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촌
淸江一曲抱村流(청강일곡포촌류) 맑은 강 한 굽이 마을을 감싸고 흐르는데
長夏江村事事幽(장하강촌사사유) 기나긴 여름 강촌은 만사가 한가롭다
自去自來梁上燕(자거자래양상연) 제비는 마음대로 처마를 들고나고
相親相近水中鷗(상친상근수중구) 수중의 갈매기는 가까이 가도 날아갈 줄 모른다
老妻畵紙爲棋局(노처화지위기국) 늙은 아내는 종이에 바둑판을 그리고
稚子敲針作釣鉤(치자고침작조구) 어린 아들은 바늘을 두드려 낚싯바늘을 만드는구나
多病所須唯藥物(다병소수유약물) 다병한 몸에 필요한 것이란 오직 약물뿐
微軀此外更何求(미구차외갱하구) 미천한 이내 몸이 달리 또 무엇을 바라리오
어릴 적 국어 시간에 배웠던 두보의 시가 기억납니다.
시에서 시인이 노래한 늙은 아내가 종이에 바둑판을 그린다는 내용이 왠지 마음에 와 닿습니다.
또 병이 많아 약을 필요로 하는 자신을 한탄하는 모습이 가슴을 울립니다.
두보가 아직 50도 되기 전 성도에 머물 때 지은 시라 합니다.
이리 저리 귀양을 떠나 고향을 노래하는 두보의 시가 유달리 많은 것은
그가 부초처럼 정처없이 고향을 떠나 살아간 고단한 삶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시는 여름철 풍광을 노래하지만
도리어 전체 분위기는 저물어 가는 가을에 더 어울리는 듯 합니다.
늙은 아내와 여러 병에 시달리는 시인의 모습이 인생의 계절 가을을 노래하는 듯합니다.
두모의 따스한 눈길은 늙어 가는 아내의 주름진 손에 다가갑니다.
예쁘고 윤기 넘쳤던 젊은 시대의 손이 어느듯 쪼글 쪼글 주림이 생기고 가느다랗게 떨리기도 한 모양입니다.
요즘 우리 집 아내는 늙어 가는 남편과 손자들을 위해 음식 만드는 일에 열중합니다.
음식 만드는 TV 프로그램을 열심히 시청합니다. 차승원과 유해진의 삼시세끼도 보고
또 연예인들이 나와 음식 만드는 프로를 재미있게 시청합니다.
그리고 쿠팡이 불이 납니다. 잔뜩 주문한 식재료가 딩동 새벽에 도착합니다.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내게 시식하라고 합니다.
가정의 화평을 위해 연신 맛있다고 하며 먹어 줍니다. 몸은 점점 더 불어납니다.
한번은 만들어 준 음식을 먹으며 먹을 만 하네라고 해서 혼이 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자란 지방에서는 먹을만 하다는 말은 맛있다는 말과 비슷하게 쓰이는데
아내는 그게 맛이 없다고 이해한 모양입니다.
연신 그렇지 않고 맛있다는 표현이라고 변명하느라 땀을 흘립니다.
한 바탕 소동이 지난 후 아내는 방 안에 뒹굴고 있는 나를 향해 함께 산책나가자고 채근합니다.
어떻습니까? 이런 저의 모습이 혹 우리 은퇴자들 모습은 아닌가요?
여러 가지 보조식품을 복용해야 하고 기억력도 과거 같지 않고
외출하려면 꼭 집에 다시 돌아와 놓고 간 물건을 다시 챙겨야 하고..
한때 친구들과 여행하던 중 식사가 끝나면 우르르 약병을 꺼내 약을 챙겨 먹던
모습이 얼마나 우습든지..
늙어가는 아내와 함께 약해지는 몸을 붙잡고 힘든 시기를 보내는 우리 세대들.
허나 어떡하겠습니까? 이것이 우리가 받아야 할 숙명이라면
그러나 함께 이 길을 걸어가는 동료들이 있다면
함께 손에 손잡고 나아가는 용기를 가지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모두 힘차게..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