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전에 모델 에이전시인 에스팀의 모델 아카데미인 E-studio를 다닌 적이 있다. 내가 이룬 성취는 대단한 게 아니다. 모델 연습생도, 전속 모델도, 못해보고 수강생으로, 아는 동생들이 설립한 쇼핑몰 '콕스타일'에서 피팅 모델을 하고 그 길로 모델 인생은 마무리했다.
나는 내가 왜 전속 모델이 못 되었는지 너무 명확히 알고 있다. 우선 자기 객관화가 안 되어 있었고, 나이가 많았으며, 옷에 관심이 없었고, 좋은 사람이 되려고 모델을 한 게 아니라 연애나 결혼할 때에 도움이 될 타이틀만을 원했기 때문이다. 성취하고자 하는 게 성공한 모델의 길이 아니라 타이틀이나 트로피였는 데에 크게 될 리가 없다. 도가 어긋났는 데에 목표 지점에 도달할 리가 없었다.
나는 최종 오디션에 탈락하고 스스로를 패배자로 여겼고 피팅 모델 3개월 근무를 마지막으로 모델의 길을 포기했다. 런웨이를 걸어보지도 못했다.
그로부터 몇 년 뒤에 나는 작가였다는 사실을 공개했지만 피팅 모델이었다는 사실을 숨겼었다. 이유는 실패한 기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온라인에서 내가 피팅 모델였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게 소문이 났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내게 큰 관심을 보였고 어떤 이들은 너무 나댄다며 비싸게 군다고 여겼다.
내가 깨닫게 된 건 누군가를 이기려고 하면 그 사람의 길을 따라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승리하고 패배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부질없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왜냐하면 '그 누군가'의 도발에 걸려든다면 자신의 길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길로 빠지게 된다.
만약에 다른 사람의 도를 쫓는 일이 자신을 성장시킨다면 다행이고 좋은 일이지만 만약에 다른 자의 길을 따라가는 게 후회만 남게 된다면 자신의 길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길을 선택한 일에 대한 책임을 자기 자신이 져야 한다.
만약에 후회가 된다면 지금이라도 인생에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고 정신 승리라도 해라. 그게 내 길이든, 다른 사람의 길이든 간에 다양한 도전을 해봤다고 자신을 위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다.
남을 이기려면 그 사람의 길을 쫓아서 추월한 다음에 이기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자기 자신의 길로 남을 이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이게 내가 깨달은 모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