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감정을 많이 억압한 경우에
아이가 그 에너지를 대신 분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이는 엄마와 상호작용하며 보내는 시간동안
엄마의 희노애락 피드백을 통해서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사회적으로 조율하며 어울려가는 것을 배운다.
이런 말투는 기분 나빠하는 구나.
이런 행동을 하니 좋아하는 구나.
하지만 감정이 억압된 사람은 고장난 피아노 같다.
'도'라는 건반을 눌러도 아무소리도 안나다가
'파' 건반을 눌렀을 때 '삑!' 소리가 난다.
어떤 피아노는 무슨 건반을 눌러도 같은 소리만 나기도 한다.
(우리는 같은 소리만 내기를 강요당한 피아노니까)
그러면 피아노를 치는 사람은
피아노로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는 것을 시도하기보다
도대체 이 피아노는 어떤 피아노인지 알기 위해서
이것저것 마구 눌러보기를 시도할 것이다.
그 거침없는 모습은 무의식에서 억압된 부모를 대리만족시켜준다.
부모는 어린시절 감정을 억압하며 고통을 느꼈기에
아이에게는 같은 상처를 주지 않고 싶어서 참는다.
그래서 참다 참다 아주 가끔 터진다.
그런데 오히려 아이는 경계를 모르는 아이로 자란다.
아이를 너무 억압해서
타인의 눈치를 보게 키우면 안되겠지만
부모 자신이 스스로를 너무 억압해도
아이는 평범한 사회적인 관계를 배우기가 어렵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에
함께 어울려서 잘 지내는 기술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다.
사회성이라는 바탕 위에
자신의 신념을 유지할지 상황에 따를지
선택할 수 있으면 그건 눈치보는게 아니다.
꺼낼 카드를 많이 가진 사람이라 삶이 편해진다.
그래서 부모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감정에 자유로워지면 좋다.
희노애락이라는 인간적이고 다채로운 선율을 들려줄 수 있으면 좋다.
인간이라서 좋다.
사회를 이뤄서 어울려 사니 좋은거고
조율하며 서로 맞춰가는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은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