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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은 내가 삶의 주인이라 착각하는 것이다

내려놓는 삶에 대하여

by 꿈속

흔히 인간들은 착각한다.


'내 삶의 주인은 나야.'

'인생은 내가 개척하는 거야.'


그렇다면 태어나는 곳과 부모는 왜 선택하지 못했나.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왜 죽을 날은 선택하지 못하는가? 열심히 노력한 모든 일을 왜 성공시키지 못하였는가? 왜 자꾸만 같은 시련을 겪는 것인가? 왜 하필 나는 그곳에 가서 평생의 동반자를 만나게 됐는가? 왜 그 사람은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나를 좋아해 주지 않는 것인가? 내 삶은 내가 개척하는 것인데 아무리 파도파도 왜 내가 원하는 길이 보이지 않는가? 어떤 것은 내가 자유 의지로 선택한 일이고 어떤 일은 운명인가? 그렇다면 그것을 누가 정하는가? 기준은 무엇인가?


내 브런치 글 중에 [죽을 생각이면 한 번 보고, 잊어야 하는 글]에서 말했듯 우리의 본질은 사랑이다. 우리의 본질이 '나 자신'이 아니라는 말이다. 무슨 동에 사는 김 아무개가 본질이 아닌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나'는 언젠가 사라질 허상이다. 애초에 나의 의식 자체가 허상인데 무엇을 개척한다는 말인가?


지난밤에 우리가 꾼 꿈을 생각해 보자. 우리의 의식이 만든 또 하나의 세상. 그 세상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 아무리 꿈과 희망을 가진다고 한들 그 인물 뜻대로 될까? 아니, 꿈속에 등장하는 나무 한 그루 조차도 스스로 자랄 수 없는 것이다. 꿈속에 등장하는 모든 사건들은 당신의 의식이 만드는 것이다. 꿈속에 등장하는 당신 자신조차도. 아무리 진짜처럼 느꼈다 한들 허상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사랑'이 꾸는 꿈 속에 사는 등장인물이다. 우리가 무언가에 대해 희망을 가졌다 한들 그게 우리 마음이겠는가? 우리가 꿈속에서 누군가를 미워한다고 한들 그것이 우리 진짜 마음일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는 누군가의 꿈속에 등장하는 등장인물이다. 그 누군가가 '사랑'이고.


그저 사랑을 배우기 위한 사건들로 가득 차있는 사랑의 꿈 속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고, 아주 약간의 노력으로도 큰 성과를 거두는 일이 있다. 아예 노력하지 않아도 어떤 사람은 나를 좋아하며 죽을 만큼 노력해도 어떤 사람은 나를 싫어한다. 죽기 싫어도 죽을 날에는 반드시 죽는다. 어떤 사고도 나고 싶지 않다며 집에만 꽁꽁 숨어있는다 한들 사고는 반드시 나기 마련이다. 모든 것은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마음대로 되는 일이 있었다 한들 우리의 의지는 아니었다.



법륜 스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강아지에게 목줄을 채우고 산책을 시키면 강아지는 마치 자신이 자유롭게 산책을 하는 것 같으나, 결국 목줄을 쥐고 있는 것은 인간이지 않느냐고.


뇌 과학자 샘 해리스(Sam Harris)는 저서 [자유의지는 없다]에서 우리가 무언가를 선택하기 전, 이미 뇌는 결정을 끝낸 상태가 된다고 말했다.


맞다. 우리가 정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온 세상 사람들이 사랑하는 '끌어당김의 법칙' 조차도 100프로 다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로또 1등에 당첨되는 사람은 뉴스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무엇을 끌어당긴다 한들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만약에 우리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깊은 우울과 불안에 빠질 것이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인생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느낄 때 가장 강해지는 법이니까.


그렇다면 다 포기해야 할까? 우리가 이끌어갈 수 있는 삶이 아닌데 뭘 그렇게 열심히 살아야 할까? 허망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왜 허망할까? 내가 그토록 노력했던 모래성을 만들지 못해서? 애쓰지 않았다면 허망하지도 않을 것이다.


거기 또 다른 나 자신이여, 사랑이여, 우리 애쓰지 말자. 안 되는 것을 붙잡고 마음 아파하지 말자. 사랑하자. 내 마음을 따르자. 자연스럽게 살자. 즐거운 것을 따라가자. 하루를 살더라도 즐겁자. 우리에게 더 이상 애쓸 것도, 고칠 것도 없다. '사랑'의 꿈속에 있는 등장인물들일뿐인데 이렇게 고통받으며 사는 것이 맞을까?


이 글을 읽고도 계속 고통 속에 살아간다면, 너무 자책하지 말자. 그것 또한 당신이 정한 것은 아니다. 지금은 고통받을 시간이지만 언젠가 더 큰 사랑을 느끼는 그런 날도 있겠지. 당장 즐거운 것을 하지 못 한다고 해서 한탄하지 말자. 아직은 때가 아니겠지.


그래도 나는 이 모든 게 누군가의 꿈 속이라는 것을, 그래서 당신은 더 이상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려줄 의무가 있었다. 이것 또한 내가 정한 것은 아니겠지.


나도 당신과 마찬가지로 이 글을 마치면 또다시 이 모든 게 사랑의 꿈 속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를 미워하고, 부러워하고, 고통받고, 애쓰겠지. 그러나 정말 인생이 비참하다고 느껴지면 그때는 다시 '아, 힘을 빼자. 놓아주자.' 할 것이다.


잊지 말자. 우리는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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