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가장 작은 물로 내려
지상의 가장 큰 한발을 소리도 없이 차곡차곡 적시며
사랑의 몸짓이듯 때론 격렬하게
어둠에 불타고 있는 나무와 풀과 도시와
인간의 집들을 적시며 파랗게 불빛 일으키며
여름 벌판에서 겨울 벌판까지
지상의 죽어가는 모든 풀꽇을 일으키며
불타오른다 이 비는 거의 꺼질 것 같은 나뭇잎의 등불처럼
자신을 지상에 파열하여 사랑의 불꽃을 일으킨다
- 박용하 비 일부
강가에 나와 내가 나를
떠나보낸다
이젠 가봐
/……//
그동안 힘들었지?
이젠 나를 떠나도 좋아/저것 저 물고기
-나태주 <방생>일부-
참으로 윤회가 사실이라면
나로서는 죽어서
빨래같은 것이 한번 되어보고 싶다
내장도 피도 없는
그런 것이 한번 되어보고 싶다
하지만
어느 누구에게
입혀지고 싶지는 않다
-이제하 <빨래>일부-
박용하의 <비>에서 자연의 순환성을 읽을 수 있다 비가 지붕 위에 떨어져서 땅위로 흐르고 다시 바다로 가서 바다에서 하늘로 상승한다 가장 작은 물로 내려 지상에서 가장 큰 발을 소리도 없이 적시며 지상에서 죽어가는 모든 풀꽃을 일으키며 불타오른다 생에 대한 기둥을 박으며 하늘로 치솟는 나무처럼 지상으로 내려오며 생명의 에너지를 뿌린다 초목과 과실에는 이치가 있으며 사람에는 인륜이 있다 인륜은 인간질서를 잡는다 성인을 만나서 순종하고 거스르지 않고 지나감을 자연에 맡기며 조화하고 순응한다 사람은 죽고 살고 반복하여 순환한다 생물이나 사람이 죽음을 슬퍼함은 사생에 속박하여 아직 벗어나지 못해서이다 이 속박을 벗어나서 변화할 때 혼백이 가고 숨은 끊어지며 물로 돌아간다(김동성(金東成) 역 장자 지북유(知北遊) 편 을류문화사 P 174)
나태주의 <방생>은 화자가 이전에 존재하던 자신을 떠나보내는 통과의례가 나타난다 떠나보낸 후 자유롭게 자연과 일체가 되어 초록바람이나 단풍나무이파리가 되고자 하는 바램이 나타난다 따라서 생을 순리대로 받아들이려는 화자와 만나는 이제하의 <빨래>에서도 화자는 죽어서 내장도 피도 없는 빨래가 되고 싶어 한다
이는 선의식禪意識 가운데서 견성성불見成成佛이 나타난다 크게 깨달음을 얻고 나면 사물에 대한 시각이 다시 열리게 된다 이는 먼지로서 존재하는 물질에 마음을 두지 말고 자기 마음으로 들어가서 깨달음을 구할 때만 가능하다는 말이다
화자는 빨래처럼 내장도 피도 없는 겉껍질이 되고 싶다 불가에서는 사람 몸둥이를 겉껍질로 여기며 산 동안에 입고 있는 옷이라는 관점에 기저를 둔다 누구의 몸에도 껴입혀지고 싶지 않음은 이미 윤회의 틀에서 벗어나 다시 사람으로 돌아가더라도 구속을 받지 않겠는다는 뜻을 내포한다
홍희표의 <다시 티끌로>에서도 지옥과 천당을 드나들며 다시 티끌로 만나리라 하여 순환성을 드러낸다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온 우리가 죽어서는 잠깨인 두더쥐로 만나거나 초침(秒針)으로 티끌로 만나서 의지할거라 한다 정현종의 <구름의 씨앗>「세상의 나무들」(1995)에서 땅 위의 살아있는 생명체들은 한 때는 기체이다가 또 고체이다가 액체이기도 한 우리들 저 밑도 끝도 없는 시간 속에서 플랑크톤 풀 구름이 아니냐고 한다 생명체의 변화를 통해 인간도 인간이외 생명체인 만물이 되어 지상에서 한 몸으로 떠돈다
인간사회에서 그 구성원 개개인은 동등한 자격으로 어울려 살고 있으며 공생공존 질서 속에서 화엄동체 생명질서 의식이 나타난다 정현종의 이슬에서의 화자는 나무가 구름을 낳고 구름은 강물을 낳고 강물은 새들을 낳고 새들은 바람을 낳고 바람은 다시 나무를 낳는다고 한다 여기서 이슬로 생명의 길이 열리고 있음을 알게 된다 나태주의 방생)에서의 화자는 강가에 나가 자신을 떠나보내는 화자는 초록바람도 되고 단풍이파리도 되고 물고기도 된다 결국 화자와 우주가 하나임을 인정하는 생명공동체의 정신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그밖에도 생명성에 대한 공생공존의식 생명에 대한 연대감이 나타나는 시에는 우주질서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무절제한 인간행위 자연을 생각하지 않는 인간 이기심은 진정한 생명공동체일환으로서 자격을 이미 상실했다 생명에 대한 신비를 탐닉하는 데 진정한 즐거움을 찾는 생명 지향 감성회복(장회익1993)에서 온 생명(global life)에 대한 황금고리를 생각할 수 있다 나태주의 <촉>에서 화자는 풀의 생명이 온전히 피어나기 위해서 지구를 통째로 들어 올릴 만큼의 강한 인내와 고통이 필요하다고 한다 아무리 하찮은 생명체일지라도 그 생명체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삼라만상의 도움이 필요한 만큼 생명은 그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모두가 중요하다고 여긴다 또 이를 위한 노력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에 해당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자연생태계 내에서 자연스러운 생존방식을 인정하는 모든 생명체의 삶은 제각각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유기적 연결망 속에 존재하게 된다 각각의 생명체는 전체의 일부로서 독립성과 종속성을 갖는 동시에 전체로서의 생명은 부분으로 분할될 수 없고 부분이 전체에 통합됨으로서 각자의 개성을 주장하기도 한다 생명은 전일적이며 개별성과 전체성을 함께 지니는 유기적 통일체이다 그러면서 다른 생명과 더불어 공생하게 된다
공생공존의 세계를 지향하는 자연은 이로 인해 더욱 아름답고 신성하게 느껴진다 경이의 세계를 꿈꾸기도 하고 신비 평화 영원의 표상이 되기도 하며 냉혹한 투쟁의 장이 되기도 하는 자연은 모든 생명체들이 서로 공유하면서 살아가야 할 삶의 공동장소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자연의 생명성과 관련지어 보면 강인한 삶의 의지를 보다 적절하게 드러내기 위해서는 불변하는 자연을 매개로 삼고 있다 영구히 사라지지 않을 그렇지만 화자는 순간순간 조금씩 변하는 자연물을 통해 강한 생명력을 드러내는 자연을 화자도 본받아 자신의 생명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그밖에도 나태주의 <변방 1> 이건청의 <눈먼 자를 위하여 10> 김명원의 <7월의 나무 아래서>에서도 자연과 인간이 동등한 생명체임을 인식하는 공동체적 삶의 방식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