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가족>:핏방울로 선 그어진 보통의 테두리

by 핀름

영화 예고편

https://www.youtube.com/watch?v=4ao41Ikl6NU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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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적 욕망을 우선시하며 살인자의 변호도 마다하지 않는 변호사 형 ‘재완’

원리원칙을 중요시 여기는 자상한 소아과의사 동생 ‘재규’

성공한 프리랜서 번역가로 자녀 교육, 시부모의 간병까지 모든 것을 해내는 ‘연경’

자기 관리에 철저하며 가장 객관적인 시선으로 가족들을 바라보는 '지수'


서로 다른 신념을 추구하지만 흠잡을 곳 없는 평범한 가족이었던 네 사람. 어느 날, 아이들의 범죄 현장이 담긴 CCTV를 보게 되며 이들의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신념을 지킬 것인가 본능을 따를 것인가. 사건 이후, 인생의 모든 기준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본문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 좋은 놈, 나쁜 놈, 알쏭달쏭한 놈


누구나 놀랄법한 충격적인 영화 속 장면은 무엇이 있을까. 조력자의 배신, 출생의 비밀 등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 위한 여러 요소들은 영화 속의 핵심 장면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그중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인물의 죽음이다. 누군가의 죽음은 주인공을 각성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고 영화의 흐름까지 바꾼다. 그러나 <보통의 가족>에서는 주인공뿐만 아니라 관객 또한 각성의 대상이 된다. 우리는 이번 영화에서 총 세 번의 죽음을 통해 너무도 익숙하게 생각했던 관념의 틀을 깨나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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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이 맞이한 가장 첫 번째 죽음은 조연의 교통사고이다. 영화의 첫 장면으로 시작된 이 사고는 현장에서 즉사한 피해자와, 남겨진 그의 어린 딸을 비추며 관객의 뇌리에 ‘죽음’의 이미지를 확실하게 박아 넣는다. 그리고 아직 죽음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관객에게 주인공 두 형제의 상반된 첫 등장을 보여주며 그들이 어떠한 인물인지 본격적으로 풀어내기 시작한다.

조연의 죽음 이후, 두 형제는 총으로 멧돼지를 사냥하는 형과 사고 환자를 수술하는 동생으로 첫 등장한다. 각각 ‘상해’와 ‘치료’로 배치된 상반된 이미지에 관객은 자연스럽게 그들을 선악의 기준으로 판단하게 된다. 죽음의 이미지는 형에게, 그리고 생명의 이미지는 동생에게 부여하며 생명을 죽이는 ‘나쁜 형’과 생명을 살리는 ‘착한 동생’으로 프레이밍 되는 것이다.

영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사고 이후 두 형제가 첫 대면한 가족모임에서 그들의 특징을 더욱 견고히 한다. 고의적인 차량 돌진으로 사회적 질타를 받는 가해자를 변호하는 형, 그런 그에게 동생은 “형은 돈이 되면 정말 다 하는구나.”라는 말을 남긴다. 이렇듯 형 재완은 이득을 위해서라면 사회적 질타도 개의치 않는 냉혈한으로 보인다. 그에 비해 동생 재규는 직업의 선악을 가릴 수 없음에도 ‘의사’라는 직업에서 연상되는 무해한 이미지, 그리고 사고 피해자를 치료한 ‘선한 인물’로 인식된다. 이렇듯 명확히 나뉘는 두 형제의 이미지는 영화의 초반부 내내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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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상반된 두 형제의 이미지는 곧 등장한 두 번째 죽음, 자녀의 살인 사건을 기점으로 확연히 달라진다. 자녀의 살인 사건을 접한 두 형제의 반응은 서로 어긋난다. 우선 형 재완은 부모 뜻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자식임을 강조하며 혜윤에게 자수를 요구한다. 그의 직업이 변호사인 만큼, 그는 스스로 사건의 과실을 따지고 변론을 내려보며 ‘자수’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혜윤의 감형을 위해서는 변호도 할 수 있으나, 결론적으로 과실까지는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 아무리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자식이라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딸이기에 본인도 어느 정도 과실을 가진다는 것이다. 즉, 재완은 자신의 과실에 대해 명확하게 변론을 내릴 수 없기에 딸의 자수를 선택한다. 철저히 득과 실을 따지고, 감정에 동요하지 않는 ‘재완’다운 결과였다.

