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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봉 Sep 30. 2024

안녕, 나의 작은 사회

4. 친구=거짓말

  


언니, 우정은 중학생이 되었다. 

큰 키와 긴 다리 덕에 교복도 꽤 잘 어울렸다. 

하지만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 우정의 사춘기라는 이상한 단어는 독기 어린 말과 행동이 점점 더해져 우리 가족은 대화를 하기 위한 말도 제대로 꺼내지 못했다. 


아니 무슨 사춘기라는 게, 어찌 태어날 때부터 쭉, 이어져 온 단 말인가, 나는 안다. 우정의 사춘기는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시작했을 것이고 그로 인해 엄마는 늘 두통을 달고 살았을 것이다.

그런 언니의 동생으로 태어난 나의 운명이 안타깝기만 할 뿐이다.

게다가 그 이기심은 날로 더해져 늘 용돈이 풍부한 이 언니는 맛있는 것도 늘 혼자 먹었다. 동생 둘을 두고서도 말이다. 우정에게 나의 입은 그냥 주둥이였던 모양이다. 


우린 학원을 정말 많이 다녔다. 

집에 발을 들이기도 전에 태권도, 주산 학원, 피아노 학원, 속셈 학원, 아, 또 있다. 미술 학원까지, 우린 유행의 흐름에 따라 모든 학원을 섭렵하고 다녔다. 


당연히 난, 학원에서도 늘 혼자였다.


우성이와 함께 다녔던 태권도는 내게 너무 폭력적이었고 오히려 얻어맞을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대련하는 것 자체도 내게는 공포다. 안 그래도 항상 주눅이 들어있던 나는, 그렇게 노란 띠를 끝으로 태권도 학원은 마무리했다. 정말이지 내겐 불명예다.


언니 우정이가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우리는 속셈 학원과 피아노 학원을 함께 다녔다. 

물론 그때도 우정은 나를 쌩, 했다. 정말이지 마치 투명 인간처럼, 내 곁을 내 눈빛을 모른척했다. 

내가 그렇게 싫었을까, 왜 싫었을까, 왜 그때 나는 우정에게 그 점을 한 번도 물어보지 못했을까. 

갑자기 또 생각을 떠올려 보니 굉장히 자존심도 상한다. 그것도 모르고 눈치 없이 뒤꽁무니를 따라다니기나 하고 정말이지 나는 모지리가 맞다.


나는 7동 수정이와 쭉, 단짝으로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붉은 성에서는 다른 반이었기 때문에 함께 어울리기가 힘이 들었다. 그리고 수정이는 약간의 당돌함과 발랄함을 갖고 있어서 늘 주변에 친구가 많았고, 귀엽고 동글동글한 이미지는 남자아이에게도 인기가 좋았다. 더군다나 공부까지 늘 일등을 차지했다. 

우린 학년이 올라가면서 또 한 번 다른 반이 되었고 수정이는 같은 7동에 사는 주희라는 아이와 같은 반이 되었다. 당연히 그들은 자연스럽게 단짝이 되어 어울렸고 나와 수정이의 단짝이라는 우리의 쌍둥이 이미지는 그렇게 빼앗아 갔다.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연립 아파트 내에서도 이제 친구가 없다는 것이다. 아니다. 애초부터 그 자리는 내 자리가 아니었는지 모른다. 그야말로 나는 다시 외톨이로 돌아왔다. 그런데 우정은 친언니라는 이 인간은 나를 이렇게 모른 척했고 끝까지 외면했다. 나의 여린 마음은 상처투성이로 늘 어깨가 졸아들었고 눈은 겁을 잔뜩 먹은 체 더욱더 커지고 있었다. 


오랜만에 수정이와 나는 방학 숙제를 수정이의 집에서 하기로 약속했다.

약속 시간에 맞춰 나는 수정이의 집에 방문했고 이미 수정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주희를 보고 조금 놀라긴 했지만 난 얼마든지 함께 잘 어울리고 싶었기 때문에 둘의 비위를 잘 맞춰 주고 싶었다.


오늘도 수정이 엄마의 껌 씹는 소리가 신경 쓰이긴 했지만, 난 정말 잘 해내고 싶었다. 

그런데 주희라는 아이가 틈만 나면 내게 시비를 거는 것이 아닌가, 그냥 이유가 없다. 내가 수정이에게 말을 걸기만 하면 그랬다. 그리고 수정이가 보지 않을 때마다 주희는 내게 눈을 흘기며 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쭉 찢어지고 작은 눈이 더 찢어져서 마치 날카로운 송곳처럼 보였다.


주희는 이유 없이 내게 자주 이런 말을 했다.


