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이크 방정식
‘x + 3 = 5’라는 등식(等式)에서 x는 2이다.
이처럼, 방정식(方程式)이란 특정 미지수(x)를 포함하는 등식이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매년 나일강이 범람한 뒤 토지를 다시 측량해야 했다.
이때 직사각형 토지의 경계를 정확하게 '직각(90도)'으로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측량사들은 12개의 매듭이 일정한 간격으로 묶인 긴 밧줄 하나만을 사용해서 직각을 완벽하게 만들어 냈다고 한다.
그들은 이 밧줄을 팽팽하게 당겨, 세 번째 매듭과 일곱 번째 매듭, 그리고 열두 번째(처음) 매듭에서 꺾어 삼각형을 만들었다.
그러면 각 변의 길이는 각각 3, 4, 5의 비율을 갖게 되고, 이 삼각형의 '3'과 '4'의 변이 만나는 지점은 항상 직각이 되었다.
이집트 여행 중 이를 목격한 피타고라스는 이 3, 4, 5라는 숫자 사이에 어떤 원리가 숨어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연구 끝에, 3² + 4² = 5²(9 + 16 = 25)의 관계가 성립함을 알아냈다.
이로써 그 유명한 피타고라스 정리 ‘a² + b² = c²’이라는 방정식이 탄생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의 심리학자 앤절라 더크워스는 ‘Talent × Effort = Skill, Skill × Effort = Achievement’라는 성공모델 방정식을 제시했다.
즉, 타고난 재능은 '노력'을 만나야 비로소 '기술'이 되고, 그렇게 얻어진 '기술' 역시 '노력'을 더해야만 '성취'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성공에 있어 노력은 재능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정식이다.
한편, 심리학, 특히 인지행동치료(CBT) 등에서는 삶의 기본 원리를 ‘E + R = O’라는 방정식으로 표현한다.
우리는 갑작스러운 사고, 타인의 비난, 경제 위기 등 우리에게 일어나는 '사건(E)'을 선택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사건에 어떻게 '반응(R)'할지는 온전히 우리의 선택이다.
결국 우리의 삶이라는 '결과(O)'는 통제 불가능한 사건(E)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선택한 반응(R)이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는 삶의 주도권이 외부 환경이 아닌, 바로 우리 자신에게 있음을 일깨워주는 인생 방정식이라 할 수 있다.
혹시, 나는 "차가 막혀서(E) 내 하루가 엉망이 되었어(O)."와 같은 ‘E = O’의 잘못된 방정식 속에서 살고 있는지 살펴보자.
"이 광활한 우주에 우리뿐인가?"라는 오랜 질문 끝에, 우리 은하 내에 지구와 소통이 가능한 지적문명이 몇 개나 존재할까를 계산하는 방정식을 만들었다.
1961년, 전파천문학자 프랭크 드레이크가 제안해서 그의 이름을 딴 드레이크 방정식의 모습은
'N=R∗ × fp × ne × fl × fi × fc × L'이다.
이 방정식은 일곱 개의 변수의 곱셈으로 이루어졌다.
먼저, 우리 은하에서 매년 우리의 태양과 같은 별이 탄생하는 갯 수(R)를 알아낸다.
여기에. 그 별에 지구와 같은 행성이 있을 확률, 또 그 행성에 생명이 탄생하고, 그 생명체가 지구와 같은 문명을 이룰 확률을 곱한다.
그리고, 그 문명이 얼마나 오래 존속하며 우주에 전파신호를 보내는가, 그 전파문명의 존속기간(L)을 곱하는 것이다.
이 일곱 개의 변수에는 현대과학이 대략 짐작할 수 있는 것도 있고, 전혀 알 수 없는 것도 있다.
특히, 이 방정식은 전파문명 존속기간인 ‘L값’에 크게 좌우된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문명은 지구가 유일하기에 그 ‘L값을 정확히 알 수가 없고, 다만 몇 가지 학설을 바탕으로 400년에서 수백만 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드레이크는 1만 년으로 잡았다.
여하튼, 최근 이 방정식을 계산한 결과, 우리 은하에는 지구처럼 전파 문명을 이루었을 외계문명은 지구가 유일하거나, 3,000개가량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방정식은 불확실한 변수가 많아 과학적 방정식이라기 보기 어렵다.
다만, 우주에 대한 거대한 질문을 잘게 쪼개어 우리가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생각의 지도’이자 ‘사고의 틀’인 셈이다.
1983년 영국의 천체물리학자 브랜던 카터(Brandon Carter)는 95% 확률 기법을 이용하여 인류문명의 잔여기간을 계산하는 ‘둠즈데이 논증’을 제안했다.
