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살반짝 Sep 18. 2024

별일 없지만 아무 일도 없는 건  아닌 하루

입성(入城)


2012년, 가을 무렵이었으니 아마 이맘때쯤이었던 것 같다.


그날은 지방직 공무원시험 필기 합격자 발표날이었다.그때까지만 해도 합격일자만 공지될 뿐 정확한 발표 시간은 알려주지 않았기에 정적과 긴장만이 가득 차 있는 집안에서 나는 아침부터 컴퓨터 앞에 앉아 반복작업에 특화된 기계처럼 새로고침 버튼을 누르고 또 누르고 있었다.


극도의 긴장감 탓에 배가 고픈지, 오줌이 마려운지도 느껴지지 않던 몇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합격자 명단이 화면에 뜨는 순간, 정글의 맹수처럼 미친 듯이 스크롤을 내리며 내 이름을 찾기 시작했다. 마우스 휠을 굴리는 손가락이 덜덜 떨려 삑사리가 몇 번이 나고 눈앞에서 심장 모양을 확인할 수 있겠다 싶을 만큼 가슴이 튀어나올 듯 쿵쾅거렸다.


마침내 움직임을 멈춘 두 번째 손가락, 초점을 못 잡고 흔들리던 눈동자는 어느 한 곳을 뚫어져라 응시한다. 분명 내 이름이었다. 다섯 명의 합격자 명단 끄트머리쯤, 익숙한 수험번호와 함께 모르려야 모를 수 없는 이름 석자가 검은자위로 막 달려 들어왔다.


그때부터는 모든 장면이 슬로모드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하흐~아압~끼여~~ 어억!”을 외치며 방 밖으로 뛰어 나갔고, 거실에서 뚫어질 듯 내 방문만 응시하던 아빠도 그제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우워어어어아악 하으압껴어억이다아!”라고 소리 지르며 춤까지 덩실덩실 춘다. 내 인생 30년 만에 보는 아빠의 댄스였다. 별로 알고 싶어 하지도 않을 지인들에게 굳이 전화를 돌리며 나의 공무원 필기시험 합격소식을 전하던 아빠의 목소리와 함께 그날의 스펙터클한 슬로비디오는 종료된다.

 

지금이야 인기가 시들해져 젊은이들에게 외면받는 직업이 되었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9급 공무원 합격은 집안의 경사이자, 최고의 효행이자, 고시원 쭈구리였던 서른 살 공시생을 단숨에 당대 최고의 신붓감으로 승격시키는 말도 안 되는 훈장이었던 것이었다.


그토록 꿈꾸던 합격의 꿀맛을 혀끝에 장전하고 2013년 1월 14일, 나는 공무원 세계로 입성(入城)한다.



현생을 살고 있는 우리 MZ세대들이 이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무슨 고시라도 패스한 줄”하며 어이없어 할 수도 있겠지만 그때의 분위기는 정말 이랬다는 것을 알아주길^^




작가의 이전글 명절이 별로인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