“야, 하지 마”


대체 나 보고 뭘 하지 말라는 이야기인지, 답답할 노릇이 아닌가.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물었다.


“뭘?”


“수정이에게 말 걸지 말라고”


나 참, 어이가 없는 말이다. 

말을 걸지 말라고? 이게 말이 되는 얘기인지 주희는 뭔가에 굉장히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 아이처럼 보였다. 난 나의 단짝 수정이를 절대 놓칠 수가 없다. 우린 생일도 같고 얼굴도 닮았다. 난 친구를 찾고 싶었다. 


나의 용기가 불쑥 나와 말했다.


“네가 뭔 데 말을 걸지 말라고 해?”


그때 수정이가 내게 말했다.


“내가 공부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말 걸지 말라는 거지”


이럴 수가, 나의 단짝, 나의 천사, 나의 친구, 나의 쌍둥이, 가 그 못된 주희의 편을 들었다. 

그동안 볼 수 없던 수정이의 싸늘한 얼굴이다. 


그 둘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미소로 대화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미소를 풀어 보자면 우재 따위 신경 쓰지 마, 난 원래 우재와 숙제를 같이 하고 싶지 않았어, 정도가 될 것이다. 


난 공책을 덮고 수정이를 보지도 않고 아주 천천히 그 집을 빠져나왔다. 껌을 씹고 딱딱, 소리를 내는 딱딱이 아주머니가 나를 딱, 우재, 딱, 우재야,라고 불렀지만 돌아보지 않고 걸었다. 아니 뛰었다.

그 집의 문이 쾅, 하고 닫혔을 때, 난 분명히 들었다.


하하하하하, 히히히히히, 하는 수정이와 주희의 날카로운 웃음소리를. 

그렇게 나는 다시 홀로 남았다. 뭐, 그래도 아주머니의 껌 씹는 소리를 듣지 않아서 조금은 위로가 된다. 하지만 이때 수정이에게 받은 상처는 지금도 가끔 생각하면 아프다.


나는 그날 이후, 밤마다 오줌을 싸는 횟수가 점점 더 늘어났다. 나는 늘 불안감에 시달렸다.

무서움과 혼란스러움과 그 누구와 친해질 수 없을 거라는 확신과 바보 같은 내 모습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다. 불을 끈 체 눈을 감으면 검은 눈 속에서 무엇인가가 나를 괴롭혔다. 

그때는 그 악몽이 수면마비, 흔한 가위에 눌리는 증상이었는지, 어떤 공포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른 아이들처럼 뛰어놀다 지쳐 꿈도 없이 잠들어야 하는 때에 난, 밤마다 가위에 눌렸고 숨 한 번 마음대로 쉴 수 없는 나날을 보냈다. 

성인이 된 후, 알았다. 그것이 몹쓸 수면마비 증상이라는 것을. 


그때 또 다른 내가 곁에서 쓸쓸하거나 두려워하거나 눈물을 훌쩍거리는 나를 발견했다면 꼭 안아 주었을 것이다. 난 무척이나 그게 필요했다.


어린 나의 뇌가 생각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홀로 다니는 학교와, 홀로 다니는 화장실도 모두 거뜬히 할 수 있어야만 했다. 이제는 그게 어렵지 않을 만큼 익숙해지는 연습을 해야 했다. 

그중 가장 어려운 건 아주 가끔 내게 말을 걸어오는 친구에게 뭐라고 얘기를 해야 하는 건지,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한 번은 노래를 아주 잘 부르는 친구가 나의 짝이 되었고, 그 친구는 다른 아이들처럼 나를 놀리지도 않고 짓궂게 굴지도 않았다.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그 친구를 내 곁에 두고 싶었고 다시 또 홀로 학교생활을 하는 멍청이로 뒤돌아 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거짓말은 내게 하나의 친구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 되고 있었다.


그때 한창 유행이던 방방 놀이기구는 빨리 뛰어가서 자리를 맡는 사람이 최고 좋은 자리를 맡을 수 있었다. 내 짝은 방과 후, 그것을 같이 타러 가자는 제안을 했다. 나는 너무 놀라 우선 주머니 속의 동전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리는 아주 좋은 자리를 맡을 수 있었고 방방을 타는 내내 짝은 숨도 차지 않은지 끊임없이 말하기 시작했다. 짝이 하는 말의 핵심은 가족이 대부분 미국에 산다는 것과 오늘 방방을 탈 수 있는 건 자신의 삼촌이 미국에서 돌아와 용돈을 주고 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방방을 타고도 돈이 많이 남으니 나를 위해, 띠기(달고나)를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갑자기 친절을 베푸는 이 아이가 난 이해되지 않았지만 난 띠기까지 아주 맛있게 잘 얻어먹었다. 


