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나도, 널 구할 수 있어
내가 속셈학원을 다닌 지 막 한 달 정도가 되어 가던 때이다. 언니는 중학교에 가면서 이곳을 그만두었다. 피아노 학원을 가기 전에는 꼭 속셈학원을 다녀가야 했다. 정말이지 이곳은 내가 정말 혐오하고 오기 싫어했던 곳이다.
커다란 칠판을 앞에 두고 정말 많은 아이들이 한꺼번에 수업을 듣는다. 내 기억엔 60명도 넘는 숫자였다. 그땐 이것이 가능했던 모양이다.
학원비를 받고 단 한 명의 선생, 또는 원장이라는 사람이 그 많은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때 속셈학원이란 곳은 주산 학원의 인기가 식어 갈 때 즘, 엄마들이 아이들을 그곳으로 불티나게 팔았던 곳이다.
생각해 보면 주산학원과 속셈학원은 이 작은 시골 마을에서 엄청난 경쟁을 했던 것이다.
주산학원이 점점 힘을 일어가더니 사라진 것을 생각하면 참, 씁쓸하다.
나는 주산학원 원장님이 아이들의 대한 눈높이 맞춤의 배려를 참 좋아하지 않았던가. 여하튼 그 지옥 같은 속셈학원은 지금과 학원들과 비교한다면 말이 안되는 곳일 것이다.
어떻게 한 명의 선생이 육십 명이 넘는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말인가, 또한 그 아이들 부모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을 어떻게 지급을 한단 말인가, 아 생각만 해도 이건 어질어질하고 합리적이지 못한 일이다.
그렇게 나의 부모님도 주머니에 있는 돈을 쓸데없이 날려 보냈다.
정말이지 쓸데없이.
나는 늘 중간에 문제집을 펴고 앉았다. 난 암산을 잘 하는 편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주산학원을 다녔을 때 익힌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 수업은 세 자리 숫자를 스무 줄로 나열해 놓은 것을 아주 빠르게 정해진 시간 안에 푸는 것이었다. 나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학원 선생이 내 옆을 왔다 갔다 할 때마다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이 선생의 생김새를 말하자면 한 마디로 고릴라를 닮았다.
더군다나 앉아서 고개를 높이 들어 올려도 이 선생의 머리 꼭대기는 볼 수가 없었다. 그만큼 거구라는 이야기다. 안경은 자신의 얼굴 보다 더 큰 금테 안경을 쓰고 있었고, 머리 모양은 옆 가르마를 지나치게 타 놓아서 어딘가 어색해 보였고 또는 징글맞았다.
게다가 배는 불룩, 아, 그 엉덩이는 생각도 하기 싫지만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늘어놓아야만 한다.
그 엉덩이는 길이가 길고 네모 방석 같은 모양이다.
그리고 왜, 선생이라는 작자가 늘 복장이 불량했는지 모를 일이다.
바지의 엉덩이 부분은 늘어져서 늘어짐이 바닥에 닿을 지경이었다.
늘 행색은 자다가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모습이었고, 콧구멍에서는 기다랗고 굵은 검은 그 어떤 것이 숨을 내쉴 때마다 파르르, 하고 떨렸고 들이 마실 때 마다 지렁이처럼 다시 그 지저분한 굴로 말려 들어갔다.
늘 갈색 엑스 자의 슬리퍼를 질질 끌며 내 옆에 왔다는 신호의 소리를 낸다.
그리고 나의 문제집 앞에 쓰여 있는 내 이름을 말한다.
“우재, 열심히 해야지.”
그리고 선생은 숫자들을 큰 소리로 말하며 나의 목뒤를 쓰다듬었다. 정말이지 심장이 조여들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나는 그저 나를 알은 척,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이 찾아왔고, 똑같이 내 이름을 말하며 숫자를 말하며 이번에는 귀밑을 쓰다듬었다.
그 작자는 그렇게 내 옆을 지날 때 마다 그 짓거리를 했다.
처음엔 내게 친절하게 대하는 선생이 나를 특별히 관심 있게 봐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선생의 뒷모습을 멀뚱히 보고 있으면 내가 아닌 다른 몇몇 아이들에게도 그 짓거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불편한 일임을 나는 직감했다.
하지만 뻔하지 않은 가, 영주가 없고 영혼이 없는 난 그럴 때 마다 그냥 꾹, 참아야 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말이다.
그 선생의 차가운 손길이 소스라칠 정도로 소름 끼치지만 수업하는 동안 하지 말라고 소리를 지를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이 선생의 손 버릇은 콧구멍의 코 털이 길어지는 만큼 날이 갈수록 수위가 높아졌다.
