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어도 더 나아가고 말테야.

[ep-10]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 (2)

by Rick

나는 더 이상 젊지 않음을 느낀 어느 날부터 지금까지 은퇴 후의 즐거운 삶을 상상하며 유쾌한 준비들을 해 나가고 있었다. 내가 하고 있던 여러 준비들 중엔 재미있는 시도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중 크루아상을 만들고 먹는 일은 내게 너무나 큰 즐거움이었다. 지금도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나이에 이른 아침부터 반죽을 치고 크루아상을 굽고 버터 냄새로 가득 찬 가게를 열어 어느 작은 골목길의 아침을 깨우는 상상은 그 어떤 것보다 나를 즐겁게 한다.


내겐 세 살 터울인 남동생이 있다. 우린 성격은 180도 달랐지만 늘 좋아하는 것이 비슷했다. 그리고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많은 것들 중에서 빵은 우리의 대표적인 공통분모였는데, 동생과 내가 다녀본 수없이 많은 빵집 중에서 크루아상이 가장 으뜸인 곳은 단연 양윤실 셰프님이 운영하시는 “The Old Croissant Factory”였다. 우리딸이 어릴 때부터 우리는 이곳의 크루아상을 먹기 위해 근처 호텔을 잡아 하루를 묵고, 다음 날 아침부터 줄을 서는 수고를 기꺼이 감내하곤 했었다. 당시 올크팩은 기본 웨이팅이 2시간일 정도로 인기가 많은 빵집이었다. 영국의 어느 골목길 안의 오래된 빵집을 연상케 하는 인테리어와, 가게 밖에서도 셰프님이 빵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어 기다리는 시간도 지겹지 않았다. 무엇보다 빵들이 오븐에서 나오는 시간대가 되면 그 일대가 온통 버터 향으로 번져 나갔는데, 그 느낌은 묘하게 이국적이었다.


“아, 이 정도의 크루아상을 구워낼 수 있다면, 설사 사람들이 몰라주고 나 혼자 다 먹어야 해도 난 행복할 것 같아.” 내가 처음 양 셰프님의 크루아상을 먹어보고 내뱉은 말이었다.


유독 버터 향이 진하게 나는 이 크루아상은 금빛에 가까운 골드 브라운 색깔이었는데, 특유의 바삭한 식감을 가졌음에도 버터의 촉촉함을 그대로 품고 있었다. 특히 바사삭하고 한입 베어 물면 떨어지는 크루아상 가루들과 꾸덕한 발로나 초콜릿이 발려진 초코 크루아상은 언제나 생각만으로도 침이 고이게 했는데, 나는 이곳을 정말 좋아했다.


당시 동생은 잘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가슴 설레는 일을 하겠다며 카페 오픈을 준비 중이었는데, 나는 동생의 그런 저돌적이고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가장 앞장서서 응원했다. 그런 동생에게도 일명 “올크팩”의 크루아상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나 또한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엔지니어로서의 커리어를 마무리할 시점이 되면 자그마한 동네 빵집 사장님이 되는 것이 목표였던 터라 더더욱 그랬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우연히 SNS에서 곧 올크팩의 운영을 중단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마도 혼자서 빵을 만드는 모든 공정을 소화하며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올크팩을 키워오신 셰프님도 조금은 휴식이 필요하다고 느끼셨는지도 모르겠다.


올크팩의 마지막 영업 날, 비 오는 홍대 뒷골목 거리가 버터 향으로 가득 채워지자 올크팩에서는 마지막 크루아상의 판매를 시작했다. 비록 올크팩을 추억하는 많은 사람들로 인해 셰프님의 마지막 크루아상을 먹어볼 순 없었지만, 우린 셰프님께 정중히 인사를 드렸고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을 남기며 어쩌면 마지막이 될 그 골목의 정취를 꾹꾹 눌러 담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형, 혹시 셰프님한테 연락해서 크루아상 만드는 법 좀 알려 달라고 하면 알려주실까?” 갑작스럽게 물어보는 동생에게 난 어림도 없는 짓이라고, 생각도 말라고 얘기했다. 당시 나는 사실 빵 자체의 맛도 맛이지만 그 빵집이 가진 스토리를 좋아했었다. 유행을 좇아 비슷한 빵을 생산해 내는 수많은 빵집들 중에서 자신만의 소신과 스토리를 가진, 장인의 아우라를 풍기는 그런 빵집들이 분명히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그 시절 올크팩이 그랬고, 쉐즈롤이 그랬다. 오랜 시간에 걸쳐 자신만의 레시피를 가다듬고 그것이 가진 초심을 지켜 나가는 것. 우리는 이런 분들을 장인이라 부르기에, 이런 분들이 레시피를 다른 누군가에게 가르쳐 준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일이었다. 무엇보다 레시피를 배운 들 그 레시피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들, 고민과 정진의 시간들까지 흉내 낼 수는 없기에 나는 단호히 “어림도 없는 짓”이라고 단정 지었었다.