나는 다음 날도 짝과 함께 방방을 탔다.

물론 그때도 난, 용돈이 많은 짝 덕에 공짜로 방방을 탔고 띠기도 공짜로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

며칠 후, 혼자였던 내 짝에게 친구들이 몰려들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나도 얼떨결에 그 아이들과 섞여 또다시 방방을 타고 띠기를 먹었다.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또 다음날도 말이다. 그렇게 난 조금은 보통의 생활에 적응을 하기 시작했다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공짜로 방방을 타고 공짜로 떡볶이를 먹고, 공짜로 띠기를 먹고, 뽑기를 공짜로 하는 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왜냐면 나뿐 아니라 그것은 모든 아이에게 굉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난 내 짝의 옆자리에서 밀려나 이등에서 삼등, 사등에서 꼴등, 그렇게 다시 또 속하지 못한 외톨이로 돌아오게 되었다. 왜 아이들은 의리 또는 우정이라는 게 이렇게 진득하지 못한 걸까? 

난 아직도 나의 단짝 수정이를 잊지 못해, 가슴이 이렇게 시린데 말이다.


아, 하느님, 정말 그 위에서 저를 지켜보고 계신 것이 맞나요? 사실인가요?

나는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 가족은 성당을 다녔다. 난 정말 기도를 열심히 했다. 난 용기가 있는 아이가 되고 싶다고 정말 미친 듯 기도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하느님은 내게 용기를 선물해 주지 않았다. 난 스스로 이 거지 같은 학교 붉은 성에서 살아남아야만 했다. 난 그렇게 좀 더 치열해지고 좀 더 사악해지고 있었다. 아무도 모르게.

그리고 난 굳건하고 도전적인 결심을 했다.


난 나의 짝이 그랬던 것처럼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우리 집은 언니 우정을 제외하고 용돈이란 것은 정해져 있지 않다. 내가 만약 엄마라면 자식이 걱정되는 마음에 용돈을 풍부하게 줬을 것 같다. 

엄마의 그 걱정은 늘 언니, 우정이만 해당하는 일이다. 아니면 아빠가 몰래 우정이의 손에 쥐어 줬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가 돈을 모으는 방법처럼 비신사적이고 비양심적인 태도로 임했을 것이다. 


용돈이란 건, 그때그때, 필요할 때마다 엄마에게 말해야 하는 상황이고 난 돈이 필요할 때마다 꽤 긴 시간 동안 고뇌에 빠져야만 했다. 이미 돈이란 건, 내가 친구를 만들 수 있는 유용한 방법이기 때문에 나는 조금 더 지나치게 또는 예의 없이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미 나는 자본주의의 씁쓸한 맛을 이때부터 맛보고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내게 그나마 쉬운 선택이었던 급식비였다. 두 시간의 수업이 끝나면 급식 우유를 신청한 아이들의 한에서 우유를 나누어준다. 난 죽도록 싫어하는 우유를 먹지 않아도 되고 엄마가 주는 급식비를 살뜰하게 모을 수도 있었다. 


간혹 할아버지를 밖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누군지는 모르지만, 할아버지의 친구? 분이 내게 용돈을 주기도 했다. 보라색 지폐는 언제 봐도 반갑다. 


돈은 친구도 살 수 있다? 

예전의 짝과 그런 방식으로 친구가 되었던 것처럼 나는 이 방법을 굳게 믿었다. 

그 짝은 아직도 그렇게 친구들이 곁에 있었고 나는 그 방법을 믿고 따라 하기 시작했다.


교실에서 짝은 두 주에 한 번씩 바뀐다. 바뀌는 건 선생 마음이다. 이번에는 짝수 번호대로 짝을 이루었다. 친구가 많아진 나의 짝은, 이제 나와는 이별이다.


짝은 마치 철새처럼 내 곁을 훨훨 날아갔다. 


난 새로운 짝을 맞이했고 그 아이의 이름은 영주,라는 아이로 굉장히 밝은 웃음을 짓는 아이다. 나는 아직도 영주라는 이름과 지명을 들으면 주황색을 먼저 떠올린다. 

주황색 티셔츠를 입은 빛나는 영주.


이 아이를 만났다는 건, 내가 수정이와 단짝이 됐을 때 보다, 처음 엄마가 사 준 수영복을 입었을 때 보다, 내가 오줌을 싸지 않고 맞이하는 아침 보다, 더 찬란하고 고귀했다. 


영주는 주황색 티셔츠를 자주 입었다. 

그리고 영주의 머리카락은 아주 길었고 정수리까지 질끈, 포니테일로 묶어 올렸다. 묶어 올린 머리카락은 영주의 어깨에 부딪혀 달랑거렸다. 늘 웃기를 잘하는 영주는 한 번 웃음을 지을 때마다 눈이 굽어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다. 마치 새우 등처럼 웃음은 내게 전염되었다. 

