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으로 진실할 것

2024.11.21, 인표와 글쓰기 모임 시즌 13, 3회차

by 인표

심 선생님께 죄송하다고 한 번 더 말하고 싶다. 정글고등학교라는 웹툰이 있었다. 목동에 있는 특목고 입시 대비 학원에 가는 날, 그 웹툰 한 화를 봤다. 좋다고 소문난 그 학원들은 잘하는 애들을 데려다가 가르치니 좋은 성과가 나오는 게 당연하다는 내용이었다. 학원에 가서 지구과학을 가르치는 심 선생님 수업을 들으며, 선생님과 놀다가 그 말을 어미들만 바꿔서 읊었다. 심 선생님은 화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논리 회로를 채 구성하기도 전에 내가 잘못했다는 걸 느꼈다. 그 말은 내 말이 아니었다. 나와 심 선생님 간의 관계였는데, 그것과 겉모습이 닮았다는 이유로 정글고등학교의 말을 뱉었다. 더 오랫동안, 많은 것들을 배운 선생님들이 많았지만, 나는 그 후로 스승의날마다 심 선생님을 떠올렸다. 대기과학과 석사 과정을 할 때까지 말이다. 선생님께 지구과학을 배웠고, 지금 대기과학 석사과정을 하고 있어요. 선생님이 잘 가르쳐주신 덕분이에요. 그런 고맙다는 말로만 이루어진 사과를 보낼까 고민하다가 용기가 없어서 보내지 못했다.


대학원을 그만두면서 주변에 그렇게 말하고 다녔다. 단편소설집을 독립출판하면서 대학원을 그만둘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러나 책을 쓰려고 대학원을 그만둔 건 아니에요. 글을 쓰며 먹고 살 생각으로 그만둔 것도 아니에요. 글에 대한 재능이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재능이 있어도 먹고 살기 힘든 판이라는 것까지 저는 이미 알고 있어요. 진짜 그랬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작가가 되고 싶어서 지금 방황을 선택한 것이 아니고, 글을 쓰고 싶어서 방황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당장 전문연만 끝나면 학원 강사를 시도해볼 예정이다. 리트도 한 번 봐볼까. 신기한 스타트업 공고도 찾아보고, 여행도 가봐야지. 넷플연가 일자리 같은 것들도 올라온다는데 한 번 경험해 보고 싶었다. 그러니까, 그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두 번째 책 <칼을 구부리는 일>을 내고 나서 첫 번째 책에 대해 자주 험담했다. 솔직히 글이나 책의 완성도는 두 번째 책 <칼을 구부리는 일>이 더 높은데, 첫 번째 책을 더 좋아한다고 말했다. 첫 번째 책이 더 전에 쓰여서 더 낮은 글솜씨로 쓰였다고 생각했다. 도요도 수민도 두 번째 책이 책의 완성도가 더 높다고 해줬다. 그러니까, 역시 틀린 말이 아니었다.

다음 소설은 독립출판으로 하지 않으려고. 나부터 독립서점에서는 독특한 경험과 형식의 에세이를 골라. 소설은 검증된 글쟁이들이 그렇게 많은데, 그 글쟁이들의 신작을 쫓아가기도 바빠. 다른 사람들도 그럴 것 같아. 나도 다음에는 어디 내보고 싶어. 내가 다음에 독립출판으로 소설을 내면, 그때는 그런 것들이 다 실패한 걸로 알아. 마지막은 조금 자조적인 웃음을 만들고 싶어 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내가 젠체 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기 위함이었다. 두번째 독립출판물로 펜싱 에세이를 진득하게 써서 내고 나서는 소설을 잘 써서 어디에 내보고 싶었다. 그 뒤로는 인표와 글쓰기 모임에서 좋은 소설이 될 단초를 글로 써내려고 했다. 그러니까, 남이 내줄만한 소설, 어딘가 입선을 할 만한 소설. 그 정도 좋은 소설의 단초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그러니까, 내가 이번 시즌과 저번 시즌에 반복해서 말했던 말, 심장을 파내서 글을 가져오겠다는 말은 진실되지 않았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실패했다. 심장을 꺼내서 팔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으니, 심장은 글에 담기지 않았다. 이번 글감은 고백이었다. 그동안 써오던 연작을 이어쓰기에는 이건 ‘충분히 좋은 소설’이 될 단초에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무게감이 있는 이 주제를 제대로 다뤄보면 어떨까. 그렇게 고백에 대해 생각했다. 고백은 무엇일까.


