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태양에 재산을 걸겠다는 에디슨

태양 에너지와 문명

by 김대군

공평한 에너지 태양 빛


알렉산더 대왕이 소원을 묻자, 통 속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내 햇볕을 가리지 말고 비켜주시오”라고 답했다.(보통사람은 이렇게 말하다가는 제명에 살지 못하기 쉽다)


태양 빛은 특정 권력이나 부가 독점할 수 없는, 지구상의 모든 존재에게 주어지는 가장 공평한 선물이라는 철학적 ‘일조권’ 선언이다.


영국에는 어떤 창문이 20년간 햇빛을 받아 왔다면 이를 침해할 수 없다는 '고대 채광권(Ancient Lights)'이라는 것이 있다.


유독 런던의 많은 현대 건축물들은 반듯한 직육면체가 아니라 한쪽 면이 비스듬하게 잘려나가거나, 위로 갈수록 계단처럼 좁아지는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다.


언뜻 보면 독창적인 디자인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것은 대부분 '고대 채광권'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런던의 금융 중심가에 있는 리든홀 빌딩(The Leadenhall Building)은 한쪽 면이 거대한 삼각형처럼 비스듬하게 깎여 있어 '치즈 그레이터(치즈 강판)'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이 건물이 이런 모양을 갖게 된 주된 이유는, 바로 길 건너편에 있는 유서 깊은 건물들과 특히 세인트 폴 대성당(St. Paul's Cathedral)의 조망권과 일조권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서다.


건물 설계를 시작하기 전부터 '일조권 측량사'를 동원하여 3D 컴퓨터 모델링을 이용해 새로운 건물이 주변의 '고대 채광권'을 가진 창문들에 얼마나 그림자를 드리우는지 밀리미터 단위로 정밀하게 계산한다.


그 계산 결과에 따라 '치즈 그레이터'처럼 건물 상층부를 비스듬히 깎아내거나 계단식으로 만들어 햇빛이 통과할 을 터준다.


또는, 건물 외벽에 반사율이 높은 자재를 사용하여 햇빛을 반사시켜 그림자가 지는 곳으로 빛을 보내주기도 한다.


결국, 런던의 스카이 라인은 수백 년 된 '고대 채광권'과 현대 건축 프로젝트가 치열하게 타협한 흔적이다.


디오게네스의 햇볕을 향한 외침이 21세기 대도시의 모습을 실제로 조각하고 있는 생생한 증거인 셈이다.


세인트 폴 대성당이 왼쪽 상단에 보인다. 원출처 리처드 로저스의 래덴홀빌딩

박영우 건축가 Young Woo PARK, aia, ncarb 출처 네이버 블로그



기독교 성경에서는 "…이는 하나님이 그 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 주심이라."(마태복음 5장 45절)라고 말하고 있다.


이 구절은 신의 사랑이 선인과 악인을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공평하게 임한다는 것을, 해와 비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성경해석은 작가의 개인적 견해임)


그렇다, 태양빛은 부유한 나라의 마천루와 가난한 나라의 오두막, 권력자의 궁전과 평범한 이의 들판을 차별 없이 똑같이 비춘다.


이처럼 공평한 태양 에너지를 디오게네스처럼 볕을 쬐는데 쓸 것인가, 곡식을 키우고 말리는데 쓸 것인가. 아니면, 전기를 만들어 쓸 것인가는 각자의 능력과 과학적 상상력에 달려 있다.



태양(해)


태양은 지구로부터 약 1억 5천만 km 떨어진, 인류에게 가장 가까운 항성(별)이다. 그 지름은 지구의 약 109배이며, 지구를 130만 개나 담을 수 있을 만큼 거대하다.


질량은 태양계 전체의 99.86%를 차지한다. 이 막대한 질량에서 나오는 강력한 중력은 태양계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는다.


태양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은 바로 핵융합이다.


태양의 중심부에서는 수소 원자핵 4개가 융합하여 1개의 헬륨 원자핵으로 변하는 ‘핵융합 반응’이 쉼 없이 일어나 에너지를 생산하며, 그 에너지를 의 형태로 우주에 발산한다.


