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극우화와 정치적 오염

by 강유선


5장. 교회의 극우화와 정치적 오염


한국 교회를 오랫동안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낍니다. “교회는 왜 이렇게 정치적일까?” “왜 교회는 특정 정당, 특정 정치성향을 거의 신앙처럼 여길까?” “왜 교회는 ‘진리’를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정치적 언어를 반복할까?”


이 질문은 단순히 불편함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지금 한국 교회가 처해 있는 가장 위험한 지점— **정치적 오염(political contamination)**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질문입니다.


한국 교회는 오랫동안 정치적 우파, 보수 정당, 반공주의, 미국식 보수 기독교와 깊이 결합해왔습니다. 이 결합은 단순히 정치적 입장 차이가 아니라 교리, 신앙, 세계관까지 깊게 침투해 ‘기독교 = 우파’라는 허구적 등식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장에서는 왜 교회가 극우화되었는지, 왜 그것이 심각한 문제인지, 그리고 왜 지금이라도 방향을 바꿔야 하는지를 다룰 것입니다.



� 1. 교회의 극우화는 ‘신앙적 확신’이 아니라 ‘역사적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먼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한국 교회가 극우화된 것은 성경 때문이 아닙니다.


극우화의 뿌리는 신학이 아니라 역사적·정치적 사건입니다.


✔ 1) 한국전쟁


한국전쟁 이후 “공산주의=악, 반공=신앙”이라는 등식이 교회에 자리 잡았습니다. 공산주의의 무신론적 성격 때문에 기독교가 반공주의를 받아들인 것은 부분적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문제는 이것이 전체 신앙의 정체성처럼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 2) 미국 보수 기독교의 직접적 영향


1970~80년대 미국의 보수 개신교(특히 복음주의·근본주의)는 공화당·반공·자본주의·총기권·반동성애 운동과 결합하며 정치적 운동으로 변화했습니다.


그리고 한국 교회는 이 사상을 거의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문제는 미국의 정치 상황과 한국의 역사·사회·문화가 전혀 다른데도 “기독교=보수”라는 틀을 무비판적으로 수입했다는 점입니다.


✔ 3) 독재 정권과의 결탁


한국의 일부 교회는 군사정권과 직접적으로 결탁하며 “반공”과 “질서”라는 명목으로 권력을 지지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 보수=기독교적 가치”라는 허구적 신앙이 만들어졌습니다.



요약하면,


� 한국 교회의 극우화는 성경이 아니라 역사와 정치의 산물이다.



� 2. 성경은 보수가 아니다 — 오히려 약자를 보호하고 권력을 경계하는 책이다


교회는 “보수적 가치가 성경적 가치”라고 말하지만 사실 성경은 그 반대에 가깝습니다.


• 억울한 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라 • 고아와 과부를 돌보라 • 이방인을 차별하지 말라


• 부한 자는 겸손하고 가난한 자는 위로받아야 한다


• 예수님은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셨다



성경의 가치관은 지금 보수 기독교가 말하는 가치관과 거의 정반대입니다.


성경은 권력을 경계하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약자의 편에 서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돈과 명예보다 정의를 말합니다.


그런데 한국 보수 기독교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습니다.


• 권력과 결탁하고 • 강자의 논리를 따라가며 • 사회적 약자를 비난하고


• 경제적 불평등을 축복의 증거로 해석하는


이런 왜곡된 신앙은 결코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 3. 교회는 왜 진보를 ‘악’으로 규정하는가?


여기에는 세 가지 구조적 이유가 있습니다.


✔ 1) 사회주의·진보에 대한 무지


교회는 “사회주의 = 공산주의”, “공산주의 = 무신론”, “무신론 = 사탄” 이런 도식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는 매우 무지한 해석입니다.


사회주의는 경제적 불평등을 해결하려는 정치철학이며, 성경의 약자 보호 원리와 오히려 맞닿아 있습니다.


사회주의의 원형에는 **“착취 없는 경제”**라는 도덕적 목표가 있습니다. '착취'라는 개념은 사실 윤리적 개념이 아니라, 기능적 개념이며, 이것은 자본주의에서 필연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르크스는 이 착취로 인한 잉여생산물을 다시 노동자에게 돌려주는 구조를 만들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약자를 사랑하고, 정의와 평등을 말하는 성경적 세계관과도 정확히 일치하는 것입니다.


