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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 더 문 (To the Moon)

달, 우리의 동반자

by 김대군

역지사지(易地思之)


20세기 모더니즘 문학의 시작을 연 프랑스의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는 "진정한 탐험의 여정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을 갖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폴로 계획은 '달'이라는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여정에서 얻은 가장 위대한 발견은 역설적으로 '지구'를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갖게 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800px-Earthrise_over_Compton_crater_-LRO_full_res.jpg 달에서 본 지구

By NASA / Goddard Space Flight Center / Arizona State University - http://lroc.sese.asu.edu/posts/895, 퍼블릭 도메인,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45765646 출처 위키백과



달에서 보는 지구는 지구에서 보는 달보다 13배가량 큰 압도적인 모습으로 달 하늘을 채운다.


우리는 달에서 은쟁반과 옥토끼를 보았지만, 달 하늘에는 언제나 크고 푸른 지구가 떠있다.


그 자리에서 천천히 회전하며 푸른 바다와 하얀 구름, 익숙한 대륙의 모습을 보여주고, 때로는 거대한 태풍의 소용돌이가 보이기도 하는 평화로운 푸른 구슬이다.


1968년 크리스마스이브, 아폴로 8호가 인류 최초로 달 궤도를 도는 임무 중, 우주비행사 윌리엄 앤더스는 달의 황량한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푸른 지구를 사진에 담았다.


‘어스라이즈(Earthrise)’라고 불리는 이 사진은 우주적 관점에서 본 지구와 인류의 존재를 상징하는 대표적 장면이 되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홀로 떠 있는 푸른 구슬. 그곳에는 인간이 그어놓은 국경선도, 인종의 구분도, 이념의 장벽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생명으로 충만한 아름답고 고요한 보금자리 지구가 존재할 뿐이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외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지구에서는 태양이 뜬다. 그리고 달에서는 우리가 뜬다. 이것이야말로 역지사지의 순간이다.


1968년 12월 24일, 아폴로 8호 우주비행사 윌리엄 앤더스가 찍은 '지구돋이'. NASA 제공. 출처 네이버 블로그 동아사이언스


이 경험은 심리학에서 ‘개관 효과(Overview Effect)’라는 용어로 설명된다.


우주에서 지구를 직접 본 우주인들이 공통적으로 지구가 더 이상 분쟁과 갈등으로 나뉜 땅들의 집합이 아니라, 모든 인류가 함께 보살펴야 할 소중하고 유일한 공동의 집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사진을 계기로 ‘지구 공동체’라는 인식이 싹텄고, 1970년 ‘지구의 날’이 제정되는 등 환경운동을 촉발시켰다.




지구 수호자


달은 지구로부터 약 38만 km(빛의 속도로 1.2초 거리) 떨어진 유일한 자연 위성이다.


반지름은 약 1,737km로 지구의 4분의 1 크기이며, 부피로 따지면 지구 속에 약 49개를 담을 수 있는 정도다. 이는 태양계 위성 중 다섯 번째로 크고, 모 행성 대비 가장 큰 위성이다


달 표면은 수십억 년간 수많은 운석이 충돌해 생긴 크고 작은 구덩이로 가득하다. 이 흉터들은 달이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소행성들을 대신 막아주는 거대한 방패막 역할을 해왔다는 증거이다.


대기가 거의 없어 햇빛을 직접 받는 낮은 최고 127℃까지 치솟고, 밤은 최저 -173℃까지 떨어진다.


달의 중력은 지구의 약 6분의 1에 불과하다.


1971년 아폴로 14호의 선장 앨런 셰퍼드는 몰래 가져간 골프 클럽 6번 아이언 헤드를 월석 채취용 장비 손잡이에 부착하여 즉석 골프채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두 개의 골프공을 달 표면에 내려놓고 스윙을 했다.


