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있는 어린아이의 얼굴을 보면 평화로움을 느끼기 마련이다. 딸네 집에 도착해서 손녀딸 방을 들여다보니, 손녀딸이 폭 잠들어 있다. 평화로움이 마음 가득 차 오른다. 곧 딸과 사위가 함께 출근길에 나서고 아내와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손녀딸이 깨기를 기다린다.
손녀딸 방에서 "엄마" 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내가 후다닥 달려가 손녀딸 옆에 누웠다. 좀 더 재우려는 심산인데, 손녀딸은 이미 잠이 확 깬 모양이다. 아내더러 아내의 어린 시절 얘기를 해 달란다. 아내가 손녀딸에게 이야기를 해 주는 소리가 들린다. 가끔 손녀딸이 아내에게 뭐라고 옹알거리는 소리도 들려온다. 이보다 더 듣기 좋은 소리는 아마 없을 듯하다.
얼마 후 발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손녀딸이 애착 인형 보노를 끌어안고 거실로 나온다. 얼른 가서 꼭 안고 소파로 데려왔다. 시계를 보니 7시 10분이다. 좀 더 잤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이제 어쩔 도리가 없다. 같이 놀아주며 어린이집에 준비를 할밖에.
요즈음은 등원 준비가 많이 수월해지기는 했다. 손녀딸이 예전보다 협조적인 태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오늘도, 약간 애를 먹이긴 했어도, 뭐 그런대로 그리 어렵지 않게 등원 준비를 마쳤다. 어린이집에 동행할 친구들을 챙겨 들고 집을 나섰다. 오늘은 애착 인형 보노, 인어 공주 인형, 뽀로로 친구 루피 인형과 패티 인형, 그리고 구슬 몇 개가 손녀딸과 함께 등원길에 오른다. 이 구슬 몇 개가, 나중에 그 사달을 낼지 그땐 아무도 몰랐다.
어린이집에 가기 전에 소아과에 들러야 했다. 아직 기침을 하고 콧물이 약간 있는 듯해서다. 소아과에 들러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손녀딸은 할머니와 루피와 패티와 인어 공주를 이용하여 하는 역할 놀이에 푹 빠져 있었다. 그러다가 손녀딸이 피카추 필통에서 구슬을 꺼낸다. 빨간 구슬과 주황 구슬이다. 갑자기 손녀딸이 "파란 구슬, 보라 구슬 없어."라며 울기 시작했다. 아내가 그 구슬들은 집에 있을 거라고 했더니, 당장 집으로 가자고 난리법석이다. 아내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달래 보려 했지만 별무신통이다. 아내가 자기 말을 들어줄 것 같지 않으니까, 손녀딸은 아내에게 저리 가라고 한다.
하는 수 없이, 약간 떨어져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내가 다가가 손녀딸을 안으며 달래기 시작했다. 그러나 쉽게 울음을 그칠 우리 손녀딸이 아니다. 계속 소리 내어 운다. 그런데 옆에서 진료를 기다리고 있던, 한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 하나가 "시끄러워!"라고 외친다. 손녀딸에게 위협이 될 만큼 큰 소리는 아니지만, 같은 말을 몇 번씩 반복한다. 그 아이에게 뭐라고 한 마디 하려다가 꾹 참았다. 다만 속으로 '참, 별꼴이 반쪽이다.'라는 생각을 하며, 다음에 혹시 어디에선가 만나면 아무도 몰래 꿀밤 한 대 먹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긴, 그 아이 아빠라는 사람이 더 문제였다. 아이가 그런 소리를 반복하면 그만하라고 주의를 주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못 들은 건지, 못 들은 체하는 건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는다. 참, 이래서야 되겠는가.
