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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반짝 Sep 20. 2024

별일 없지만 아무 일도 없는 건 아닌 하루

산불 1


봄빛이 눈부신 3월의 주말이었고, 나는 아무도 없는 면사무소에서 혼자 당직근무 중이었다.


여느 때처럼 별일 없이 당직이라는 숙제 하나가 끝나가고 있어 기분이 좋았던지, 입에선가 코에선가 어느 구멍에서 나오는지 모를 노래를 흥아, 흥아 부르고 있을 때였다.


"뚜르르르르릉"

한참 흥이 오른 노래를 끊는 전화벨소리.

주말에 관공서로 오는 전화는 기분 좋은 소식을 전해주는 경우가 단 한 번도 없었기에 일단 울리는 수화기를 한껏 째려본 후, 별일 아닐 거라는 심호흡을 했다.


"감사합니다. 안녕면사무소 김..."

나의 친절한 자기소개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어쩐지 다급해 보이는 남자의 목소리가 수화기의 촘촘한 구멍을 뚫고나와 귓속을 파고들었다. 아마도 나와 같은 모습으로 흥아, 흥아 주말 숙제를 마무리하고 있었을 옆 동네 면사무소 당직자였다.


"행복면사무소 당직 박편안인데요, 지금 그쪽면이랑 우리면 경계쯤 되는 산에서 연기가 피어올라서요, 아무래도 그쪽 관할지역 같은데 확인을 좀 해보셔야 될 것 같아요."


'산불'이라는 단어가 나왔고, 또 ‘관할'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공무원이 가장 두려워하는 단어 두 개가 한꺼번에 나와버린 것이다. 임용 후 그 두 가지 단어를 그것도 내가 당직근무 하는 날에 들어본 건 처음이었다.


잠시 멍을 때리다 정신을 차리고, 뭐부터 해야 할지를 떠올렸다.

"보자, 보자, 보자...."

뭘 그렇게 봐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입에서는 계속 한 단어만 반복해서 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게 알 수 없이 중얼중얼 뭔가를 보다가 보다가, 우선 연기 나는 지역을 담당하는 산불감시원에게 상황 확인을 부탁했고 잠시 후 산불이 맞는 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즉시 단체 비상 문자를 날렸고, 이로써 가족과 함께 한가로운 주말 오후를 보내고 있을 면사무소 모든 주사님들의 평온한 시간을 빠짐없이 박살 내며 당직자로서의 본분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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