태양 표면을 떠난 빛은 8분 20초 만에 지구에 도착하여 모든 생명 활동을 유지하는 근원적인 이 된다.


이 빛에는 파장이 짧은 감마선, 엑스선에서부터 자외선, 가시광선, 적외선과 파장이 긴 마이크로파, 전파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코스페이시스/과학/마늘튜브 출처 네이버 블로그 2020.09.30.



이중 지구 대기권을 통과하면서 가시광선과 적외선, 그리고 일부 자외선이 지상에 도달한다.


그리고, 이 세 가지 빛의 조화가 지구 생명 활동의 모든 측면을 관장한다.


우리 눈으로 세상을 보고 색을 인지하게 하는 가시광선(可視光線)은 무지개의 스펙트럼을 품고 있으며, 식물의 광합성과 태양광 발전을 하는 데 필수적인 에너지원이다.


적외선(赤外線)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물체의 분자의 진동을 가속시켜 을 내게 한다. 그로 인해 피부로 따스함을 느끼게 하고, 물을 증발시켜 비를 내리게 하는 기후 시스템의 주된 동력이다.


자외선(紫外線) 역시 볼 수 없지만, 에너지가 강해서 미생물의 세포를 파괴하여 살균작용을 하지만 사람의 피부를 손상하기도 한다. 또, 우리 몸의 필수 영양소인 비타민 D를 합성하도록 돕는다.


지구의 모든 생태계는 태양에너지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식물은 태양 빛을 이용해 광합성을 함으로써, 무기물로부터 유기물을 만들어내는 위대한 1차 생산자다. 이들은 지구상 최초이자 가장 효율적인 ‘태양에너지 저장 부스’인 셈이다.


초식동물은 이 식물을 먹음으로써, 육식동물은 다시 초식동물을 먹음으로써 태양에너지를 자신의 몸으로 옮겨온다. 결국, 지구상의 모든 생명 활동은 형태를 바꾼 태양에너지의 순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태양에너지에 의해 만들어진 를 이어받은 '태양의 후예들'이다. 그러기에 태초부터 인류는 태양을 최고의 으로 받들었던 것이다.



태양 빛을 잡아라


인상주의의 아버지 클로드 모네는 사물에 '고유한 색'이 있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에 따라 사물이 어떻게 보이는지에 집중했다고 한다.


그의 목표는 사물의 모습이 아닌, 눈에 포착된 찰나의 '빛의 인상'을 캔버스에 붙잡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연작'이라는 혁신적인 방식을 택했다. 그는 <건초더미>나 <루앙 대성당>처럼 같은 대상을 시간과 계절에 따라 수십 번씩 그렸다.


새벽의 푸른빛, 한낮의 노란빛, 황혼의 붉은빛 아래 대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기록한 것이다.


빛의 반짝임을 표현하기 위해 그는 '색채 분할' 기법이라는 것을 사용했다. 팔레트에서 물감을 섞는 대신, 순수한 색점들을 캔버스 위에 그대로 나란히 찍는 방식이다.


이 색점들은 관람객의 눈 속에서 자연스럽게 섞이며 생생한 빛의 떨림을 만들어 내게 된다. 그가 그린 것은 건초더미나 대성당이 아닌, 오직 '' 그 자체였다.


결국, 모네에게 그림을 그리는 것은 캔버스 위에 태양 빛을 포착하는 행위였다.


여름철의 건초더미, 시카고 박물관 소장

By 클로드 모네 - https://www.artic.edu/artworks/64818, 퍼블릭 도메인,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80548066 출처 위키백과



태양은 매초마다 인류가 60만 년 이상 사용할 수 있는 막대한 에너지를 빛의 형태로 우주 공간으로 방출한다. 그러나, 이 에너지의 극히 일부인 약 22억 분의 1만이 지구에 도달한다.