손녀딸을 안고 진료실 앞으로 갔다. 진료 차례가 되기도 했지만, 무턱대고 시끄럽다고 외쳐 대는 그 맹랑한 아이에게서 떨어지는 편이 나을 성싶었기 때문이다. 진료실 앞에서 손녀딸을 안고 이렇게 저렇게 달래니, 손녀딸의 울음이 점차 잦아들었다. 아내가 와서 손녀딸에게, "네가 할머니한테 짜증 내서 할머니는 집에 갈 거야."라며 병원 문을 나가는 시늉을 했더니 손녀딸이 "안 돼. 거기 있어."라고 한다. 할머니가 자기한테 가까이 오는 것도 싫지만, 아주 가버리는 것도 싫은 우리 손녀딸이다.
의사 선생님께 진료를 받고나서, 호흡기 치료를 받고 있는데 아까 손녀딸에게 소리 질렀던 그 아이가 진료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 아이의 울음소리가 진료실 밖까지 흘러나왔다. 진료실 문을 벌컥 열고, "시끄러워~~~~!"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나는 상식과 순리를 아는, 지극히 이성적인 어른이므로. 아무튼 그 아이기 그렇게 소리를 질렀어도 우리 손녀딸은 그 어떤 타격도 받지 않았음이 분명하기에, 뿌듯하다.
손녀딸을 안고 약국으로 가면서, 할머니한테 사과하라고 했더니 할머니 얼굴은 보지도 않고, "미안해요."라는 말을 한다. 할머니를 보고 말하라고 해도, 한사코 보지 않는다. 자존심 때문일까? 네 살배기에게 너무 강요하는 것도 좋지만은 않을 듯해서, 그쯤에서 마무리했다. 어쨌든 사과를 했으니까 말이다.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오늘은 무지개 실내화를 신겠단다. 차에 있는 무지개 실내화를 들고 가, 신발장 앞에서 갈아 신으라고 했다. 그런데 도통 갈아 신을 생각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다. 하는 수 없이 내가 갈아 신겨 주었다. 신발 갈아 신기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을 텐데, 어쩐 일인지 오늘은 아예 할 염두를 내지 않는다. 혼자 할 수 있도록 계속 격려하고 이야기하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
손녀딸이 어린이집 로비로 들어가니, 마침 엘리베이터가 도착해 있었다. 손녀는, 지체 없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쏙 들어갔다.
손녀딸을 하원시키러 아내와 함께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조금 늦어, 3시 50분쯤 도착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주차할 공간 없다. 어린이집 주변 도로를 두 바퀴나 돌았는데도 주차 공간이 생기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근처 교회 주차장에 차를 대고 손녀딸과 아내를 데리러 갔다.
오늘은 손녀딸이 수학 놀이터에 가는 날이라 손녀딸을 태우고 딸네 집에 도착하니 이미 딸내미가 퇴근해 집에 와 있었다. 집에서 잠깐 놀다가 아내는 그림 그리러 미술 학원으로, 손녀딸과 나와 딸내미는 수학 놀이터로 향했다. 평소처럼 뒤에서 밀어줄 수 있는 세발자전거에 손녀딸을 태웠다.
수학 놀이터로 가는 내내 손녀딸은 자전거 위에서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는다. 쉬지 않고 노래를 불러대서 무슨 뮤지컬 공연을 보는 듯했다. 또 몸을 이리저리 비트는 통에 자전거에서 떨어질까 봐 염려가 될 정도였다. 나와 딸내미가 아무리 주의를 주어도 좀처럼 그만두지를 않는다. 떨어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자전거를 밀어주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손녀딸의 모든 행동이 나에겐 예뻐 보이기만 한다. 할아버지란 사람에게는 손녀딸의 모든 행동을 예쁘게 보게 하는 DNA가 내재되어 있는 게 분명하다.
어느덧 수학 놀이터에 도착했다. 손녀딸에게 내일 보자며 할아버지에게 뽀뽀해 달라고 했더니, 나를 꼭 끌어안고 볼에 뽀뽀를 해 준다. 하루의 피로가 일순간에 쏴아아, 썰물처럼 사라진다. 손녀딸과 딸내미는 수학 놀이터 안으로 들어가고 나는 집으로 향한다. 퇴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