반면 동생 재규는 수술하는 방식을 통해 결론을 내린다. 의사로 살아오며 잘못된 부분은 제거하고, 망가진 것은 수술하며 살아온 재규에게 알맞은 방식이다. 그런 재규에게 아들 시호의 살인은 실패한 수술과 같았다. 잘못된 부분을 제거하고 고치는 것이 자신의 일임에도, 아들 시호 자체가 잘못이기에 결국 그 무엇도 고칠 수가 없는 것이다. 재규는 아들 시호를 ‘수술’하려 노력한다. 사건을 부정하는 시호에게 다그치기도 하고, 부드럽게 타일러도 보았지만 이미 벌어진 사건을 원상복구할 수는 없었다. 대신 그는 시호를 대체할 새로운 요인을 찾는다. 그것은 바로 시호의 잘못을 과실로 만드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범주 안에는 혜윤을 자수시킬 재완이 포함된다. 그렇기에 재규는 결국 재완을 제거함으로써 시호라는 결함을 자신의 방식대로 수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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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할지언정 제거하지 않는 재완과, 제거할지언정 변호하지 않는 재규. 두 형제의 상반된 선택은 관객의 혼란을 가져온다. 무해하고 착한 이미지의 재규가 잘못을 덮는 ‘악’으로 변하고, 냉혈하고 나쁜 이미지의 재완이 잘못을 인정하는 ‘선’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관객은 두 번째 죽음을 맞이하고 나서야 나쁜 형, 착한 동생으로 규정된 인물의 프레임에서 벗어난다. 사람을 살리는 선한 행동을 해도 결국 잘못을 덮는 것은 재규이며, 논란이 된 가해자를 변호하면서도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재완이다. 즉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어느 하나 명확히 규정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야 관객은 깨닫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선악의 경계를 나눌 수 없음을 말이다.






2. 가진 자들에게만 주어진 발화의 기회


자식의 살인 사건으로 대립의 기준이 되던 선악의 경계가 흐려지고, 사건을 대처하는 과정 속에서 인물들은 새로운 기준점에 놓인다. 이제는 ‘계층’이라는 새로운 기준이 등장하며, 더 이상 형제의 대립이 아니라 그들과 타인의 대립으로 변하는 것이다. 새롭게 등장한 기준은 두 형제를 규정할 새로운 이미지가 되고 이야기는 점점 최종장을 향해 달려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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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주인공인 재완, 재규, 연경, 지수는 모두 다른 인물이지만 하나의 공통점으로 연결된다. 그들은 모두 ‘발화할 힘을 가진 기득권층’이다. 사건 피해자가 병원에서 생사를 오고 갈 때, 자신들은 고급 식당의 룸에 모여 여유롭게 대책을 논의할 수 있는 가진 자들이다. 네 사람의 논의 주제로는 살인 사건의 대처 방안, 그리고 어머니의 거취 방안이 오고 가지만 정작 그 자리에 사건의 당사자들은 없다. 오직 네 사람의 결론에 따라 자식들과 어머니의 처우가 결정되고, 결론의 책임은 자리에 없는 당사자들이 지게 되는 것이다. 이는 영화의 핵심이 되는 혜윤과 시호의 살인 사건에서도 해당되는 전제이다.

혜윤과 시호 두 사람은 재완과 재규에 비해서는 힘이 없을지 몰라도, 결국 살인 사건의 가해자이며 사건을 숨길 수 있는 기득권층이라는 점에서 ‘가진 자’에 속한다. 명확히 가해자와 피해자가 존재하는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사건은 기득권층의 논의만에 의해 잊힐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에도 피해자의 가족들과 피해 당사자는 선뜻 논의에 말을 얹을 수 없다. 그들은 발언할 힘도 기회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발화의 기회는 끊임없이 옮겨진다. 노숙자와 교통사고 피해자에서 혜윤과 시호로, 그리고 혜윤과 시호에서 재완과 재규로. 가진 자들은 여전히 그들만의 합의를 멈추지 않고, 말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이들은 계속해서 죽어나간다. 더 자극적으로, 도구화하며.






3. 점점 더 확장되는, 모든 걸 흩트린 기준의 개념


<보통의 가족>은 새롭게 제시되는 수많은 기준 속에 인물들을 규정하고, 관객의 가치관에 따라 그들의 선택을 판단하는 영화이다. 그렇기에 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인물들의 이미지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전복된다. 그럼에도 수많은 선택 중 어느 하나 확고히 옹호하거나 설교하지 않는 것은 애초에 어떠한 기준이든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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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제시된 수많은 기준들에는 직업, 명예, 재산, 도덕 등 일반적인 가치 판단 기준이 포함된다. 높은 명예와 부유한 재산을 가진 듯한 재완도, 번듯한 직업과 올곧은 도덕심을 가진 듯한 재규도 모두 일반적인 기준에 의해 판단된 인물들이다. 그러나 과연 이 기준들이 상대를 명확히 판단하는 잣대가 될 수 있을까?

