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동아시아에서 화성은 색이 붉고 그 밝기가 변하는 것 때문에 파괴, 전쟁, 심판, 공포, 재앙 등을 초래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특히, 그 움직임이 다른 별들처럼 일정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가 뒤로 물러서는 등(역행) 혼란스럽게 보였다.
이로인해, ‘어지럽게 빛나며 미혹한다’는 뜻의 ‘형혹(熒惑)’이라는 불길한 별칭으로 불렸다.
『삼국사기』의 신라 김유신의 탄생 설화에는, 그의 아버지가 ‘형혹(화성)과 진성(토성) 두 별이 자신에게로 내려오는 꿈’을 꾼 뒤 그를 잉태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전쟁의 별(화성)과 질서의 별(토성)이 함께 내려왔다는 태몽은, 김유신이 무(武)와 문(文)을 겸비하여 혼란한 시대를 평정하고 새로운 질서를 세울 운명을 타고났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고대 동양에서는 하늘의 별자리를 28개(28수)로 분류하고, 그중 현재의 전갈자리에 해당하는 곳을 청룡자리로 칭하였다.
그 전갈자리의 가장 밝은 별인 안타레스를 용(황제나 왕)의 심장이라고 여겨, 심성(心星)이라고 불렀다.
따라서, 심성의 안녕은 곧 왕의 안녕과 직결되므로, 그 주변의 별들의 움직임을 특별히 유심히 관찰하였다.
한편, 안타레스라는 이름 자체가 '아레스(화성)의 경쟁자(Rival of Ares)'라는 뜻일 정도로, 두 천체는 맨눈으로 보았을 때 붉은색과 밝기가 매우 유사하다.
곧, 두 별이 가까이 있을 때는 서로 경쟁하는 것처럼 비쳐진다.
따라서 전쟁과 재앙의 별인 형혹(화성)이 황제의 심장인 심성(안타레스)에 접근하여 머무는 현상은 하늘이 군주에게 보내는 심각한 경고, 즉 왕조의 존립을 위협하는 최악의 흉조로 해석되었다.
지상에서 보이는 안타레스(사진 왼쪽 위에서 제일 밝은 별)
By ESO/B. Tafreshi (twanight.org) - https://www.eso.org/public/images/potw1744a/, CC BY 4.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63738595 춝처 위키백과
고대 천문관들은 심성(안타레스) 부근에 붉게 빛나는 형혹(화성)이 머무는 현상을 '형혹수심(熒惑守心)' 또는 ‘형혹범심(熒惑犯心)’이라고 불렀다.
형혹수심 (熒惑守心)은 화성이 안타레스 곁을 지나가는 일반적인 경우를 말하며, 왕에게 보내는 경고 또는 잠재적 위협 정도로 해석했다.
그러나, 형혹범심 (熒惑犯心)은 화성이 평소보다 압도적으로 크고 밝게 빛나며 안타레스에 바짝 다가서는 특별한 경우를 말하며, 창끝을 왕의 심장에 직접 겨누는 모습의 위기상황으로 인식했다.
사마천의 『사기』는 기원전 211년(진시황 36년), 즉 진시황이 사망하기 바로 전 해에 형혹수심 현상이 나타났다고 기록했다.
그즈음 동군(東郡)이라는 지역에 운석이 떨어졌는데, 그 돌에 "시황제가 죽고 땅이 나뉠 것이다(始皇帝死而地分)"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분노한 황제는 범인을 색출해 내지 못하자 그 주변의 모든 백성을 처형하고 운석을 불태웠다.
공교롭게도 그는 이듬해 순행 도중 병사했다.
화성(火星)은 태양으로부터 네 번째 행성이다. 즉, 지구 다음에 있는 행성이다.
밤하늘에서 유독 붉게 빛나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인류의 특별한 주목을 받아왔다.
화성은 지구와 가장 가까울 때는 약 5,460만 km 거리에 위치하고, 멀 때는 서로 태양 건너편에 있을 때로 약 4억 100만 km거리이다.
화성의 지름은 약 6,779km로 지구의 절반 정도이다. 부피로 따지면 지구 속에 화성을 6.6개쯤 담을 수 있다.
중력은 지구의 38% 수준으로, 지구에서 100kg 은 화성에서는 38kg이다. 하루 길이는 24시간 37분으로 지구와 비슷하다.
평균 기온은 영하 63℃에 달하고, 대기는 지구의 1% 수준으로 희박하며 대부분 숨 쉴 수 없는 이산화탄소로 이루어져 있다.
수십억 년 전, 화성 표면에 있던 철 성분이 대기 중의 산소에 의해 녹이 슬어 붉은색의 산화철 먼지로 변했다.
이 미세한 붉은 먼지가 화성 전체의 표면을 뒤덮고, 얇은 대기 중에도 떠다니고 있다.
이 붉은 먼지가 태양 빛을 받으면 우리 눈에 화성이 전체적으로 붉게 보이는 것이다.
이 때문에 화성의 하늘은 지구의 푸른 하늘과 달리 분홍색이나 붉은색을 띤다고 한다.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7/76/Mars_Hubble.jpg/250px-Mars_Hubble.jpg 출처 위키백과
존 그레이의 베스트셀러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 의하면, 남성과 여성은 생각과 습관이 다른 것을 넘어, 마치 서로 다른 행성 사람들처럼 근본적으로 다른 언어와 가치관을 가지고 산다고 한다
저자가 남자를 화성(Mars), 여자를 금성(Venus)에 비유한 것은 고대 신화 속 두 행성이 품고 있는 상징성 때문이다.
