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가 산업혁명 덕분에 성공했다고?

거꾸로 읽는 미술사

by 거미


2022년에 고가에 거래된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는 과수원>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다들 잘 아실 겁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는 과수원>는 2022년에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1억 1,100만달러에 경매된 이력이 있는데요. 정작 반 고흐는 살아생전에 그림을 딱 한 점밖에 팔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가 유일하게 판매한 작품은 바로 <아를의 붉은 포도밭>이라는 그림입니다. 그가 무려 897점의 그림을 남겼을 정도로 다작을 한 화가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그의 판매실적은 더욱 초라하게 느껴집니다. 현재 그의 작품이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거래되는 그림들 중 하나라는 점을 떠올리면, 잘못된 시대에 태어난 비운의 화가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4.The red vineyard 유일판매.png 살아생전 유일한 판매작, <아를의 붉은 포도밭>


그러나 역사는 아이러니합니다. 그의 정신질환과 가난으로 점철된 삶을 떠올리면 분명 그가 시대를 잘못 타고난 화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지만, 사실 그의 독특한 화풍은 그가 산업혁명 이후에 태어난 화가였기에 가능했다는 사실, 혹시 알고 계셨나요? 반 고흐는 다양한 색상의 유화물감을 화폭에 두껍게 쌓아 자기만의 독특한 화풍을 구현했고 이 화풍은 후대에 후기 인상주의로 분류되며 큰 사랑을 받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많은 양의 물감을 캔버스에 치덕치덕 바르는 일은 산업혁명으로 튜브물감이 발명되기 이전엔 불가능했습니다. 튜브물감의 발명 이전에 화가들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자신이 사용할 물감을 직접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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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물감은 발색물질인 안료와 전색제가 혼합된 것인데요. 발색물질은 쉽게 말해 물감의 색을 구성하는 물질입니다. 주로 광물을 간 것이나, 식물을 빻은 것, 혹은 벌레 같이 살아있는 생물을 으깨서 색을 채취하기도 합니다. 이 색을 화면에 고정해주는 역할을 하는 접착제가 바로 ‘전색제’입니다. 대표적인 전색제는 아라비아검, 달걀노른자, 린시드오일 등이 있습니다. 아라이바검과 안료를 혼합하면 수채화물감이이 되고, 달걀 노른자와 안료를 혼합하면 템페라물감, 오일과 안료를 혼합하면 유화물감이 되는 것이지요. 다양한 재료를 뒤섞은 작품들이 대거 등장한 현대 이전의 회화는 이 전색제의 종류에 따라 장르가 구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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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 이전의 화가들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직접 안료의 재료를 구해다가 빻고, 이 가루를 전색제와 혼합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게다가 사용해야 할 색이 한두가지가 아니었기에, 보통은 조수들을 기용해야 했지요. 그렇게 힘겹게 얻은 귀한 재료로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제아무리 금전적으로 여유로운 예술가라 하더라도 본인이 힘들게 만든 물감을 반 고흐처럼 과감하게 플렉스 할 수 있었을까요? 뭐, 불가능한 것은 아니겠지만 쉽지 않았을 겁니다. 하물며 반 고흐는 살아생전에 지독히도 가난했다고 전해집니다. 동생 테오의 재정적 후원이 없었다면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웠을 정도로요. 그런 그가 이토록 물감 플렉스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고흐가 튜브물감이 발명된 이후에 태어난 화가였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관점에 따라 시대를 잘못 타고난 비운의 예술가가 아닌, 시대를 잘 타고나 기술의 수혜를 입은 예술가로도 볼 수 있는 것이지요.



미술작품의 해석은 보는 사람의 수 만큼이나 다양합니다. 그러나 모든 해석이 다 똑같이 가치있고 적절한 것은 아닙니다. 어떤 해석은 다른 해석보다 더 낫지요. 그 차이는 작품을 해석할 때 작품의 시각적 외양 뿐만 아니라 역사적 근거에 대해 더 자세히 관찰했을 때 생겨납니다. 이상 <거꾸로 읽는 미술사>의 거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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