공룡시대는 약 1억 8,600만 년간 지속되었다.
인류(호모사피엔스)는 현재까지 2십만 년간 이어왔고, 아마 우리 문명도 존속기간이 있을 수 있다.
만일, 우리가 그 존속기간 중 이제 겨우 5% 시점을 지나고 있다면 우리에게는 아직 95%의 잔여기간이 있다.
즉, 콜라병의 5%만 마시고 95%는 남아있는 경우다.
이렇게 계산하면 우리 문명의 잔여기간은 약 380만 년이 된다. (20만 년 x 19 = 380만 년)
반면, 우리가 콜라의 95%를 이미 마셨다면, 우리 문명의 잔여기간은 약 1만 년가량이다. (200,000년 ÷ 19 = 약 10,526년)
또, 오래된 것이 더 오래간다는 린디 효과(Lindy Effect)라는 것이 있다.
핵심은 "생명을 제외한, 소멸 가능성이 있는 것들의 미래 기대수명은 그것이 현재까지 살아남은 기간에 비례한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살아남았다는 것은 그 시간 동안 수많은 위협을 이겨내고 자신의 견고함을 증명했다는 뜻이다.
특정 쇼가 100일을 공연했다면 앞으로 100일을 더, 1000일을 공연했다면 앞으로 1000일을 더 공연할 것으로 기대된다.
숟가락과 포크는 수천 년 동안 살아남았으며 앞으로 수천 년 더 쓰일 확률이 높고, 바퀴도 5천 년 이상 살아남았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란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약 20만 년 전에 출현했으므로, 린디 효과에 따르면 인류는 앞으로 약 20만 년을 더 존속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기록된 역사' 문명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인류문명의 역사는 약 5,000년이다. 앞으로 약 5,000년을 더 지속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이러한 사고실험(思考實驗)들은 ‘L값’ 즉, 문명 존속기간이 결코 무한할 수 없음을 알려주고 있다.
인류가 질병과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고, 행성 차원의 위기를 관리할 지혜를 갖춘다면, 우리의 L값은 길어질 것이다.
반면, 우리가 핵무기, 인공지능처럼 스스로를 파괴할 힘을 손에 쥐고서, 이를 통제할 지혜를 갖추지 못하면 문명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우주가 이토록 고요한 이유가 대부분의 문명이 이 장벽을 넘지 못하고 스스로 소멸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대 여과기 가설’이다.
결국, L값은 우리가 어떤 미래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선택의 문제다.
대여과기 가설(The Great Filter Hypothesis)이라는 것이 있다. "왜 우리는 외계 문명의 증거를 발견하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 중 하나다.
생명체가 탄생하여 은하계를 식민지화하는 고등 문명으로 발전하는 과정 어딘가에, 거의 모든 종이 통과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장벽(Filter)'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경제학자 로빈 핸슨(Robin Hanson)은 한 문명이 우주로 확장하기까지는 9단계의 '필터'가 있다고 주장한다.
①생명 거주 가능 행성 등장 ②무기물에서 생명의 탄생 ③단세포 생물로의 진화 ④다세포 생물로의 진화(식물, 동물 등) ⑤ 도구를 사용하는 지능의 출현 ⑥기술 문명의 발달 (농업, 산업혁명, 정보화) ⑦자기 파괴의 위기(핵무기, AI, 기후 변화, 팬데믹 등) ⑧가까운 행성 식민지화 ⑨은하계 전체로의 확장의 아홉 단계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인류를 제외한 지구상의 생명체들은 아직 ⑤단계를 넘지 못하고 있다.
인류는 지금 ⑦단계 앞에 서있다.
우주가 침묵하는 이유는, 우리보다 앞서갔던 모든 외계 문명이 바로 이 단계에서 스스로 파멸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혼자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궁극의 대답은, 우주 저편에서 오는 신호를 수신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가 우주를 향해 오랫동안 응답할 수 있는 지혜롭고 지속가능한 문명이 되는 것이다.
‘L값’을 늘리는 것은 인류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가장 중대한 과제다. 이는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국제적 행동을 통해 추진되어야 한다.
유엔 산하에, 혹은 독립적인 국제기구로서 '국제 L값 위원회(International L-value Committee, ILC)'의 설립을 제안한다.
ILC는 L-위협을 과학적으로 식별 및 평가하고, 'L-지수 보고서'를 발간하며, 국제 사회가 협력할 대응 프로토콜을 수립한다.
노벨상 수상자, 최고 과학자, 미래학자, 철학자 등 세계적 지성들로 구성하여 독립성과 과학적 권위를 확보해야 한다.
인류의 노력으로 인간의 수명이 연장되었듯이, 인류문명의 수명연장을 위해 범 지구적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