뻣뻣한 우주복을 입고 한 손으로 친 첫번째 샷은 생크로 22미터, 두 번째 샷은 성공적으로 공을 띄워 보냈다. 훗날 분석에 따르면 공은 37미터를 날아간 것으로 추정된다.(프로골퍼가 6번 아이언으로 달에서 4,200미터 가량 날릴 수 있다고함)


이 '달 골프'는 인류가 달을 '탐사'하는 것을 넘어 그곳에서 '활동'할 수 있다는 상징적인 퍼포먼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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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서 친 골프공(붉은 원 안): 오른쪽 상단은 약 22미터 날아간 첫 번째 공. 그 뒤로 보이는 막대는 미첼이 던진 장대. 왼쪽 상단은 약 37미터 날아간 두번째 공. [NASA 제공] 출처: https://sisahan.com/6894 [시사 한겨레 ⓘ한마당:티스토리]


달의 중력은 지구의 바닷물을 끌어당겨 밀물과 썰물을 만들고, 해양 생태계를 순환시킨다.


더 중요한 역할은 약 23.5도 기울어진 지구의 자전축을 안정적으로 붙잡아주는 것이다.


만약 달이 없었다면 지구의 자전축은 심하게 요동쳤을 것이고, 예측 불가능한 기후 변화를 일으켜 오늘날과 같은 안정적인 생태계가 형성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달은 그야말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구 생명체를 지켜온 ‘장막 속의 수호자’인 셈이다.



아르테미스와 창어


반세기 전, 인류는 달에 태양의 신 ‘아폴로’의 이름을 새겼다. 냉전이라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탄생한 아폴로 계획은 국가적 위신을 건 남성 중심의 영웅 서사였다.


그러나 21세기, 인류는 다시 달을 향하며 마침내 달의 본래 주인인 여신들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유인(有人) 달 탐사 계획의 이름은 ‘아르테미스(Artemis)’다. 아르테미스는 아폴로의 쌍둥이 누이이자, ‘달의 여신’이다.


아르테미스 계획의 가장 핵심적인 목표는 “인류 최초의 여성과 최초의 유색인종 우주인을 달에 착륙시키는 것”이다.


이는 아폴로 시대의 영웅 서사 대신, 21세기의 시대정신인 다양성과 포용성을 우주 탐사의 영역으로 확장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한편, 중국의 신화 속에는 미모의 여인 ‘창어(嫦娥, 상아, 항아)’가 불사약을 마시고 달로 날아가 여신이 되었다. 중국의 달탐사 계획은 ‘창어계획’이다.

출처 네이버 블로그 공돌이 아빠의 좌충우돌 재테크


창어 계획은 신화와 과학의 절묘한 결합을 보여준다. 달 탐사 로버의 이름은 창어의 유일한 친구였던 ‘위투(玉兔, 옥토끼)’에서 따왔다.


옥토끼 로버는 "안녕 지구, 안녕 인류"라는 말을 남긴고 작동이 멈춘 채 지금도 달에 남아있다.


또, 달 뒷면 탐사를 위해 띄운 중계 위성의 이름은 견우와 직녀를 만나게 해 준다는 ‘췌차오(鵲橋, 오작교)’에서 가져왔다.


창어 계획은 2019년,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달 뒷면에 착륙(창어 4호)하는 위업을 달성했고, 2024년에는 인류 최초로 달 뒷면의 샘플을 채취하여 귀환(창어 6호)하는 데 성공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달 표면의 위토(옥토끼) 로버. 출처 네이버 블로그 오늘의 AI위키



우주판 대항해시대 - 새로운 골드러시의 서막


대항해시대가 스페인과 포르투갈 같은 왕국의 후원으로 새로운 항로와 영토를 찾아 나섰다면, 현재의 달 경쟁 역시 미국중국이라는 두 강대국이 주도하는 국가 대결의 양상을 띤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1494년 ‘토르데시야스 조약’으로 세계를 나누려 했듯, 미국은 ‘아르테미스 협정’을 통해 달 탐사에 대한 새로운 국제 규범을 선점하려 하고 있다.


인도, 일본, 대한민국 등 신흥 주자들의 가세 역시 대항해시대에 뒤늦게 뛰어든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현재의 달 탐사 경쟁은 ‘물 얼음’과 ‘헬륨-3’라는, 미래의 에너지와 우주 활동에 필수적인 자원을 선점하려는 것이다. 마치 19세기 미국 서부의 골드러시와 유사하다.


가장 결정적인 유사성은 민간 기업이 전면에 부상한 것이다.