사실 관객들은 이미 재완, 재규, 연경, 지수를 통해 판단 대상을 기준에 따라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 기준을 판단 대상에 맞추어 분류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우리는 인물이 어떠한 사람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그들이 가진 조건부터 인식하기 때문이다. 재규가 의사라서 ‘도덕적인 인물’일 것이라고 추측하거나, 구호 단체에서 활동한 연경의 사진을 보고 ‘선한 인물’일 것이라고 짐작하는 것이 그러하다. 그러나 사람을 살리는 재규가 형을 죽이고, 봉사활동을 하던 연경이 선행을 핑계로 살인 사건을 은폐하려 애쓰는 걸 보며 관객들은 큰 충격을 받는다. 번듯한 직업, 그럴듯한 취미가 마냥 좋은 사람임을 인증하는 조건이 되지는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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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그들의 악행에서 오는 충격이 아니라, 예상한 이미지에서 벗어남에 따라 오는 충격이다. 관객을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적 위치, 재산 등 주어진 조건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성향을 가늠한다. 그 기준이 아무리 상대적이고 변화무쌍한 것일지라도 우리는 상대에 대한 큰 탐색 없이 조건만으로도 정보를 결정하곤 한다. 즉, 영화는 이러한 기준의 오류, 판단의 오류를 수없이 뒤집으며 우리가 의존하는 개념이 때로는 얼마나 무상한 것이지 이야기한다. 인물들이 자신의 직업적 소명, 신념에 따라 선택을 번복하고 다른 길을 갈 때, 과연 관객이 그 선택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을 제공하면서 말이다.

마치 재완과 재규가 믿어온 모든 신념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처럼,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이 순식간에 달라지는 것처럼. 결국 ‘부’, ‘명예’, ‘직업’ 과 같은 익숙한 판단의 기준들은 모두 불투명한 개념으로 남고, 그 기준에서 비롯된 ‘좋은 사람’, ‘나쁜 사람’, ‘평범한 사람’ 마저 때로는 하나의 조건이 되어 우리의 판단을 흐린다.






4. 그 누구보다 선하거나 악할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보통’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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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제목은 <보통의 가족>이지만 실제로 영화 안에서는 ‘보통’과 ‘가족’의 가치가 상충한다. 살인 사건을 겪은 인물들에게 ‘보통’의 의미는 죄와 맞닿아있다. 연경과 재규는 “부모가 자식을 지키는 것은 당연하다"라며 보통의 가족의 입장으로서 시호의 죄를 덮으려 한다. 그러나 피해자가 보통의 범주에 포함될 때는 반대로 그 범주를 망가뜨리려 한다. 피해자의 지칭을 보통의 노인도, 보통의 노숙자도 아닌 ‘그냥 겨울이면 얼어 죽을 노숙자’로 칭하는 인물들에게는 ‘보통’이야말로 죄를 묵인하는 수단이다. 그들은 가족의 속성을 이용하며 자신을 변호하지만, 막상 그들이 행동함에 있어 가장 하찮게 여겨진 것도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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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의미가 죄와 가깝다면, 가족의 의미는 ‘공허한 진실’에 가깝다. 재완은 혜윤을 자수시키며 진실에 다가서려 한다. 비록 자신이 원했던 보통의 가족에서는 벗어나게 되더라도, 그는 결국 죄를 인정하는 길을 택했다. 그러나 이를 막는 것이 재규이다. 형을 설득하지 못한 재규는 재완을 죽이며 보통의 범주에서 벗어난다. 아들과 함께하는 보통의 가족이 되기 위해, 형과 함께하는 보통의 가족이길 포기한 것이다. 이토록 인물들이 바란 보통은 공허하다. 지키기 위해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자, 그럼에도 모두가 선망하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영영 가질 수 없을 것처럼 공허할지라도, 재완과 재규를 포함한 우리는 여전히 보통의 누군가가 되기 위해 살아간다. 설령 그게 우리의 숨통을 죄어올지라도 말이다.






Editor : G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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