지난주 월요일에 책방에서 2021 젊은 작가상 수상집을 읽었다. 도요가 그렇게 말했다. 인표야 입선작들은 쩔어. 어디선가 입선했을 작가들 소설 보면 모든 작가가 그 정돈가 싶던데. 늘 쩌는 소설을 들고 오지는 않았어. 그 사람들도 입선작은 쩔어. 출판사가 이름값 없는 작가에게 글만 보고 책을 내준다는 말이잖아. 아, 나도 읽어봐야겠다. 그 대화가 떠올라서 그 책을 골랐다. 그래, 그런 기성작가들은 얼마나 잘 쓰는지 보자. 내가 아직 내보고 싶은 글 하나 완성하지 못한 그곳에는 어떤 쩌는 문장들이 있는지 보자. 참 불순한 자세로 책을 읽었다.

돌아보면, 그 속에서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원했다. ‘나도 써서 내볼만하겠다. 좀 더 잘 쓰면 되겠는데.’ 같은 희망을 발견하거나, ‘와, 나는 이 정도 글을 쓰는 건 힘들겠다.’ 같은 단념을 발견하거나. 네 글이 그 정도는 아니라고 누군가 말할 때, 나도 그 정도 꿈은 아니었다고 말할 생각이었다. 그랬던 것 같다.

당선작들을 읽고는 조금 쪽팔렸다. 당선작들이 소름 돋는 문장과 구성으로 채워져 있어서가 아니라, 잘 말하고 잘 쓰는 데에 집중하고 있는 소설들이어서 그랬다. 마지막에는 독립영화에 대한 소설이 있었다. 한국 영화 100주년을 맞았다는 시대적 배경에 따라 독립영화를 찍는 주인공이 같은 업계 친구들과 한탄하면서도 살아가는 내용이었다.

책이 팔리지 않았던 독립 출판 북페어가 떠올랐다. 한 명도 오지 않았던 페미니즘 학회 송도 오픈 세미나가 떠올랐다. 그리고 나도 그런 두 개를 엮어서 이런 소설을 써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생각을 하는 내가 싫었다.

퍼블리셔스 테이블이 그렇게 많이 팔린대. 어느 블로그에서는 몇십 권을 팔았는데 예상과 달라 아쉽다는 글이 올라왔대. 2024년에는 북페어가 성황이라는 소식도 책방 인스타그램이었나 독립출판하는 작가님 인스타그램이었나 어딘가에서 접했어. 정말 이번에는 많이 팔 수 있을까? 그렇게 속는 셈 치고 다시 나갔던 북페어에서는 잔뜩 속고 왔다. 사람들끼리 그래도 좋았다고 말하는 게 싫었다. 나는 3일 동안 더 생기를 잃어가는 맞은편 부스와 뒤편 부스 사람의 얼굴을 봤다. 그래서 나는 그래도 좋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같이 북페어를 나간 도요와 계속 말하면서, 부스를 찾아와준 책친구와 글친구들과 이야기하며 버텼다. 우리 책을 읽고 실망해서 안 사는 게 아니야. 전체 방문자의 구매 책 수를 부스 수로 나눴을 때 우리 정도 되는 것 같다. 행사가 실패한 거지, 우리가 실패한 게 아니고, 내가 실패한 게 아니고, 내 책과 내 글과 내 말이 실패한 게 아니야. 나는 중간쯤에 몇 권이 더 팔리면 주위 부스 책을 더 사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 몇 권이 더 팔리지 않아 주위 부스 책을 더 사지 않았다. 그래도 연이 있는 사람들이 행사장에 많아 그 연들을 잇고자 하는 마음 조금, 그 사람들이 내 책을 사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조금 더 많이 담아 내 인연들의 책을 샀다. 늘 그렇듯, 그런 페이백은 100프로를 채우지 못했다. 나는 내 책을 사러 오지 않은 인연들에 실망하는 나를 봤다. 북페어는 어떻게 손님들을 유치할지 고민하는 게 셀러들에게 친화적인 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페미니즘 학회 오픈세미나를 몇 번 해봤다. 내가 대화하고 싶은 사람들을 끌고 오는 데에 최선을 다했다. 많은 참가자가 있었던 적도, 정말 내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참가자가 있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마음속에 먼저 떠오르는 건 아무도 오지 않은 송도 캠퍼스에서의 영화 프로그램이었다. 미디어감상실이었나. 서른 개쯤 되는 좌석이 있는 언더우드 기념 도서관의 영화관에서 우리 학회 사람들끼리 영화를 봤다.

독립책방에서 일일 책방지기를 모집한다는 공지를 읽고 퇴근하고 나서 반나절 간 일일 책방지기를 본 적이 있다. 그날 나는 아무 손님도 받지 못했다.

그러니까, 쓰는 것만큼 많이 읽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글을 쓰는 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는 거야.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나는 결국 그것도 글을 쓰는 순간 작가라는 독자가 생기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읽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그걸 어떻게 구할지 고민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입선을 할 만한 글을 쓰고 싶었다.


