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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생각이면 한 번 보고, 잊어야 하는 글

우리의 본질은 무엇인가

by 꿈속


나는 16살부터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늘 죽음을 꿈꿨다. 늘 옥상만 쳐다보고 다녔다. 어느 옥상에서 떨어져야 한 번에 죽을까, 어느 옥상이 잠입하기 좋을까, 밑에 나무들이 많아서 쿠션 역할을 하지는 않을까 그런 걱정을 이제 생리가 막 시작할 무렵부터 습관적으로 했다. 잠깐, 이 글은 내가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신세 한탄 하는 글은 아니다. 왜 당신이 죽지 말아야 하는지 설명하기 위한 짧은 서론이다. 가지 마라.

결론적으로 나는 죽지 않고 살아 있다. 내가 왜 죽으면 안 되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나는 왜 당신이 죽으면 안 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당신은 누구인가? 어디 사는 김 아무개인가? 땡땡 대학에 나온 박 아무개인가? 아니면 누구의 엄마인가? 땡땡 회사의 대리인가? 당신은 누구인가? 죽기 전에 적어도 나 자신이 누구인지는 알고 가야 할 것 아닌가. 잘 생각해 보라. 당신이 진짜 누구인가.



물고기는 물에 있어야 편하다. 물에서 태어났고 물에 있어야 제일 자연스러우니까.

새는 하늘을 날아야 편하다. 날개를 펼치고 허공을 가르는 순간이 제일 자연스러우니까.

당신은? 당신은 언제 제일 편안한가.


당신이 제일 편안한 순간을 생각하면 당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언제 당신은 제일 편안하고 자연스러운가?


'사랑'


'사랑'을 할 때.

저녁 무렵의 분홍빛 하늘과 사랑에 빠질 때.

아침에 일어나서 마주한 하얀 함박눈과 사랑에 빠질 때.

사랑하는 존재들을 안아줄 때.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때.

누군가를 위해 마음을 베풀 때.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때.


당신은 애씀 없이 편안하고 자연스럽다.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사랑'이다.


사랑은 '경계 없음' 그 자체이다. 그것은 나와 무엇과의 경계를 허문다. 나는 밤하늘의 별과 사랑에 빠질 때 나를 잊는다. 좋아하는 음악이 흘러나올 때 음악을 듣고 있는 나는 어느새 사라지고 나는 음악이 된다. 세상과의 경계가 사라질 때 우리는 비로소 나를 잊고 본질이 된다.


당신은 김 아무개가 아니다. 이름은 본질이 아니다. 본질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름은 사라진다. 감정도 사라진다. 우리의 육신도 사라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라지고 있다. 우리의 집, 차도 사라진다. 사라지는 것은 내가 아니다.



넓은 바다를 상상해 보라. 파도가 바위에 부딪쳐 철썩일 때마다 튀는 물방울들을 떠올려 보라. 그 잠시 떠오른 물방울들이 우리 자신이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일 어떤 물방울은 별모양이고 어떤 물방울은 달모양이고 어떤 물방울은 사람 모양이라고 생각해 보라. 그렇다고 하여 이 물방울들이 별인가? 달인가? 사람인가? 이 물방울들의 본질은 바다이다. 잠시 떠오른 다양한 형상의 물방울들은 곧 자신 본연의 모습인 바다로 돌아간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우주 공간에 무한히 가득 차있는 사랑의 에너지를 상상해 보라. 이 사랑의 에너지는 눈에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지만 우리의 경계가 사라지는 순간 반드시 느낄 수 있는, 그렇게 어디에나 있는 우리의 본질이다.



바다 위에 튀어 오른 물방울들처럼 우리는 그렇게 잠시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한 '사랑'이다. 우리는 사랑이다. 이 지구에서 인간 놀이를 하고 있는 '사랑'이다.


왜 우리는 인간의 형상으로 나타났는가? 사랑을 체험하고 싶어서. 어둠만 있는 행성의 외계인들은 어둠을 모른다. 빛을 배워야 아, 내가 그동안 어둠 속에서 살고 있었구나 하고 깨닫는다. 태어나서부터 폭력 속에 산 아이들은 폭력이 무엇인지 모른다. 사회에 나아가 따뜻한 손길을 경험했을 때 비로소 자신이 당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깨닫는다.


사랑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반대되는 것을 배워야 했다. 증오, 거부, 버려짐, 폭력, 살인 등에 대하여. 그런데 인간의 형상을 한 우리들의 감각은 너무나도 생생하여 필연적으로 착각에 빠진다.


'아, 나는 버림받는 못난 존재이구나.'

'아, 나는 혐오스러운 존재이구나.'

'아, 나는 사랑받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존재이구나.'


정신 차려라. 우리는 모두 사랑이다. 사랑을 배우기 위해 잠시 인간의 형상을 한 것인데, 당신은 너무 인간 놀이에 몰입한 것이다. 당신이 사랑받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은 없다. 이미 사랑이니까. 몸에 힘주며 애쓰고 살 것도 없다. 사랑은 무한하며 완전하다.


그러나 이제, 내가 말한 것은 잊고 살아라. 우리는 분명히 배우고 싶은 것이 있었고 인간 놀이에 몰입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몰입하고 싶지 않아도 내 귀가, 코가, 손이, 입이 너무나 생생하게 감각의 기능을 하고 있지 않은가. 어찌 몰입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몰입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가 그토록 사랑을 느끼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 잊고 몰입해라.


그러다, 정말 인생이 지치고 힘든 날에, 죽는 게 차라리 편할 것이라는 생각에 빠져들 즈음에, 그때 다시 한번 이 글을 떠올려 봐라. 당신이 본래 무엇이었는지.




또 다른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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