그 날 나는 긴 팔 남방을 입고 있었다.
그 섬뜩한 슬리퍼 소리가 스륵 스륵, 소리를 내며 내게 다가왔다.
난 곁눈질로 선생을 치켜올려 보았고 그런 나를 보고 선생이 말했다.
“문제를 봐야 지 뭐 하는 거야?”
나는 문제집에 코를 박고 두 다리를 덜덜덜 떨었다.
아니 나의 몸 전체가 떨렸던 것 같다.
그때 그 작자의 차갑고 더러운 손바닥이 내 등으로 쑥 들어가더니 그 큰 손바닥이 내 허리춤까지 내려갔다.
나를 단단히 묶고 있던 단단한 앞 단추가 내 목을 짓눌렀다.
나는 아주 작게 소리를 냈다.
내 생각에는 크게 소리친 거라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조졌어 어어”
아뿔사, 조진다는 말을 조졌다고 잘못 표현하고 말았다.
나는 참 모지리가 맞다.
나는 왜 하필 이때 삼촌의 습관적인 버릇이 담긴 이 말을 뱉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모르겠다.
아무래도 삼촌의 조졌다, 는 그 말이 내심 통쾌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고개를 숙이고 입 모양을 만들면서 소리 내지 않고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몸서리쳤다.
으어어어아아아아악, 싫어 싫어 싫다고, 그 작자가 행동을 멈추며 씩, 하며 웃었다.
나는 몸을 벽 쪽으로 쑥 빼며 엉덩이를 의자에 반만 걸쳐 앉았다.
선생은 두 눈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집중해야지”
선생은 비겁한 웃음을 날리며 지나가더니 뒤통수로 나를 비웃었다.
아니 마치 그 작자의 뒷모습만 보아도 나를 쓰다듬는 것처럼 느껴졌다.
분명 그 새끼가 나를 보고 웃었다.
나쁜 새끼, 난 이 사실을 당연히 누구에게도 말 할 수 없었다.
난 잘못한 게 없는데 이 말을 해 버리면 난 또 내가 잘못한 사람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속셈학원을 나가지 않기 시작했고, 좀 더 이른 시간에 피아노 학원을 가서 내 차례를 기다렸다.
그 새끼는 내가 학원을 나가지 않았음에도 나의 엄마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그 점을 보면 분명 그 새끼는 지가 잘못한 것을 아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엄마 주머니에서 나간 돈은 잘도 받아 먹었다는 후문이다.
얼마 후, 우리 동네는 난리가 났다.
난 그 소식을 듣고 나 뿐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누군가가, 그 사실을 나처럼 숨긴 것이 아니라 고발을 했다는 것에 엄지를 치켜올렸다.
영주 같은 아이가 또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그 새끼는 속셈학원 문을 닫게 되었고 게다가 사기를 쳐서 감옥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 사건이 일어난 후, 엄마는 뒤늦게 물었다.
아주 조심스럽게 말이다.
“우재야, 넌 속셈학원에서 별일 없었지?”
그 말은 꼭 없었다고 말 해줘, 라는 식의 언어로 들렸다.
엄마의 표정은 내 아이는 괜찮아, 라고 내게 말하고 있었다. 엄마는 면죄부가 필요한 사람 같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고 다시는 그 학원이 있었던 자리도 지나가지 않았고 꼭 가야 한다면 맞은 편 건널목을 건너 더 먼 길로 걸어갔다.
그리고 또 삼촌처럼 침도 뱉고 다시 조진다는 말을 읊어가며 걸었다.
이번에는 맞는 말이 나왔지만, 역시 욕이라는 것은 그런 모양이다.
나는 통쾌하지 않았다.
그 새끼가 하는 짓이 아동 성추행이라니, 난 그걸 겪은 사람이다.
하지만 나의 부모님은 모른다.
생각해 보면 숨어있는 이런 악마 같은 새끼들이 얼마나 많을 지, 또한 나 같은 성격의 아이들은 또 얼마나 많을 지,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은 일들은 정말 많을 것이다.
난 그때부터 남자 어른들이 싫었고 나를 예쁘다고 칭찬하면 도망갔다.
생각해 보면 난 그때 정말 운이 좋았다.
그래, 엄마의 말처럼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나의 귀가 시간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늦어졌다.
난 벌써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아마 다들 놀랐을 것이다.