화성은 전쟁의 신 '마르스'의 이름처럼 경쟁, 목표, 독립성이라는 남성성의 원형을, 금성은 사랑의 여신 '비너스'처럼 관계, 공감, 조화라는 여성성의 원형을 대표한다.
이 뚜렷한 차이를 이해하지 못할 때, 사랑이라는 궤도를 함께 도는 두 사람은 끝없는 오해와 충돌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가장 극적인 차이는 스트레스를 마주할 때 드러난다.
뭔가 문제를 해결해 내는 것을 뽐내는 화성 남자는 어려움에 부딪히면 일단 자기만의 ‘동굴’로 들어간다.
그는 누구의 방해 없이 홀로 해결책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며, 이것이 최선의 방식이라 믿는다.
반면, 관계와 공감을 통해 살아가는 금성 여자는 힘들 때일수록 대화를 원한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해결책이 적힌 보고서가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들어주고 이해해 주는 따뜻한 공감의 말 한마디다.
여기서 비극적인 오해가 싹튼다. 침묵하는 남자를 보며 여자는 자신이 거부당했다고 느끼고, 이야기하려는 여자를 보며 남자는 자신이 무능력하다는 압박을 받는다고 한다.
또, 화성 남자의 언어가 주로 정보 전달과 목표 달성을 위한 ‘도구’라면, 금성 여자의 언어는 관계를 확인하고 감정을 나누기 위한 ‘다리’와 같다고 한다.
남자는 신뢰와 인정을 받을 때 사랑을 느끼고, 여자는 관심과 보살핌을 받을 때 사랑을 확인한다고 그는 말한다.
때로는, 남자가 내놓은 최선의 해결책이 여자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하고, 여자가 건넨 따뜻한 위로가 남자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서로 다른 행성의 언어를 쓰고 있기 때문이란다.
화성과 금성, 어느 행성이 더 우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 곁에 있는 사람이 나와는 다른 아름다운 행성에서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궤도를 도는 두 행성이기에, 주기적으로 가까워지며 긴장을 만들어내는 ‘형혹수심(熒惑守心)’의 순간은 어쩌면 당연하다.
남자가 동굴로 들어가고 여자가 대화를 원할 때, 우리는 서로의 궤도를 침범하지 않으면서 그저 곁을 지켜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수심’의 상황을 현명하게 다루는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이 경고의 순간에 상대의 세계를 무시하고 자신의 방식만을 고집한다면, 평범한 ‘수심’은 왕의 심장을 겨누는 ‘형혹범심(熒惑犯心)’의 위기로 격상된다.
남자의 침묵을 비난으로 공격하고, 여자의 이야기에 해결책만 들이미는 순간, 우리의 사랑은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어쩌면 사랑을 포함한 인간관계는,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수심’의 순간들을 잘 관리하여 결코 파국적인 ‘범심’의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는 끊임없는 노력일지 모른다.
과거 화성 탐사가 국가 주도의 과학적 탐구였다면, 21세기의 화성 담론은 실리콘밸리의 기업가 정신과 결합하며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그 중심에 스페이스 X의 창립자 엘론 머스크가 있다. 머스크에게 화성은 관찰이나 탐사의 대상이 아니다. 그는 화성을 인류의 두 번째 보금자리, 즉 식민지(Colony)로 규정한다.
인류가 대재앙으로 멸종하는 것을 막기 위해 화성에 자급자족이 가능한 도시를 건설하여 ‘다행성 종족(Multi-planetary species)’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다 담지 말자는 것이다.
화성 담론의 가장 끝에는 테라포밍(Terraforming)이라는 궁극의 꿈이 자리한다.
이는 화성의 대기, 온도, 생태계를 인위적으로 바꾸어 지구와 같은 환경으로 만드는 행성 개조 프로젝트다.
이 거대 담론의 첫 단계는 춥고 희박한 화성의 대기를 바꾸는 것이다.
화성의 극지방 얼음과 땅속에 갇힌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으로 방출시켜 온실 효과로 기온을 높인다는 것이다.
2단계로, 대기가 두꺼워지고 온도가 충분히 오르면, 화성 지하 깊은 곳에 얼어 있는 물이 녹아 강과 바다를 형성하면서 ‘물의 순환’을 시작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3단계로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내뿜는 미생물을 퍼뜨린다.
수백년에 걸쳐 산소 농도를 높인 후, 최종적으로 식물과 동물이 살 수 있는 완벽한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다. 화성의 미약한 자기장은 태양풍으로부터 대기를 지켜주지 못하며, 대기를 구성할 질소와 같은 핵심 자원도 턱없이 부족하다.
기술적, 경제적 문제를 넘어, 이는 인류 전체의 합의와 수 세기에 걸친 노력이 필요한 초장기 프로젝트다.
이 담대한 계획은 ‘전쟁의 신’의 붉은 땅을 인류의 평화로운 ‘푸른 별장’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유토피아적 기대를 품게 한다.
이제 인류는 “붉은 전쟁의 별을 푸른 평화의 별장으로 만들 것인가?”라는 거대한 질문을 품고 화성이라는 거울 앞에 섰다.
화성의 미래 색깔은, 결국 그곳에 도달하는 인류의 마음 색깔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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