리바이 스트라우스는 골드러시 시대에 금을 캐는 사람들에게 청바지와 곡괭이를 팔아 거부가 되었다.


금을 캔 사람들보다 관련 장비를 판매한 사람들이 더 부자가 되었다고도 한다.


오늘날 스페이스 X, 블루 오리진과 같은 민간 기업들은 NASA와 같은 국가 기관에 로켓 발사 서비스와 착륙선을 판매하며 새로운 우주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골드러시 시대의 서부에는 연방 법규가 제대로 미치지 않아 ‘먼저 깃발을 꽂는 자가 임자’라는 논리가 강했다.


현재의 달 역시 국제법(우주 조약)이 자원 소유권에 대해 모호하게 규정하고 있다.


우선, 1967년의 우주 조약 제2조 (비전유의 원칙)"에는 "달과 기타 천체는 어떠한 방법에 의해서도 국가에 의한 전유(專有)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라고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자원(resource)'이라는 단어가 명시적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아, 오늘날 국가 간에 치열한 법적 해석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은 "달의 땅은 소유할 수 없지만, 자원은 소유할 수 있다" 즉, 지구의 바다(공해)는 소유할 수 없으나 잡은 물고기는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르테미스 협정'은 이 해석을 기반으로 한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 등은 "자원 채굴은 사실상의 전유 행위다", " 후발 국가들에게 기회가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1979년 유엔은 이러한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 달 자원의 공동관리를 내용으로 하는 '달 조약'을 채택했으나, 미국, 러시아, 중국 등 주요 우주 강국들은 자원 개발에 대한 과도한 규제라며, 아무도 비준하지 않았다.


현재, 달의 자원과 관련 '법적 공백' 상태에 있으며, 이를 각국이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면서 21세기 달 탐사 경쟁의 새로운 갈등이 시작되고 있다.


파 앤드 어웨이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이 주연한 미국 오클라호마 '랜드 러시'를 다룬 유명한 영화 <파 앤드 어웨이(Far and Away)>가 있다.


실제로 1889년, 미국 정부는 오클라호마의 광활한 '주인 없는 '을 개척민들에게 개방했다.


정해진 시간에 출발 신호가 울리면, 수만 명의 사람들이 말을 타고 마차를 몰며 한 뼘이라도 더 좋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미친 듯이 돌진했다. 이 경주에서 이긴 사람이 말뚝을 박고 자신의 땅을 주장할 수 있었다.


이때, 총살을 무릅쓰며 규칙을 어기고 미리 들어가 좋은 땅을 차지한 사람들을 '수너스(Sooners)'라고 불렀다.


이 사건은 자원이 걸린 '선점 경쟁'이 얼마나 치열하고 혼란스러울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현재 각국이 경쟁적으로 달 남극의 특정 지역(물 얼음 존재 가능성이 높은 곳)에 착륙하려고 하는 모습은 마치 '랜드 러시'의 출발선에 선 개척자들과 같다.


각국은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혹은 남들보다 먼저 출발하는 '수너'가 되기 위해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2022년 8월 '다누리 (Danuri)'호를 발사하여 달 상공 100km 궤도에 안착시켰다. '달'과 '누리다'를 합친 이름이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7번째로 달 궤도선을 보낸 국가가 되었다. 나아가, 2032년에는 달에 탐사선을 착륙시킨다는 계획이다.


이제 우리도 달에서 한반도와 세상을 바라보면서 골프공을 날리는 주인공이 될 것이다.


아르테미스 협정은 ‘규범을 선점하고, 기술을 장악하며, 자원을 확보하는 자’가 달의 주인이 될 것이라고 냉정하게 말하고 있다.


차가운 돌덩이였던 달은, 이제 인류의 미래를 결정할 뜨거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그 위에서 펼쳐질 새로운 신화의 주인공은 특정 국가나 기업이 아니라, 바로 우리 인류 자신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항해 시대가 그랬고, 미국 서부개척시대가 그랬듯이 선점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해 왔다.


달을 선점하는 자가 그 과학기술력과 자원과 미래를 향한 통찰력으로 향후 수세기 동안 태양계의 규칙을 정하고 이끌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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