영주가 웃을 때마다 너무 반짝여서 환한 달빛도 영주를 부러워하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나를 보며 웃기만 하는 이 친구를 나는 꼭, 방방을 태워주고, 띠기를 만들어 먹게 하고, 떡볶이도 사 줄 것이다,라고 고사리를 불끈 쥐고 하늘을 보며 굳게 다짐했다.


이제 그날이 찾아왔다. 

열심히 모은 나의 돈이 욕심쟁이 방방 주인장의 손에 쥐어질 날이 왔다. 난 그 철새 짝이 내게 말을 걸었을 때처럼, 영주에게 방과 후 방방을 타러 가자고 말했다. 영주는 흔쾌히 새우등처럼 눈을 구부리며 응했고, 난 정말 역대급으로 엄청난 웃음소리를 내며 놀았다. 속셈 학원에 늦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고 엄마의 서슬 푸른 빗자루도 무섭지 않았다. 


그렇게 난, 예전의 내 짝처럼 똑같은 말과 행동을 했다.

짝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짝이 했던 말을 내가 그대로 영주에게 한다는 건, 그건 거짓말이 아니지 않은가, 이상한 논리인 건 알고 있다. 그래서 난 하느님에게 늘 기도 했다. 하지만 들어주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하느님도 양심은 있어야 한다. 


나의 열 번의 기도에 한 번의 기회도 주지 않는다는 건, 나의 거짓말은 정당하다고,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난 거짓말을 하고 또 하고, 또 거짓말을 했다. 나의 친척은 미국에서 살고 삼촌이 미국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된다. 나의 삼촌이 준 용돈으로 내일도 모레도 우리는 방방을 타고 떡볶이를 먹을 거다,라고 말이다. 

나의 거짓말을 들은 영주는 거짓말인지도 모르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맙소사, 나의 엄마와 아빠와 마귀 같은 우정이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나는 정말 이 집에서 아예 쫓겨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막 친해진 빛나는 영주를 갖게 된 지금, 난 결코 거짓말을 멈추지 않을 작정이다.


공부를 잘하는 영주는 수업 시간에도 발표를 제일 많이 하는 친구다. 나는 그런 친구가 나의 단짝이란 것이 너무 자랑스러워 어찌할 바, 모를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 하느님 다른 기도는 이제 들어주지 않아도 되니, 영주와 함께 오랫동안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고 나는 오늘도 무릎 꿇고 기도했다.


나는 방학이 싫을 만큼 영주가 좋았다. 

방학이 되면 영주를 보는 건 어렵다. 영주의 집과 내 집은 아무리 많이 걷는 다 해도 다다를 수가 없었다. 영주의 집은 너무 멀었고, 버스도 잘 다니지 않아 영주의 아빠는 차로 늘 영주를 학교에 데리고 온다.

방학은 영주를 보지 못하는 나날이니 다시 나의 불행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린 편지를 했고, 끊이지 않은 얘기들을 글로 적고 또 적었다. 영주를 알게 된 이후부터 나는 주황색을 좋아하게 되었다. 이것은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나의 반사적인 반응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주황색을 좋아한다.


영주의 부모님은 농사를 짓는다. 농사라는 단어가 생소하긴 하지만, 영주가 글로 적어 보낸 농사 이야기는 꽤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되어 방학 내내 나의 귀와 눈과 머릿속을 즐겁게 해 주었다. 

    

『왕눈이 우재에게

우재야, 편지 잘, 받았어

방학이 끝나려면 아직도 멀었네? 

보고 싶다 우재야

오늘은 아빠랑 함께 고추를 땄어, 세상에 너 그거 알아? 고추를 먹는 벌레도 있더라?

그 매운 고추를 먹는 벌레라니, 대단하지 않아?

아주 성질이 못됐을 거야 하하

벌레가 있다고 아빠에게 말했다면 아마 걘 살아남지 못했을 거야

나는 벌레가 고추를 냠냠, 먹고 있길래 몰래 그 고추를 따서 아빠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숨겨 놓았어

아빠에게 들켜 죽을 때 죽더라도 고추를 먹고 배라도 부를 수 있게』     



영주는 보이지도 않은 독종 고추 벌레 하나까지 귀하게 여겼던 아이다. 

난 맵지 않은 고추를 먹을 때마다 고추 벌레를 확인한다. 아직 단 한 번도 고추 벌레라는 것을 본 적은 없지만 만약 그것을 발견하게 된다면 나도 영주처럼 사람이 보지 않는 곳에 고이 숨겨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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