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잘하는 교사가 교장이 되면 어떨까요?
학교에서 교장의 힘은 실로 막강하다. 교장이 마음만 먹으면 못 할 일이 없고 교장이 안 된다고 하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부장 교사 회의나 전 직원회의에서 치열한 논의 끝에 결정한 일도 교장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손바닥 뒤집 듯 뒤집어 버릴 수 있다.
교장의 권력은 견제받지 않는다. 학교에는 교장의 힘을 제어할 그 어떤 장치도 존재하지 않는다. 교장이 합리적인 인물이라면 걱정할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꼭 그래야 할 의무는 없지만 학교 구성원들의 의견을 충분히 고려하여 결정을 내릴 테니 말이다.
그렇지만 모든 교장이 합리적일 리 없지 않은가. 자신만이 옳다고 여기는, 고집불통의 교장을 수도 없이 보았다. 또 교장이 되기 전에는 사리분별이 분명하고 사람 좋다는 평가를 받던 사람이 교장이 되고 나서 확 달라지는 경우도 제법 흔하다.
주변 사람들이 승진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모습을 보며 늘 의아했던 점이 있었다. 교사가 승진하는 데 왜 수업 역량이 절대적인 요소로 작용하지 않는가 하는 점이었다. 교사는 말 그대로 '가르치는 사람'이다. 잘 가르치는 교사가 뛰어난 교사이고 뛰어난 교사가 승진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교사 승진 체계에 수업 역량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승진을 준비하는 교사 중에서 어떻게 해야 수업을 잘할지 고민하는 교사를 본 적이 없다. 내가 아는 한, 어떻게 해야 수업을 잘할지를 고민하는 교사들은 이미 승진을 포기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교사의 가장 핵심 역량인 '수업 역량'이 교사의 승진에 절대적인 요소로 작용하지 않으니 수업 역량이 그렇게 뛰어나지 않더라도 승진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교감, 교장이 된 사람들은 교사들의 수업 역량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다. 그런 교감, 교장과 같이 근무하는 교사들도 수업 역량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다. 악순환이다.
이런 형편이다 보니 30년 넘게 지방 소도시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하면서, '수업'을 강조하는 교장을 만난 적은 없었다. 수업과 관련하여 교장이 하는 일이라곤, 수업 중 복도를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는 것뿐이었다. 어떤 교장이 사석에서, 교장이 복도를 부지런히 돌아다니면 모든 게 만사형통이라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그 교장의 별명은 '이사도라'였다. 24시간 돌아다닌다고 해서……. 아무리 교장의 힘이 무소불위라고 한들, 단지 복도를 어슬렁거리는 것만으로 학교의 모든 일이 만사형통이 되겠는가? 더욱이 수업은 복도가 아니라 교실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는가 말이다.
내가 근무했던 지방 소도시 일반계 고등학교 학생 상당수가,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했다. 공부는 학원에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특히 상위권 학생일수록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비율이 높았다. 학교 수업의 질이 학원 수업의 질을 압도한다면 학생들이 그렇게 생각할 까닭이 없을 테니, 어떻게 해야 학교 수업의 질을 높일 수 있을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만 한다.
공부는 학원이 아니라 학교에서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학생들에게 심어주려면 학교 수업의 질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 학교 수업의 질을 단박에 높일 혁신적인 방법은 없겠지만 교사들의 머릿속에 '수업'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인식을 자리 잡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사들이 스스로 생각의 틀을 바꾸어 그런 생각을 장착하면 정말 좋겠지만 내 경험상 이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퇴직하기 전, 수업에 관한 고민을 나누는 모임을 해 보자는 제안을 몇 차례 한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비슷한 과정을 거치며 모임은 자연스레 무산되었다. 내가 전체 교사에게 모임 제안 메시지를 보내면 대개 20% 정도의 교사들이 참여 의사를 밝힌다. 1차 모임을 하면 그중 절반 정도가 모임에 참석한다. 2차 모임에 1차 모임의 절반이 참석한다. 3차 모임을 하면 거의 나오지 않는다. 4차 모임 장소의 문을 열면 참석자가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3차 모임에 개미 새끼 한 마리 없는 경우도 있었다.