고백에 대해 생각했다. 고백이란 무엇일까. 내가 고백에서 뽑아오고 싶었던 특성은 고백은 결국 적극적으로 진실하려는 행위라는 것. 그래서 고백에 대한 소설을 새로 쓸 수 없었다. 독립 출판과 오픈세미나를 엮어서 소설을 쓸 수 없었다. 무슨 어딘가 낼 만한 소설의 단초를 만들 수 없었다.

가장 최근 연애의 마지막에는 그런 물음이 있었다. 너는 나를 사랑하니? 나는 진실하고 싶어서 바로 답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충분히 시간을 갖고 답했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이런 것이고, 나는 지금 너에게 그런 마음을 느낀다고, 그래서 너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했다. 논리적이었으며, 틀리지 않았고, 진실하지 않았다.

헤어지는 자리에서는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었을지 몰라도 네가 생각하는 사랑이 아니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마지막까지 내게 진실하지 못했다. 사랑하냐는 질문에 더 적극적으로 진실할 수 있었다. 지금 다시 이야기하라고 하면 사랑하지 않고 있다고 대답했을 거라고.

적극적으로 진실하려면 틀리지 않음을 방패 삼아서는 안 된다. 표면에 섣불리 드러내는 것들을 모아서는 안 된다. 열심히 퇴고를 해야 한다. 그렇게 깎다가 도달한 심장을 바쳐야 했다. 애초에 심장을 쑥 파내는 일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나는 그렇게 적극적으로 진실한 것들을 좋아했다. 인글쓰를 좋아하는 이유가 그랬다. 무슨 글솜씨가 좋기로 소문난 대가들의 글을 읽는 게 아니라 내 친구들의 글을 읽는 이유가 그랬다. 무슨 한 문장으로만 글을 써와 봤다면서 형식을 장난쳐서 오는 글에는 실망하고 심장을 가져온 글에는 울었다.

나는 글을 쓰고 싶었고, 읽히고 싶었다. 나는 첫 번째 책을 충분히 사랑했다. 그때 그 페미니즘 오픈세미나에 더 많은 사람이 왔으면 했다. 누군가 내주는 글을 쓰고 싶었던 건 그래서였다. 입선 자체에 목적이 있지 않았다. 입선과 수상의 기준으로 글을 판단하는 건 내 진심도 진실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척을 했다. 그게 전부인 것처럼럼 냉소적으로 말했다. 그렇지, 그렇지하고 최근에도 그렇게 비열하게 글을 판단한 적이 있었다. 그러면 나도 그 당선과 입선이 얼마나 멀고 어려운 일인지 아는 사람인 것 같아 보여서. 무슨 이과계열 SF 단편선에 한 번 지원해 본 게 다 면서. 심지어 이 문장을 적기 전에, 그 한 번 공모전을 냈던 걸 까먹고 있었다. 떨어진 기억을 내 최선을 다한 글이 아니었다고 부정하고 잊고 있었다. 최근 모임에서 수민이 그거 좋다고 기억해줬었는데. <선인장에는 이파리가 있어>. 기다려주라. 글 실력을 조금 더 갈고닦아서 찾아갈게. 최소한 잊힌 채로 버리지는 않을게. 오래 걸릴 것 같긴 한다. 완성도 못 하고, 어디에 내지도 못한 SF <나는 아라>는 진짜 좀 오래 걸리겠다. 미리 미안하다. 그때 가서 결국 퇴고나 재창작을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것도 진짜 미안하다. 하지만 살려보려고 다시 찾아가기는 할게. 그대로 열어보지 않은 채로 구글 드라이브에 두지는 않을게.


고백이라는 주제를 받고, 고백이란 무엇일까 고민했다. 고백이라는 건 퇴고를 하는 일이다. 의식 표면으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고치고 고쳐서 진실이라고 믿는 걸 꺼내는 행위다. 정글고 발언 같은 것들은 쳐내고, 입선에 대한 냉소적인 추앙 같은 것들도 쳐내고, 진실한 것들에 대한 사랑 같은 것들을 남겨서.

오늘은 그렇게 인글쓰 글을 쓰고자 했다.



- 글 중 나오는 인글쓰는 <인표와 글쓰기 모임>의 줄임말입니다.

- <칼을 구부리는 일>은 2024년에 독립출판한 펜싱 에세이입니다. 아직 여러 독립책방에서 구매 가능합니다.

https://linktr.ee/binpyo

- 쓴 글 중 가장 잘 썼다고 생각하는,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면 다시 꺼내 읽어보곤 하는 글을 브런치 첫 글로 가져왔습니다. "적극적으로 진실할 것" 브런치 북에는 적극적으로 진실했던 글들을 모아보려고 합니다. 제 다른 브런치북에 비해 비정기적으로, 뜸하게 연재됩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