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를 시작한 이유
가끔 라디오처럼 듣는 팟캐스트에서 호스트가 유쾌하게 웃으며 이야기 하던 말이 내 귀에 꽂혔다.
"저는 엄마를 믿지 않아요. 엄마를 믿다간 큰 코 다칩니다 여러분."
엄마와의 관계에서 큰 코 다치고 있던 당시.
'내가 왜 이렇게 울고 있지?' 라며 스스로도 혼란스러워 붉은 얼굴로 씩씩거리던 중에
저 말이 흡사 부처의 가르침처럼 크게 들렸다.
사실 나는 스물 다섯살이나 먹고 스물 다섯 해를 묵힌 분노를 뒤늦게 분출하고 있던게 약간 쑥스럽고 창피했다.
다 큰 어른이. 이제는 부모님께 도움을 드린다면 드려야 할 나이에.
엄마 탓을 하고 있으니.
의식도 못하고 스스로 이렇게 생각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자라오며 학습되었던 가치관이 저렇게 내 안에 작은 생각으로 자리잡고 있었던 셈이다. 인식되는 의식의 영역 밖에 있는 이 생각은 아주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였지만 강력히 나를 고립시켰다. 삼남매중 유일하게 뒤늦은 사춘기가 온 K-장녀였던 나는 외로웠던 것이다. 동생들이 나를 뭐라고 생각할까? 한심하게 보일까? 신경이 쓰였고, 엄마와도 대치중이니 가족들 중 혼자였다.
늘 먼저 해내고 먼저 가며, 의젓하고 믿음직한 나무여야 했기에 오로지 나를 위해 내 안의 분노와 거절을 꺼내는 건 낯설었다. 그동안 나에게는 옳고 그름에 대한 판결을 내린 후 스스로의 감정과 자아를 거세하는 게 익숙하게 학습된 방식이었다. 익숙한 방식을 거스르다보니 혼란스럽고 어려웠다. 엄마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나는 서 있는 땅이 흔들리는 기분을 느꼈다. 두려웠다. 내가 예전처럼 어른스러운 사람이 아니어도 나를 이해할까? 내가 이렇게 어린아이같아도 될까?
그래서 그 팟캐스트에서 "엄마를 믿지 마세요~"라고 웃으며 말하는 목소리를 들었을 때
'지금 나와 같은 마음이었던 사람이 또 있구나..'싶어서 위로받고 공감받았다.
씩씩하게 화를 내면서도 외롭고 두려웠던 것이다.
그건 지금도 그렇다. 나는 여전히 늘어진 반죽이다.
그런데 발효되고 있는 것 같다.
이제 엄마를 무조건적으로 신뢰하고 엄마를 위해 무엇이든 해내려 하던 아이는 없다.
엄마가 아플까 무섭고 안쓰러워 엄마의 보호자 노릇을 하려고 하던 아이도 없다.
엄마가 나에게 하는 의지를 감당하면서도 더 지켜주지 못해 무력감을 느끼던 아이도 없다.
나는 내 중심을 '나'로 옮겼다.
다른 말들보다는 내 목소리를 들어주고 존중해주기 위해 처음 해 보는 집중과 실행을 노력한다.
나는 나와 엄마가 함께 얽힌 덩굴나무처럼 하나인 줄 알았다.
내가 엄마의 보호자이자 배우자 역할도 해야하는 줄 알았다.
그러면서도 엄마가 딸인 나를 사랑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사실 엄마는 타인이고,
엄마는 엄마의 자식인 나에게 보호자이자 배우자이면서도
아기인 막내동생을 책임지는 또 다른 엄마 역할을 하게 했고,
그건 어린 나를 지켜주지 않는 행동이었다.
엄마는 나를 지켜주지 않았다.
엄마는 내가 성숙하고 엄마는 고단하다는 이유로 어린 나를 어른처럼 사용했다.
그리고 가끔씩 내가 제나이 또래처럼 미숙하거나
그저 딸이기를 원할 때엔 내게 화를 내거나 어리광을 부렸다.
내게 있어서 든든한 적이 없었고, 늘 약했으며 방관하고 회피했다.
어린 내가 늘 무엇이든 스스로 해내길 바랬으며, 엄마의 요구도 거절하는법 없이 해내주길 바랬다.
내가 그렇게 할 때 그렇게 하는 나를 무척 사랑했다.
엄마는 지금도 엄마가 내게 어떤 행동들을 해왔는지 잘 모른다.
나도 인생이 처음이고, 엄마라는 존재도 처음이어서 엄마가 나를 지켜주지 않던 걸 몰랐다.
엄마를 믿지 마세요.
이제는 엄마가 자식을 부모로써 사랑하는데에 굉장히 게으른 사람이었다는걸 안다. 마주하는 건 고통스럽지만 그걸 마주하게 되면서 나는 사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내가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저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그 사랑의 생색에 속아 나를 믿고 지키지 못했다. 나를 지켜주지 않는 엄마로부터 나를 지켰어야 했는데 엄마를 지키느라 그걸 몰랐다. 사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울고있었고 애증에 고통스러워했었다. 필요한 걸 알게 되었더니 내 눈물을 닦아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내가 엄마 말고 나를 지키는 선택을 하기 시작한 후로 나는 엄마를 믿지 않게 되었다. 반죽처럼 곤죽이 된 상태로 흘러내리고 있긴 하지만 좋다. 만족스럽다. 나는 이제 엄마를 향한 애증과 죄책감, 무력감, 부채감에 허덕이기보다 나 자신과의 화해를 하는데 내 삶을 쓸 수 있다.
"엄마를 믿지 마세요."라는 말. 그 호스트가 어떤 경험을 가지고 이 말을 했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 말이 "엄마 말고 너를 믿으세요."라는 말로 왔다. 그래서 진심어린 위로였고 인류애가 담긴 조언이었다.
두 번 다시 날 모른 척 하지 않아
그럼에도 여전히 가끔은
삶에게 지는 날들도 있겠지
또다시 헤매일지라도 돌아오는 길을 알아
- 아이유, 아이와 나의 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