하지만, 그 양조차 우리에게는 무한에 가깝다. 지구에 단 한 시간 동안 내리쬐는 햇빛만으로도 전 인류가 1년 동안 사용하는 모든 에너지를 충당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현재 인류가 태양광 발전 등을 통해 활용하는 에너지는 지구에 쏟아지는 태양에너지 총량의 0.01%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이는 태양광 기술력의 한계와도 맞닿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2023년 기준, 태양광은 전 세계 전기 생산량의 5% 이상을 차지하며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에너지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제 인류는 현재의 기술을 뛰어넘는 ‘태양 에너지 이용 고도화’를 꿈꾼다.


먼저, 우주 공간에 수 km 크기의 거대한 태양광 발전 위성을 띄우고, 기후의 제약 없이 24시간 에너지를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또, 가볍고 유연하며 반투명한 소재를 건물 외벽이나 유리창, 자동차, 웨어러블 기기 등 모든 사물에 부착하여 발전시설화 한다는 것이다.


경기도 고양시 소재 에너지엑스 DY빌딩. 대한민국 최초 상업용 제로에너지 빌딩으로 벽면 모두 건물 일체형 태양광 소재로 되어있다. 에너지 자립률 121.7%를 달성했다.

By Parker153 - 자작, CC BY-SA 4.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39613507 출처 위키 백과



그리고, 생명을 모방하는 궁극의 기술 ‘인공 광합성’이다. 이는 단순히 전기를 얻는 것을 넘어, 태양 빛으로 화학반응을 일으켜 식물처럼 새로운 자원을 창조하는 기술이다.



우주 2단계 문명에 진입하기 위하여


1964년, 천문학자 니콜라이 카르다쇼프는 한 문명이 사용하는 에너지의 양을 기준으로 그 기술적 발전 단계를 분류하는 ‘카르다쇼프 척도’를 제안했다.


1단계 문명은 자신이 속한 행성의 모든 에너지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2단계 문명은 중심 항성(태양)의 모든 에너지를, 3단계 문명은 은하 전체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수준이다.


이에 의하면, 21세기 인류는 0.73단계에 불과하다. 우리는 아직 모성(母星)인 지구의 에너지를 온전히 사용하지도 못하는 유아기를 막 벗어나려는 문명인 셈이다.


지금까지 인류 문명은 지구가 수억 년에 걸쳐 저장해 둔 화석연료라는 비상식량을 파먹으며 이루어졌다.


현재의 에너지 소비 모델을 유지하는 한, 성장은 곧 한계에 부딪힐 것이고, 문명은 정체되거나 쇠퇴할 수밖에 없다.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은 이미 100여 년 전, 이 상황을 꿰뚫어 보았다.


"우리는 마치 집 울타리를 땔감으로 베어 쓰는 소작농과 같다. 나는 태양과 태양 에너지에 내 을 걸겠다. 이 얼마나 엄청난 에너지의 원천인가! 나는 우리가 석탄과 석유를 다 써버릴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이 문제에 달려들기를 희망한다."


그의 예언처럼, 태양은 인류의 거의 모든 에너지 문제의 해결책이다. 우리도 에디슨처럼, 인류의 미래를 태양에 걸어야 할 때다.


태양은 세 가지 위대한 미덕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강력한 중력으로 행성 가족을 궤도 이탈 없이 품어 안는 굳건한 보호이며, 둘째는 쉼 없이 생명의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생산이다. 그리고 셋째는 모든 존재에게 생명의 빛을 차별 없이 비추는 공평한 베풂이다.


인류가 진정한 우주 2단계 문명으로 도약하고 영속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정신의 개벽이 병행되어야 한다.


태양의 에너지를 기술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넘어서서, 태양의 미덕을 우리 사회에 온전히 실천해야 한다


태양의 중력처럼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을 굳건히 보호하고, 태양의 핵융합처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혁신을 멈추지 않으며, 그 빛처럼 문명의 성과를 어느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더 낮은 곳으로 기꺼이 나누는 것이다.


결국, 태양 빛은 인류가 더 따스한 세상, 더 높은 문명으로 나아가기 위한 희망의 빛이다.


우리는 진정 태양의 피가 흐르는 ‘태양의 후예’들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어머니인 태양의 미덕을 본받는 것은 선택이 아닌, 우리의 근원에 보답하는 당연한 소명일 것이다.



keyword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