하지만 이런 내 말과는 다르게 나는 진정 궁금했다. 레시피를 떠나 셰프님이 걸어오신 그간의 과정이 궁금했다. 당시 올크팩에서는 시그니처인 오리지널 크루아상과 초코 크루아상 말고도 다양한 페이스트리로 만든 독특한 빵들이 판매되고 있었다. 뺑오쇼콜라, 아몬드 크루아상, 그때그때 바뀌는 다양한 재료들로 토핑 되어 있는 브리오슈는 너무나 맛있었는데, 만들어지는 빵 하나하나에서 다양한 재료의 향연이 느껴졌다.

“아, 이런 재료는 이렇게 먹는 거구나.”

“아, 페이스트리 안에 페페로니, 훈제햄, 생올리브가 섞이면 이런 맛이 나는구나.”

나는 결국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래, 네 말이 맞아. 나 아무래도 셰프님을 만나봐야겠어. 물어볼 게 너무도 많아. 그래, 뭐가 불가능하겠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잖아. 좋아하는 게 궁금해지는 것은.”


살아가다 보면 바쁜 일상 속에서 보석같이 설레는 순간들을 가끔 만나게 된다. 이는 나이가 들수록 자주 와주지 않는, 매우 소중한 경험이다. 내겐 올크팩의 크루아상이 그랬고, 그날 좁은 홍대 골목길을 가득 메운 버터 향이 그랬다.


“형, 셰프님 만나기로 했어. 이번 주 목요일 퇴근 후 어때?”

반가운 소식이었다. 나는 회사 엘리베이터 홀에서 전화를 끊고 좋아서 방방 뛰었다. 그리고 마치 토크쇼의 사회자가 된 것처럼 질문거리를 잔뜩 준비했다. 언젠가 내 빵집을 열어 그곳과 같이 늙어갈 상상을 하고 있는 내겐 레시피보다 셰프님이 어떤 분인지, 어떻게 홍대 뒷골목의 가게를 가꿔오셨는지가 훨씬 더 궁금했다.


우린 앉은자리에서 4시간을 넘게 대화했다.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셰프님도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왜 빵을 배우려고 하는지를 더 궁금해하셨다. 지난 10년간의 셰프님의 시간 속에는 우리가 4시간으로는 차마 다 읽을 수 없는 깊이가 있었지만, 누구보다 식재료를 사랑하고 탐구하는 모습에 깊은 울림을 받았다.


“너무나도 많은 재료가 있어요. 우리가 그 재료의 특색과 장점을 모를 뿐이에요. 그 재료들을 열심히 공부하다 보면 처음엔 비슷하게 시작을 해도 10년 후에는 두 분만의 크루아상을 만들 수 있을 거예요.”

사업을 떠나 제빵에 대한 열정으로 채워진 그날의 대화는 나에게 너무나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날 이후 우린 몇 번 더 셰프님을 뵈었고, 끝끝내 셰프님을 설득하여 크루아상을 배울 기회를 얻었다.


아무것도 안 했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를 순간들이 모여,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의 가치 있는 순간이 되는 마법 같은 일들이 일어난다. 우린 그저 삶의 한복판에서 그 과정을 즐기면 된다.


그 후 동생은 새로 카페를 오픈하기로 결정을 했지만, 나는 이내 내가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어쩌면 엔지니어로서 하고 싶은 일이 남아서였을 수도 있고, 어쩌면 크루아상을 일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좀 더 두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여전히 뿌옇던 제빵사로서의 내 모습이 조금은 진해졌다는 것이다.


그날 이후의 나는 여전히 야근에 시달리며 설계도면과 씨름하고 있지만, 그 언젠가의 나는 오늘을 추억하며 좁은 골목길을 버터 향으로 가득 채우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언젠가가 될지 모르는 그 순간은 반드시 온다. 오늘의 나는 그냥 그날을 위해 그 과정을 열심히 즐기면 된다.


그리고 현실의 병과 싸우고 있는 지금의 나도, 그 미래가 오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난 이미 그 과정을 흠뻑 즐기고 있는 중이기도 하고, 그 미래는 덤으로 따라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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