영어 과외를 시작한 나는 연립 아파트에서 이 동네의 끝에 위치한 곳까지 가야 했다. 따지고 보면 큰 산등성이를 하나 넘어가는 것과 같다.
피아노 학원을 마치고 과외를 하고 나면 또 버스 정류장에서 집까지 걸어야 했다.
정말이지 나의 생활은 너무 고되다.
난 아직 나의 나라말, 한글도 잘 모르는 데 왜, ABCD를 공부해야 할까?
거기에 주어 동사라니, 나의 골치가 썩어갔다.
벌써 시간은 여섯 시가 넘어가고 있었고 해는 커녕, 시커먼 그림자 뿐이다.
겨울이 시작되면 반짝이는 해도 추웠는지 일찍 퇴근을 했다.
왜 그렇지 않겠나, 인간이라는 작은 나도 하루가 이렇게 피곤한데, 저 높은 곳에서 지구를 이렇게 비추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어둠이 깔릴 때 집에 간다는 것에 무서움을 떨었다.
엄마라도 나를 마중 나오길 바랬지만 그 시간은 엄마가 가장 바쁜 시간이다.
늘 지나가는 교회의 십자가에 붉은 불빛이 새어 나왔다.
아, 그 그림자까지 무서웠다.
이제 드디어 연립 아파트가 시작되는 담이 나왔다.
이곳은 놀이터가 먼저 시작된다.
그 전에 교회를 벗어나면 오른쪽으로 뻗어 있는 골목길, 그리고 골목길을 건너면 작은 공원이 있다.
그 공원은 공원의 역할을 못한다. 왜냐면 쓰레기가 늘 산더미였다.
그게 무슨 공원인가, 으스스한 느낌만 더했다.
공원을 지나면 바로 놀이터가 시작되는데 우리의 그 놀이터에는 말도 안 되는 화장실이 있었다.
그 시절, 화장실이 있는 놀이터를 보았는가?
정말 대단한 회사이지 않나, 그 당시 놀이터에 물이 나오는 세면대와 화장실이 있다니 말이다.
하지만 난 그 화장실을 단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다.
왜냐면 화장실 자체, 그 단어로도 난 공포에 떠는 아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화장실은 세상의 모든 귀신이 튀어나왔다는 소문의 시발점인 곳이다.
그땐 왜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가 그렇게 무서웠는지.
대체 빨간, 파란 휴지는 누가 만들었을까?
난 그 화장실을 곁눈질하며 혹시라도 누군가가 나를 부를 것 같은 착각에 빠져 미친 듯이 뛰었다.
아, 이곳만 벗어나면 경비실이 나온다.
아저씨, 남자이긴 하지만 사람이지 않은가, 나는 다시 뒤돌아 그 화장실을 보았다.
악, 뭐지? 이건 뭘까? 세상에 난 분명히 보았다.
하얀 얼굴을, 그것은 목도 없고 다리도 없는 얼굴만 동동 떠 있는 형체이다.
그 얼굴은 화장실 좁은 공간 위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나를 보고 있었다.
아, 아닐 거야, 잘못 봤어, 하느님을 믿는 내게 저 따위가 보일 리 없잖아.
나는 다시 뒤돌아보았다. 아니다. 그건 실제 하는 것이었다.
눈을 비비고 별 짓을 다해 보아도 그 얼굴은 나를 보고 있었다.
“으아 아아 으앙 엄마 아아.”
난 미친 듯이 뛰었다. 뛰면서도 난 6동을 확인하며 나의 집으로 향했다.
왜 집 주변은 이렇게도 새까맣게 보이는 건지, 이층 우리 집에 불이 훤하다.
조금은 위안을 느꼈다. 계단을 올라가는 것도 난 너무 무서웠다.
난 누가 쫓아오는 것 같아 아예 계단을 뒤로 기어가듯 걸었다.
으어엉, 이제 집 앞이다. 난 옷 소매에 눈물을 닦고 콧물도 닦았다. 이 모든 것이 난 너무 고난스럽다.
그리고 현관문을 비틀었다.
맙소사, 문이 잠겨 있다.
난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다시 문을 열어 봤지만 문이 열리지 않았다. 내 눈에서는 눈물이 다시 흐르고 있었고, 문이 잠겼을 때 엄마가 알려 준 행동을 시작했다.
우유를 넣어 두는 구멍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곳에 열쇠가 있을 것이다. 손을 더듬더듬 바닥을 짚었지만 열쇠가 잡히지 않았다.
다시 바닥을 손바닥으로 훑자, 그때 나를 따라온 화장실 얼굴 귀신이 나의 손을 덜컥, 잡아 챘다.