하긴 보통의 사람이라면 어떤 강제성도, 어떤 보상도 없는 모임에 자신의 시간을 희생하며 빠지지 않고 나올 마음이 생기지 않으리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교사의 생각의 틀을 바꾸려면 수업 고민 나눔 모임이 활성화해야 한다. 서로의 수업 고민과 경험을 지속적으로 나눌 수 있다면 생각의 틀이 자연스레 바뀔 것이고 교사들이 수업을 가장 중요한 일로 생각한다면 학교 수업의 질이 높아지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내 경험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자발성에만 기대서는 수업 고민 나눔 모임이 결코 활성화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의 강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각 단위 학교에서 수업 고민 나눔 모임을 위한 강제력을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은 교장뿐이다. 단위 학교에서 교장의 힘은 매우 막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교장들이 수업에 그리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수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교장이라야 수업 고민 나눔 모임에 자신이 가진 힘을 동원하지 않겠는가. 수업을 잘하고 수업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사람이 교장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감, 교장 승진 체계를 지금 당장 뜯어고쳐야 한다.
수업 역량이 교감, 교장 승진 체계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가 되도록 승진 체계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말이다. 교감, 교장이 되기 위해서 수업 역량이 뛰어나야만 한다면, 승진을 준비하는 교사들은 수업을 잘하기 위해 일로매진할 게 아닌가. 학교마다 승진을 준비하는 교사들은 반드시 있게 마련이고, 그 교사들이 수업을 잘하기 위해 온 힘으로 노력한다면 그 노력이 다른 교사들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겠는가.
그런 사람들이 교장이 된 학교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아마도 그런 교장은 직원회의 석상에서 이렇게 말하리라. "여러 선생님들은 오로지 어떻게 하면 수업을 잘할지만 생각하십시오. 나머지는 제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라고.
30년 넘는 교직 생활 동안, 단 한 번도 보지도 듣지도 못한 새로운 유형의 교장이다. 우리나라 모든 학교에 이런 유형의 교장들이 부임하면 우리나라 학교 수업의 질은 말 그대로 괄목상대해지리라. 그렇게 되면 학생들이 학원으로 달려갈 필요도 없어지리라.
아, 그런데 이렇게 써 놓고 어제오늘 우리나라 교육 현실을 생각하니 암울한 생각만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학교에서는 여전히 수업 역량과는 그 어떤 관계고 없는 각종 승진 점수를 착착 쌓으며 승진을 준비하는 교사들이 있을 터이다. 또 교감, 교장 승진 체계를 손보려는 그 어떤 낌새도 보이지 않는다. 수업 고민 나눔 모임을 해 보려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아 가슴을 쥐어뜯어며 좌절하는 교사들의 모습도 보이는 듯하다.
"학교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라고 묻는다면 십중팔구는 '수업'이라고 답하지 않을까? 그런데 나는 왜 30년 넘는 교직 생활 동안, 단 한 번도 그런 분위기에서 생활하지 못했던 것일까? 왜 수업이 가장 중요하다고, 그러니 선생님들은 수업에만 온 힘을 기울이라고 이야기하는 교장을,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하고 퇴직한 것일까?
수업 잘하는 교사가 교장이 될 수 있도록 교감, 교장 승진 체계를 고친다고 산적한 우리나라의 교육 문제가 단박에 해결될 리는 없다. 우리나라 교육 문제 해결을 위한 첫발을 떼는 일에 불과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또 교감, 교장 승진 체계 고치기에만 매몰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뭐가 되었든, '수업'을 학교 교육의 가장 중심에 놓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교장의 막강한 힘을 생각해 보면, 수업 잘하는 교사가 승진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일은 '수업'을 학교 교육의 중심이 되게 하는 데 필수적 요소가 아닐까 한다. 수업 잘하는 교사가 교장이 되는, 내가 현직에 있을 때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학교가 우리나라 전역에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를 간절하게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