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로 보낸 한평생

어느 학종주의자의 고백

by 꿈강

30년 넘게 지방 소도의 공립 고등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했다.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나라 일반계 고등학교의 지상 목표가 무엇인지를. 그렇다. 학생들의 대학 진학이다. 학생들의 대학 진학률에 일희일비한다. 히 명문대 진학률에.


그러다 보니 고등학교 본연의 교육 목표는 나 몰라라 하고 대입 전형에 맞추어 학교가 춤을 춘다. 우리나라 대입 전형이 얼마나 자주 바뀌는가. 조금 과장하면 조변석개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대입 전형 중 고등학교 교육에 가장 큰 파장을 몰고 온 전형은 바로 학생부종합 전형이다. 줄여서 학종. 학생부종합 전형이 도입되었을 당시, 내가 근무했던 지방 소도시 일반계 고등학교들은 그야말로 혼돈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그전까지 그 고등학교들은 보충 수업과 야간 자율학습을 학생들에게 반강제하며 수능 점수 올리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된 내용을 대입의 주된 요소로 활용하겠다는 학생부종합 전형이란 괴물이 등장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학교생활기록부에 어떤 내용을 적어야 할지 잘 몰라서 교사들은 우왕좌왕했다. 한 발 앞서 학생부종합 전형에 대비해 온 수도권 고등학교들의 사례를 최대한 벤치 마킹하려고 해 보았지만, 그 학교들과는 학교 여건과 학생들의 수준이 다른지라 그 사례들을 적용하기엔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생활기록부에 수상 경력이 많으면 학종에 유리하다는 얘기가 들리면 학생들에게 상을 남발했다. 내 기억으로 절반이 넘는 학생들이 어떤 명목으로든 상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떤 학생이 참가하지도 않은 분야에서 상을 받았다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떠돌기도 했다.


독서가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담임교사들이 독서를 독려했다. 학생들이 책을 읽고 정해진 양식에 독후감을 작성해서 내면 그 독후감을 담임교사가 다시 요약해서 생활기록부에 기록해 주는 시스템이었다. 학생들은 엄청난 양의 독서를 하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엄청난 양의 독후감을 제출했다. 담임교사들이 학생들의 독후감을 검증할 시간은 없었다. 학생들의 독후감을 요약해서 생활기록부에 기록해 주는 것만으로도 담임교사들은 너무 숨이 가빴다. 학생들이 제출한 독후감이 인터넷에서 그대로 베낀 것인지, 누군가 대신 써 준 것인지 담임교사들이 알 도리는 없었다.


봉사활동도 중요하다고 했다. 학생들은 주말을 이용해 봉사활동을 해야 했다.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장소를 찾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아빠 찬스, 엄마 찬스, 이모 찬스에 옆집 아저씨 찬스까지 써야 했다. 그 어떤 찬스도 쓸 수 없는 학생들도 물론 있었다. 우리 반 학생 하나가 장애인 복지관에서 봉사활동을 했다며 확인서를 제출했다. 한 학기 동안 제법 많은 시간 동안 봉사활동을 했다. 봉사활동 내용란에는 '식사 도우미 활동 및 복지관 시설 청소 활동'이라고 적혀 있었다. 확인서에 적힌 봉사활동 시간과 내용 그대로 생활기록부에 기록했다. 나중에 그 학생과 이야기하다 알게 된 사실 하나. 그 학생은 장애인 복지관에서 식사 도우미 및 청소 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딱히 주어지는 일이 없어 함께 봉사활동을 간 친구와 배드민턴을 치다 돌아왔다고 했다. 담임교사가 이런 사실을 확인할 방법은 아예 없었다.


학생부종합 전형 도입 초기의 이야기이다. 지금 시점에서 생각해 보면 참 황당한 일이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할 틈도 없었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의 생활기록부를 빈틈없이 꽉꽉 채워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느라 다른 생각이 틈입할 여지가 없었다.


더욱 황당한 일은, 교과 활동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때 내가 근무했던 지방 소도시 일반계 고등학교의 상황은 대개 비슷했다. 학생부종합 전형에서 비교과 활동이 중요한 줄 알고 있었다. 그 결과 과목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과세특)에 '초롱한 눈망울로 수업에 집중함'과 같이 적는 교사도 있는 실정이었다.


