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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반짝 Sep 16. 2024

명절이 별로인 이유

- 여전히 서로 다름을 확인하는 날.

추석이라기보다는 하석이 맞을 것 같은 덥고 더운 2024년 9월 16일, 원래대로라면 시댁이든, 친정이든 둘 중 한 곳에 가 있어야 할 비루한 몸뚱이가 현재 있는 곳은 사무실이다. 9월 당직표가 나왔을 때 나도 모르게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던가...


결혼 후, 열 번째 명절을 맞고 있음에도 아직까지 연휴기간의 당직근무는 달다.

올해도 운 좋게(?) 합법적 시댁 미방문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기에 당직을 바꿔준다는 후배의 말에 그런 배려 따위는 필요 없다고 했더랬다.


생각해 보면 애초에 나는 살가운 며느리가 아니었다.

매일 시부모님께 전화로 안부를 묻거나, 매주 시댁에 들러 손주들 재롱을 보여주는 이쁨 받는 며느리로서 열과 성을 다하는 주변인들에게 시댁과의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베스트라고 말하는 신여성이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 아버님이 재밌게 보고 계신 티브이 채널을 남편이란 사람이 아무 말도 없이 돌려버리는 것과  또 그런 발칙한 행동에도 평화롭기만 했던 집안.


어머님께서 내 냉면 위에 고명으로 올려진 삶은 계란 반쪽을 아무런 말도 없이 건져내고, 예상치 못한 스틸에 놀라 고개를 드는 순간 시댁 식구들의 모든 계란들이 밖으로 나와 있는 것을 보며 말없이 고개를 숙였던 장면.


나는 이 두 가지 상황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었다.

늘 티브이 리모컨의 주인은 아빠였던 우리 집에서는 절대로 가당치 않은 함부로 채널 돌리기가 이 집에서는 별일이 아니었던 것과, 맑은 냉면 국물을 좋아했던 시댁 식구들의 식성에 강제로 맞춰지기 위해 육수에 살살 풀린 노른자를 좋아하던 나의 취향은 살포시 무시되었던 것.


말 그대로 문화충격이었지만 당시 난 어떤 반발과 질문도 하지 못했다. 그 이후로도 기억하지 못하는 일련의 일들을 겪어오며, 쌓아오며 매번 대꾸하거나 반기를 들지 못했고 가지각색의 다름과 다름들은 그저 그대로 굳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명절이 돌아오면 어김없이 굳어진 다름을 확인하는 시간을 맞게 된다.

어떨 땐 여전히 놀랍고 이해가 안 되지만, 그렇다고 여전히 그 모든 것들에 물음표를 붙이지는 않는다.

그저 그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 적응하고 있을 뿐.


명절은,

"그 집과 우리 집은 조금 달라요."

"너랑 나랑은 조금 달라요."

"뭐 그냥 그렇다고요.. “를 소리 없이 외치는 날,

난 그래서 여전히 명절이 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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