즉, 성경의 경제관과 사회주의는 많은 부분에서 공통점을 갖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공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알지 못하니까 무서운 것입니다.


✔ 2) 변화에 대한 공포


진보적 가치가 들어오면 기존 권력이 흔들린다고 생각합니다. 기성세대의 가치관도 흔들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진보를 악마화하며 자기 안정을 유지합니다.


실은 변화해도 괜찮고, 흔들려도 괜찮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리가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불안한 마음이 흔들리는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보수에만 있지 않습니다. 진보에 있는 하나님의 진리가 교회에 들어온다고 해서 하나님의 진리가 흔들릴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대단한 착각입니다.


✔ 3) 보수 정치와의 결탁


정치적 이익을 위해 보수 정치세력과 손을 잡고 이를 신앙의 문제인 것처럼 포장해왔습니다.


그 결과,


진보를 비판하는 것이 신앙의 수호처럼 보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정치적 프레임일 뿐입니다.



� 4. 교회의 극우화는 복음을 오염시키는 심각한 문제다


극우화된 교회에서는 이런 현상이 나타납니다.


• 사랑보다 ‘적대감’이 강화되고 • 이해보다 ‘혐오’가 강화되고 • 지혜보다 ‘분열’이 강화되고


• 복음보다 ‘정치 사상’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됩니다.


그러면 복음은 사라지고 정치적 언어만 남습니다.


이런 교회에서 자라는 청년들은 복음이 아니라 “이념적 기독교”를 배우게 되고 교회는 더 이상 영적 공동체가 아니라 정치 운동장이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결국 사람들은 떠나버립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정치 운동을 하러 교회에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5. 교회가 극우화될 때 잃어버리는 것들


✔ 복음의 빛


정치적 혐오와 분노에 덮여 예수님의 사랑이 완전히 사라집니다.


✔ 다음 세대


극우화된 교회는 2030에게 ‘가장 가고 싶지 않은 공간’이 됩니다.


✔ 사회적 신뢰


교회는 사회에서 “불신”의 상징이 되었고 세상은 교회를 더 이상 도덕적 공동체로 보지 않습니다.


✔ 성경적 균형


성경의 핵심(정의·사랑·겸손·평등)을 잃고 봉헌·순종·권위·적대의 언어만 강조하게 됩니다.



� 6. 어째서 진보는 괜찮고 보수는 안되는 것처럼 말하는가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 진보는 좋고, 보수는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 지금 현재 교회가 보수에 치우쳐져 있기 때문에 진보를 말하는 것입니다.


• 극우든, 극좌든, 극단적인 것은 절대 하나님의 것이 아닙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마치 극단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신약의 하나님은 극단적인 분이 아니십니다. 지금 당장 당신이 불교 신전에 가서 빨간 락카로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고 낙서를 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 만약 교회가 극좌화 되었다면 저는 진보주의와 극좌화를 비판했을 것입니다.


즉, 현재로서는 교회가 보수화 되고, 극우화 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 7. 극우화된 교회가 회복되는 길은 단 하나 — 사랑 중심의 복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정치적 보수나 진보는 복음에 영향을 줄 수 있지만 복음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정치적 이념을 따르라고 부르신 게 아니라 사람을 사랑하라고 부르셨습니다.


극우화된 교회의 유일한 해답은 이것입니다:


정치가 아니라 사랑의 자리로 돌아가기이념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을 중심에 두기적대가 아니라 이해와 대화를 선택하기


복음은 이념이 아닙니다. 복음은 사랑입니다. 정치는 사람을 나누지만 예수님은 사람을 하나로 묶습니다.



5장 핵심 메시지 요약


• 교회의 극우화는 신학이 아니라 역사·정치·반공의 산물이다.


• 한국 교회는 미국식 보수 기독교와 독재 정권의 영향으로 정치화되었다.


• 성경은 보수보다 ‘약자 보호, 정의, 변혁’이라는 진보적 요소가 강하다.


• 교회는 진보를 악마화하지만 이는 오해와 무지에서 비롯된다.


• 극우화는 교회를 혐오·적대·분열의 공동체로 만들고 젊은 세대를 잃게 한다.


• 교회의 회복은 정치적 보수가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겸손·지혜의 복음으로 돌아가는 것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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