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으로 떠난 14박 15일 이탈리아 소도시 여행기
프롤로그 : 왜 이탈리아 소도시인가
이탈리아는 소도시*가 아기자기하고 지역색이 짙어서 도시를 옮겨다닐때마다 새롭다. 토스카나는 초록, 오스투니는 화이트, 마테라는 모래빛, 친퀘테레는 알록달록 등등. 도시 내 비슷비슷한 건축양식이 주는 비주얼적인 통일감, 그리고 음식과 와인에서도 지역색이 짙은게 이탈리아 소도시의 매력이다. 국내여행을 할 때도 '그 지역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을 좋아한다. 알프스부터 지중해까지 길쭉하게 걸쳐있는 이탈리아는, 특히나 지역별 소도시가 가진 각자의 매력이 다양하니, 숨은 보석들을 쏙쏙 찾아보고 오겠다는 생각으로 여행을 계획했다.
이전에 했던 이탈리아 대도시 여행에서는 관광객 잡으려는 바가지와 소매치기에 불쾌하여 자칫 이 나라에 대한 인상이 안좋게만 남을 뻔했다. 하지만, 여행중에 들린 대도시를 살짝 벗어난 소도시에서 1) 지역의 개성이 느껴지고 2) 한적하고 3) 현지인들의 삶을 가까이서 볼 수 있어서 여행 내내 온전히 마음편하게 즐길 수 있었다. 여행자에게는 현지의 통학하는 대학생들, 신문보며 아침식사를 즐기는 모습, 발코니에 앉아 이웃과 대화하는 모습도 이색적이지 않은가. 음식점에 가면 삼삼오오 모여서 가족단위로 단란하게 식사하는 모습도 얼마나 평화로운지. 그리고 아무리 작은 도시라도 그 지역만의 독특한 음식과 와인이 존재하니, 한 나라를 여행해도 즐길 컨텐츠가 풍성하다.
이에, 나중에 신혼여행을 가면 꼭 이탈리아 소도시 여행을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2020년 결혼 당시 예약해뒀다가, 코로나로 전부 취소한 이후 몇년을 묵혀온 여행계획. 언젠가 갈 이탈리아 소도시 여행을 꿈꾸며 이탈리아 여행책을 20권은 읽고, 각종 방송, SNS에서 위시리스트를 긁어모아 자그마치 14박 15일의 긴 신혼여행을 계획했다. 각 지역별 소개를 에피타이저처럼 이번 글에 모아서 소개하고, 앞으로 소도시 하나하나에 대한 메인 여행기는 사진자료 가득하게 넣어 생생하게 전달하려 한다.
* 소도시 : 주로 지방에 과거 영주의 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작은 규모의 도시로, 걸어서 30~60분이면 돌아볼 수 있는 여행지이다.
이탈리아의 20개 주 중에서 이번에 토스카나, 움브리아, 풀리아, 캄파니아 네 곳을 여행했다. 토스카나에서는 총 10개의 소도시를 방문했다. 사투르니아, 소라노, 치비타 디 반뇨레조, 오르비에토, 몬테풀치아노, 피엔차, 산퀴리코, 시에나, 산미지냐노, 판자노이다. 움브리아 지방에서는 2개의 소도시를 방문했다. 아씨시와 스펠로이다. 풀리아에서는 5개의 도시를 방문했다. 바리, 알베로벨로, 오스투니, 폴리냐노아마레, 마테라이다. 마지막으로 캄파니아주에서는 4개의 지역을 방문했다. 포지타노, 아말피, 카프리, 살레르노이다.
토스카나
한 개의 주만 방문한다면 무조건 토스카나를 추천하고 싶다. 가장 이탈리아의 색이 짙은 도시이다. 끝없이 펼쳐진 초록색 풀밭과 파란 하늘이 아름다운 ‘발도르차 평원’을 기반으로한 이탈리아 중부 지방이다. 마침 우리가 방문하는 5-6월은 초록으로 가득한 계절이며, 올리브나무와 포도나무 그리고 사이프러스 나무가 수놓아진 드넓은 평원이 아름다움에 있어 가장 절정인 시기이다. 토스카나의 가장 큰 매력은, 이 발도르차 평원이 농경지이며 와인 산지이기 때문이다. 크게 어떤 여행을 계획하지 않아도, 입맛에 맞는 숙소를 골라잡고 그곳에서 제공하는 식음료를 마음껏 즐기는 여행을 하면 된다. 이탈리아에는 독특한 형태의 숙소가 있는데, ‘아그리스투리스모’라는 것으로 우리말로 농가민박을 뜻한다. 오래된 집이지만, 유럽풍의 빈티지한 인테리어가 아름답고 창을 열면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는 풍경이 펼쳐진다. 아그리투리스모에서 제공하는 음식은 80% 이상을 산지에서 난 0km 이내 재료로 구성해야지 허가가 나기 때문에, 제철에 산지에서 수확한 좋은 먹거리를 제공한다.