시간이 좀 지나 2010년대 중후반에 접어들자, 학생부종합 전형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교과 활동의 중요성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학생부종합 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수업 시간에 무엇인가를 해야 했다.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무엇인가를 하게 하기 위해서는 수업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했다. 그때까지 해 오던, 교사 주도의 설명식 일제 수업하에서는 학생들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초롱한 눈망울로 수업에 집중'하는 것 이외에는.


그때 학생부종합 전형의 요구에 발맞추어 수업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만 했다. 그러나 내가 근무했던 지역의 고등학교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어떤 교사가 수업의 패러다임을 과감하게 학생 참여형 수업으로 바꾸었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으나 그것이 지역 학교 전체로 확산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세특은 충실하게 적어야 했다. 학생부종합 전형으로 학생들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서는. 학생들은 여전히 '초롱한 눈망울로 수업에 집중'했지만, 그렇게만 적을 수는 없었다. 학생부종합 전형으로 학생들을 명문 대학에 진학시켜야 하니까.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수업의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고도 과세특을 충실하게 적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했다. 인터넷에 각 과목별 우수 기록 사례가 차고 넘쳤다. 도교육청에서도 팔소매를 걷어붙였다. 각종 연수를 통해 과세특 기록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전국의 과세특 기록 우수 사례를 모아 책자를 만들어 교사들에게 제공했다. 그 당시 내가 근무했던 지역의 고등학교에서 서울의 상위권 대학으로 진학한 학생들 90% 이상은 학생부종합 전형을 통해 진학했다.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학생들을 학생부종합 전형으로 명문대에 진학시키고야 말겠다는 교사들의 지난한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고백건대, 나는 학종주의자이다. 학생부종합 전형이 우리나라 일반계 고등학교 교육을 살릴 수 있는 대입 전형 방법이라고 믿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과세특에 기록되는 교과 활동 내용을 중심으로 학생들을 선발하는 학생부종합 전형이야말로 우리나라 일반계 고등학교 교육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학종주의자로서 심히 걱정이 된다. 수업의 패러다임이 교사 주도의 설명식 일제 수업에서 학생 참여 수업으로 바뀌지 않으면 학생부종합 전형은 모래 위에 쌓은 성에 불과하다. 수업의 패러다임은 바뀌지 않은 채, 2010년대 중후반의 사례처럼 과세특을 기록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겠는가.


2024년 현재, 우리나라 일반계 고등학교의 수업 현실은 어떨까? 시간이 흐른 만큼, 2010년대 중후반에 비해 많이 나아졌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교실에서 학생 참여 수업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학생 참여 수업을 하라고 독려하고 권장하고는 있지만 실제로 학생 참여 수업을 하고 있는지를 검증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또 학생 참여 수업을 하는 경우라도 학생들의 수업 활동 내용을 과장 없이 과세특에 기록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역시 검증 체계가 미비하기 때문이다.


2024년 현재 학생부종합 전형은 대학 입시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학생부종합 전형은 우리나라 일반계 고등학교 교육을 정상화할 수 있는 전형 방법이다. 그러므로 학생부종합 전형이 내실 있게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나라 일반계 고등학교 교육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런 다음 학생들의 수업 활동 내용을 과장 없이 과세특에 기록하는지를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어떤 이들은 학생부종합 전형을 '깜깜이' 전형이라고 부른다. 대학에서 어떤 잣대로 학생을 선발하는지 도통 알 수 없다는 의미이다. 학생들을 공정하게 선발하는지 알 방법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심각한 학생부종합 전형의 문제점은, 학생부종합 전형의 핵심 전형 요소인 과목별 세부 능력 및 특기사항 기록이 부풀려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대학으로서는 생활기록부에 기재된 내용은 믿을 수밖에 없다. 생활기록부 기재 사항이 사실에 근거한, 부풀려지지 않은 기록이라는 전제하에 학생을 선발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기록이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기록이고, 또 부풀려진 기록이라면 학생부종합 전형의 존재 가치를 의심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교사들은 대오각성하여 한 치의 과장도 없이 과세특을 기록해야 하고 교육 당국은 그 기록의 타당성을 검증할 수 있는 체계를 지금 당장 만들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 대입 전형에서의 공정성을 논하는 것은 정말로, 정말로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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