난 그 자리에서 기절 하고 말았다.
백미터를 전력 질주한 것처럼(물론, 내 생에 백미터 전력 질주, 란 일은 아직까지 없었다) 정신이 아득했고 기력이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 보니 아빠의 무릎 위에 누워 있었다.
옆에서 울고 있는 우성이, 그리고 언니 우정이, 엄마 아빠가 나를 위에서 내려 다 보고 있었다.
아빠가 말했다.
“괜찮아? 원 녀석.”
우성이가 울먹이며 내게 말했다.
“미안해 누나 으앙."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우성이를 상대해 주지 않은 우정이는 필요 없었다.
우성이는 한없이 나를 기다렸고 베란다에서 내가 뛰어오는 것을 보고 작전을 펼친 것이다.
당연히 아빠는 텔레비전에 신경을 쓰고 있었고 엄마는 저녁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우리 식구들은 열쇠가 없을 때는 꼭, 우유 구멍을 사용했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우성이가 내 손가락이 들어왔을 때 내 손을 덥석, 잡은 것이다.
우리 집 식구들은 다 안다.
내가 겁이 많다는 것을, 아주 작은 심장과 툭, 하면 떨어지는 간을 지녔다는 것을, 그리고 우성이는 겁을 상실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기절할 거라는 상상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성이는 내가 죽은 줄 알았다고 했다. 우성이는 그날 이후, 나를 절대 놀라게 하지 않았다.
물론 오줌싸개라고 놀리긴 했지만 말이다.
나의 눈 속과 상상의 공포 속 영상에는 또 하나의 귀신이 초대된다.
몇 번째 인가, 전설의 고향, 구미호, 여곡성, 드라큘라, 휴지 귀신, 얼굴 귀신, 참 많기도 하다.
난 아주 오랫동안 그 얼굴 귀신 때문에 그 길을 걷지 못했다.
그 맞은 편 길에는 큰 병원이 있었고 나는 그 길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병원에는 영안실이라는 사람 시체가 있는 곳이 있다는 말에 내가 집을 가는 길은 아주 험난하고 위험했다.
그렇게 나는 늘 뛰어다니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그 길에서 만큼 나의 발은 보이지 않았다.
우다다다다다
사실, 영주의 편지는 여름부터 끊겼다.
오지 않은 답장을 바라며 몇 번이나 보냈다. 전화도 되지 않았다.
아, 이런 결국 나의 모든 편지가 반송이 되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 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통 없었다.
이번 겨울 방학이 되면 꼭 이곳 친척 집으로 놀러 올 것이라고 그렇게 약속을 했는데 연락이 되지 않았다.
분명 나의 영주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다.
난 꼭 영주를 구해야만 한다.
영주가 나를 구했던 것처럼, 이제 나는 그럴 용기가 조금 생겼다. 수많은 귀신들과 함께 생활하면서도 난 꿋꿋이 잘살고 있지 않은가, 난 옆 반 남자아이를 찾아갔다.
나는 영주의 관한 일이 라면 없던 용기가 툭툭, 튀어나왔다.
그 남자아이는 영주의 사촌이다.
영주가 서울로 이사를 갈 때 이 아이는 시내로 이사를 함께 나온 아이다.
땅을 나눠서 함께 팔았다고 한 집 아이다.
그 아이의 이름은 김현준이다.
역시 남자아이들은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 꼴을 못 봤다.
난 교실에 들어가지도 않고 문에 서서 김현준을 찾았다.
아, 찾았다. 뭐라고 할지 생각한 대로 말해야만 한다. 그 아이는 1분단 끝 쪽에 앉아 있었다.
나는 다시 뒷문으로 들어가 다가갔다.
“저기, 김현준 씨?”
악, 내가 미쳤다. 씨, 라니 요즘 만화책을 너무 읽은 탓이다.
다행히 김현준은 씨, 라는 징그러운 말을 듣지 못한 모양이다.
나는 깜짝 놀랐다. 영주처럼 눈이 크고 반짝거렸다. 그러고 보니 영주의 얼굴과 굉장히 닮아 있었다.
김현준은 무슨 일이냐는 듯 나를 멀뚱거렸다.
“저기, 영주, 영주 말이야, 연락이 안 돼, 넌 알지?”
김현준의 얼굴은 갑자기 썩은 고구마를 먹고 낀 방귀 냄새를 맡은 얼굴을 했다.
“나도 몰라.”
“어떻게 몰라? 친척이잖아?”
“가족 땅을 몰래 팔아서 그 돈 갖고 도망쳤는데 어떻게 알아?”