토스카나에서는 와이너리를 둘러볼 수도 있다. 몬테풀치아노, 몬탈치노, 피엔차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와이너리가 몰려있다. 와이너리에 방문하면 와인을 시음하고 생산자로부터 설명을 듣고 운좋으면 아주 저렴한 가격에 구매를 할 수도 있다. 몇몇 와이너리는 고성에서 숙박도 제공한다. 성에서 잠을 자고 아침을 맞이하고, 창 밖에는 발도르차 평원, 지하에는 와이너리가 있다. 눈이 편안해지는 초록 풍경 안에서 손수 준비한 귀한 음식을 챙겨먹고, 하루하루가 행복하겠다.
토스카나와 로마 중간지점 쯤엔 사투르니아라는 야외 천연 온천도 있다. 이용료는 무료이다. 계단식의 독특한 지역에, 물 색깔은 신비로울 정도로 파랗다. 로마에서 토스카나 가는 중간 지점 쯤에 있어, 잠시 들려보면 좋겠다. 특별한 지역색을 느끼는 여행이기에, 잠시라도 들려서 발이라도 담그고 오는 것으로 계획에 넣었다.
이 곳은 남편이 세계테마기행을 보다가 발견한 소도시이다. 마을만 우뚝 솟은 듯 하지만, 알고보면 주변 땅이 꺼진거라고 한다. 언제 꺼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땅으로, 이 곳에 거주하는 사람은 없고 근무하러 또는 관광하러 왕래하기만 한다. 마을로 통하는 길이 오직 저 좁은 계단 뿐이란다. 이탈리아는 어쩜 이리 특이한 지형이 많은지. 실제로 보게 되면 너무나 비현실적일 것 같아 기대가 컸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천공의 성 라퓨타가 이곳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많이 닮아있다.
풀리아
풀리아 지방은 이탈리아 동남쪽으로,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도시들의 색채가 밝은 것이 특징이다. 지중해변에 위치하여 주요 관광지와는 음식도 생활 방식도 많이 다르다. 처음 보는 풍경과 동양인을 찾아보기 힘든
찐 풀리아 소도시의 면모는 충분히 이국적이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마테라. 마테라의 독특한 풍경은 사씨라는 동굴 형태의 옛 가옥을 그대로 보존하였기 때문에 나타난다. 천주교 박해를 피해 동굴에 숨어살던 아픈 역사가 있는 곳이다. 하지만 보존된 현재에는 중세시대로 돌아간 듯한 비주얼을 자랑하여,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벤허, 007 등 수많은 영화의 촬영지로도 알려져있다. 마테라는 야경이 정말 이쁜 도시라고 생각한다. 여행 중후반부에 방문할 예정이라서 이 곳을 떠날 때면 너무나 아쉬울 것 같다. '죽기 전에 가봐야 할 호텔'이라는 어마어마한 타이틀이 붙은 호텔이 이곳에 있다. 'Sextantio Le Grotte Della Civita Hotel'이라는 곳으로, 사실 이 호텔을 가고싶어서 이탈리아에 가는 것도 있다. 오붓한 동굴방에 전기 없이 오직 촛불로만 켜져있는 분위기가 너무 좋다. 언제 또 마테라에 오나 싶어서 하룻밤을 예약했다. 호텔뿐 아니라 식당도 상점도 모두 사씨로 되어있는 독특한 이 곳이 너무나 가보고싶어서 풀리아 지방에 대한 관심은 깊어졌다.
트롤리라는 독특한 가옥으로 조성된 마을이다. 옛 세금법 때문에 생긴 독특한 건축물인데, 지붕의 갯수로 세금을 매기던 시절에 맨 윗단을 제거하면 지붕을 쉽게 무너트릴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아기자기한 스머프마을 같은 비주얼에, 빠르게 돌아볼 수 있어서 풀리아 지방 여행 시에 많이들 들르는 곳이다.
