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대의 인지적 부조화
내가 그 뜻을 곡해한 것은 아니었다. ‘정보의 세밀한 정도’라는 직관적인 풀이는 단어의 품새와 정확히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이 사소한 오독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응시해야 할 것은 단어의 진위 여부가 아니다. 같은 텍스트를 바라보면서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었던 ‘나와 인공지능 사이의 인지적 틈’이다. 만약 ‘정세도’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단어였다면 어땠을까? 나의 예측이 맞았다는 안도감 이전에, 우리는 무엇이 본래 있던 언어이고 무엇이 기계에 의해 새롭게 조어된 언어인지 온전히 구분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된다.
대형 언어 모델(LLM)이 촉발하는 부조화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인공지능이 단순히 단어를 만들어내는 것을 넘어, ‘맥락(Context)’ 자체를 조어하기 시작할 때 문제는 심화된다. AI는 진실을 추구하는 주체가 아니라, 흩어진 정보의 파편들을 모아 확률적으로 가장 자연스러운 단어의 연쇄를 직조하는 기술이다. 이 과정에서 인공지능은 실재하는 사실들을 엮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인과관계나 논리를 그럴듯하게 이어 붙인다. 즉, 있는 맥락을 교묘하게 편집하여 새로운 맥락을 창조해 내는 것이다. 우리는 실재하는 단어와 사실로 짜인 이 '조어된 맥락'을 마주하며, 그것을 실재하는 맥락이라 오해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객관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일종의 허상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객관적 사실'이라 부르는 것은 대개 사회나 세계의 충분한 다수가 승인한 결과물로 정의된다. 하지만 다수의 동의라는 이 높은 지각의 허들을, AI는 ‘맥락의 창조’라는 도구를 통해 단숨에 뛰어넘는다.
이 지점에서 마셜 맥루한의 미디어 이론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맥루한은 정보의 정세도가 높고 수용자의 참여도가 낮은 것을 ‘뜨거운 미디어(Hot Media)’로, 정세도가 낮아 수용자의 적극적인 참여와 개입이 요구되는 것을 ‘차가운 미디어(Cool Media)’로 분류했다. 그렇다면 정보의 세밀함을 빈틈없이 채워 전달하면서도, 동시에 그 맥락이 창조되었을지 모른다는 맹점 때문에 끊임없는 의심과 팩트체크라는 고도의 참여를 요구하는 AI는 어디에 속하는가?
AI는 뜨거운 미디어의 외피를 두르고 차가운 미디어의 본질을 강요하는, 이른바 ‘미지근한 미디어(Lukewarm Media)’라 부를 만하다. 겉보기에 정세도는 극도로 높지만, 수용자의 비판적 개입 역시 극도로 요구되는 이 모순적 매체는 기존의 이분법적 구도를 가볍게 탈피한다.
우리는 이제 인공지능이 쏟아내는 정보의 매끄러움에 매몰되지 않고, 그 이면에 조어된 맥락이 숨어있지 않은지 끊임없이 묻고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낯선 시대에 서 있다. 객관성이라는 허상을 경계하고 인공지능과의 틈을 명확히 인지하는 것, 그것이 이 낯선 '미지근한 미디어' 시대를 항해하는 우리의 첫 번째 나침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