아책도 읽고 소설도 읽고 철학도 읽고 과학책도 읽고 손에 잡히는 대로 읽다가 남편을 만나서 서점을 거의 못 가게 되었고 결혼했고 애를 낳았다. 


그리고 지금 40대는 대화하기 위해 읽는 것 같다. 우리딸 교육이 궁금한데 물어보거나 수다할 사람이 없으니 무조건 서점으로 간다. 책을 고르다가 나와 합이 맞는 저자를 만나면 얼른 사서 단숨에 휙휙 읽는다. 마치 친한 친구와 오랜만에 만난 듯 열심히 읽다보면 저자도 내가 하는 생각과 고민을 했다는 것을 알고 유레카를 외치며 더욱 깊이 빠져드는 것 같다. 뒤돌아보면 젊었을 때는 지식을 위해서 읽었는데 지금은 나의 생각을 확인하기 위해서 읽는 것 같다. 내가 틀리지 않았다고, 지금도 충분히 잘 하고 있다고. 


이만원을 내고 작가와 진하게 수다를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용기가 생긴다. 내가 잘하고 있구나, 주위 사람들과 내가 다른 길을 가지만 나의 길도 괜찮은 길이구나, 가다보면 또 좋은 날도 있겠구나 하며 위로를 받는다. 사실, 여기에 글을 쓰는 것도 하고싶은 말이 많지만 말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자녀교육에 대한 책을 열심히 읽고 있다. 영어학원을 그만 두고 바이올린을 기초부터 다시 시작하면서 학원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열심히 답을 찾고 있다. 책의 저자들과 함께. 이 글을 쓰면서보니, 내가 책을 좋아하는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루하루가 지옥의 불구덩이였던 결혼초기에 벗어나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던 것처럼, 그나마 해로운 것은 아니여서 다행이고 감사할 뿐이다. 


인생은 혼자라는데, 그래도 책이 있어 덜 외로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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