“어?”
나는 충격을 받았다.
영주는 땅을 팔아서 아빠의 형제들과 나눴다고 했다. 그래서 김현준의 집은 시내로 이사를 나올 수 있었다고 했는데, 이게 무슨 말인가?
“그 집이 돈을 갖고 튀었다고, 도망치며 살고 있겠지.”
난 김현준에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말했다.
“앗, 미안.”
도망치며 살고 있다니, 그렇다면 영주는 어떻게 되는 걸까?
영주는 잘못한 게 없다.
하지만 엄마, 아빠가 잘못을 했다면 함께 있어야 하는 영주는 함께 도망을 다닐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난 영주 걱정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아는 건 지금은 계속 편지가 반송으로 돌아오는 사라진 주소뿐이다.
나는 다시 전화를 걸어보았다. 역시 없는 전화번호다.
뭔가 일이 벌어진 게 틀림없다.
생각해보면 무슨 일이 일어났다 해도 영주에게 부모님이 있고 영주를 가장 걱정하는 사람이지 않은 가, 나는 좀 더 영주의 연락을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리고 수없이 영주를 위해 기도를 했다.
며칠 후, 김현준이 나를 찾아왔다.
영주는 전라도 광주로 이사를 갔다고 한다. 그 소식을 알게 된 것도 도망간 영주의 아빠를 김현준의 아빠가 찾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영주의 아빠는 이제 열심히 빚을 갚고 살아야 한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영주는? 영주는 어떻데?”
김현준은 먼저 내게 와서 말을 꺼내 놓고 도로 짜증을 부린다.
“내가 그것까지 어떻게 알아?
걔야 잘 지내겠지.”
나는 친척이면서 남의 일처럼 말하는 인정머리 없는 김현준이 맘에 들지 않았다.
“하... 그렇겠지?”
김현준이 다시 덧붙였다.
“영주는 머슴애 같아서 잘 지낼 거야, 안 그래?”
난 썩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어쨌든 나의 영주는 잘 지낸다는 것이니까.
“뭐 연락처라도 알게 되면 내가 알려 줄 게, 간다.”
나는 김현준의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다.
“정말 고마워.”
김현준은 꽤 멋있는 척을 떨었다.
보아하니 김현준은 나처럼 늘 혼자 있는 아이이다.
흠, 조금은 나도 너의 마음을 알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난 영주가 정말 어떤 어려움에 닥쳐 있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김현준의 말처럼 믿었다.
영주는 어떤 상황에서도 잘 헤쳐 나갈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아이니까, 난 그렇게 믿고 싶었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현준에게 영주의 소식을 들었다.
영주의 식구들은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고 한다.
난 이제 나의 영혼을 맡겼던 영주가 내 나라에 없다고 생각하니, 내 영혼과 함께 영주도 사라진 것처럼 모든 게 의미가 없었다. 그렇다 해도 어찌 내게 연락 한번 해주지 않았던 것일까, 난 영주의 주소도 모른다.
하지만 영주는 나의 모든 것을 안다.
마음만 먹으면 나를 보러 올 수도, 내게 편지를 할 수도, 내게 전화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주는 끝내 내 영혼을 갖고 미국으로 가 버렸다.
난 영주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꼬랑지가 긴 숱 많은 머리카락, 주황색 카라 티셔츠, 딱 붙는 청색 바지, 팔목에는 노란 고무줄을 늘 묶고, 내가 영주야, 라고 부르면, 나의 얼굴 바로 앞에 얼굴을 대고 배시시, 웃어 주는 반짝이는 얼굴, 나의 초등학교 시절을 모두 가진 아이 나의 영주, 넌 지금도 그렇게 오렌지 빛으로 반짝거리니?
보고 싶다.
끝내 난 너를 구할 수 없었지만 너의 소식을 알아보려 한 나의 노력은 알아줘.
그건 네가 가르쳐 준 나의 용기야, 너도 알고 있었지?
난 아직도 너를 가끔 생각해, 김, 영, 주.
이제 내 영혼 좀 돌려줘.
왜냐고?
또 다른 반짝거림을 찾아 나서야 해.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김현준이 다시 또 소식을 들고 왔다.
영주가 편지를 쓰지 못한 건, 수많은 빚쟁이들을 피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방법이었다고 말했다.
영주의 부모님은 자신들은 물론, 영주의 모든 것들도 그렇게 차단해버렸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또 한 번 울었다.
이젠 나도 널 구할 수 있어, 라고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영주는 알고 있을 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