앞서, 이탈리아 소도시는 색깔이 통일감이 있어서 좋다고 했다. 이 곳 오스투니의 컬러는 ‘화이트’이다. 미술품을 보거나 유명관광지를 가기 보다는 그 도시에서 현지인들의 문화를 체험해보고 오는게 내가 좋아하는 여행이다. 이곳 오스투니에서도 하얀 도시와 바다 풍경 바라보며 현지인처럼 아페리티보 한 잔 하고 오는게 계획의 전부였다.
* 아테리피보 : 이탈리아 식전주 문화로, 주로 스프릿츠라는 환타맛 술을 마신다. 술을 주문하면 안주도 함께 차려준다. 이탈리아 북부에서는 아페리티보를 주문하면 뷔페가 제공이 되기도 한다. 술은 한 잔에 만원 가량 밖에 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폴리나노 아 마레에는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식당 1위'가 있다. '그로타 팔라제쎄'라는 호텔에서 운영하는 동굴 레스토랑으로, 인당 150유로 이상으로 가격이 상당하지만 신혼여행 명목이니만큼 예약을 했다. 야외에서 식사가 가능한 봄~가을 기간에만 운영을 하니 항상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폴리나노 아 마레에는 동굴 레스토랑 외에도 해안 풍경이 아름다우며, 해산물 요리가 유명하다. 이곳의 많은 숙소는 발코니에 쇼파가 나와있고 바람에 파란 천이 날리고 있다. 밖에서도 쇼파에 앉아있을 만큼 오래 머물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이 곳이 날씨가 좋다는 이야기. 파란 천과 푸른 하늘, 바다 때문에 이 소도시는 짙은 파랑색이 연상된다.
움브리아
아씨시는 토스카나 옆마을로, 성지순례지로 유명하다. 마을은 기차역에서 한참 올라가서 높은 지대에 있다. 가장 높은 언덕에 성 프란치스코 성당이 있다. 그곳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은 움브리아 평원이다. 토스카나와는 비슷한 듯 다른 것이, 구릉지가 아닌 광활한 대평원이다. 엄청난 스케일의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다니, 마테라에 이어 두번째로 기대되는 소도시이다. 아씨시에 가면 수녀원에 숙소를 잡고 제공하는 밥도 먹으며 금욕적인 하루를 보내는 분들도 많던데, 이색적일 것 같지만 아쉽게도 예약이 빠르게 마감되는 편이다. 성당을 등지고 바라보는 움브리아 풍경은 경건하고, 마을은 소박하지만 맛있고 아기자기하다고 익히 들었다.
아씨시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정말 작은 소도시 스펠로. 꽃의 마을이라는데 내가 가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방문한 6월은 마침 꽃 축제 기간이라 꽃으로 도배된 시기이다. 이 정도의 정보만 갖고 큰 기대감 없이 가볍게 둘러봤던 소도시이다.
캄파니아
’이탈리아 남부‘는 지리적으로 더 남부인 곳도 있지만, 한국 여행사 패키지 상품으로 흔히 아말피, 소렌토, 폼페이를 묶어서 남부투어로 판매하기 때문에 로마 남쪽의 그 지역을 의미하는 것으로 통용된다. 나도 지난 유럽 여행 때 하루짜리 패키지로 남부투어를 한 적이 있다. 포지타노~아말피 해안은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선정한 ‘죽기 전에 가봐야 할 곳 1위’로 선정된 여행지이다. 버스로 해안선을 달리는데 마을과 바다가 참 아름답더라. 지중해의 햇살은 쨍쨍하여, 길가에 노점에서 햇볕에 말린 토마토를 시식하라고 건네주는데 어찌나 상큼하고 품질이 좋던지. 소렌토에서 우연히 들렸던 젤라또샵은 본인이 만들어낸 맛이라며 미소가득 자부심 & 손님이 좋아할까 기대하며 한껏 퍼주는 인심이 좋았다. 이탈리아 남부에 사는 사람들은 확실히 더 행복해보이는게 있었다. 배도 타고 굽이굽이 해안길 따라 드라이브도 하고. 유명한 곳도, 유명하지 않은 소도시도 중간중간 방문하여 이탈리아 남부를 구석구석 여행했다.
요리하며 여행하는 플로리스트의 관점으로, 다음장부터 각 도시의 색채와 맛을 풍부하게 전달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