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워서라도 운전하게 되는 이유
운전을 싫어합니다. 교통사고가 가져오는 골치아픔을 경험적으로 혹은 직업적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꽉 막힌 도로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것이 마치 감옥에 갇혀 있는 것처럼 답답하게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능한 경우에는 무조건 걸어다니죠. 그렇지만 서울에서 걷는다는 행위는, 때로는 끊임없이 자신의 안전을 위협받거나 타인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를 목격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위협은 어린이와 걸을 때 더욱 가중되며, 어린이보호구역이라 해서 이러한 위협이 경감되지도 않습니다.
위 두 장면은 제가 일상적으로 보는 장면들입니다. 둘 다 어린이보호구역이고 비보호 좌회전/우회전이 가능한 장소인데, 횡단보도 정지선을 제대로 지키는 차들이 정말 단 하나도 없습니다. 이 때문에 아이들은 위험하게 차도로 통행하거나 차량 사이를 곡예하듯 지나가야 하고, 다른 차선의 차량은 이렇게 건너다니는 아이들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종종 위험한 상황이 연출되곤 합니다.
문제는, 위와 같은 운전방식이 한국에서는 적법한(보다 정확히는 법적으로 제재할 수 없는) 행위라는 겁니다. 도로교통법은 어린이보호구역 내 횡단보도 앞에서 일시정지할 의무를 부여하고 있으나, 이러한 의무는 '일시 정지하기만 하면' 충분한 것이므로 위와 같이 횡단보도를 점령하고 서 있는 차량을 단속할 충분한 근거가 되지 못합니다. 관점을 바꿔 불법주정차로 신고하려면 동일 배경에서 1분 간격으로 차량 사진을 촬영해야 하는 '미션 임파서블'을 클리어해야 하는데, 사진을 찍는 사이에 저 차량은 유유히 좌회전/우회전하여 사라져 버리겠죠.
혹자는 '비보호 좌회전/우회전을 하려면 미리 시야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횡단보도 침범은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항변을 미리 의식이라도 한 듯, 위 교차로에는 이미 커다란 반사경이 (심지어 양방향으로 두 개나) 설치되어 있습니다. 즉, 반사경만 정상적으로 주시한다면 굳이 횡단보도를 침범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시야 확보가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정지선 뒤에서 반사경 따위를 쳐다보면서 보행자 눈치를 보기보다는, 횡단보도 위에 떡하니 서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다가 보행자 따위 신경쓰지 않고 홱 가버리는 것이 운전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편하지요. 때문에 오늘도 저 횡단보도를 통행하는 모든 차들은 버젓이 횡단보도를 점령한 채 비보호 진행을 위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립니다.
상황이 이러한 경우, 학부모에게 주어진 해결책은 두 가지입니다. 초품아로 이사가거나, 아니면 나도 운전자로서 횡단보도를 점령하거나. 전자보다 후자의 비용이 훨씬 더 저렴하므로 많은 학부모들이 운전대를 잡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또 하나의 횡단보도가 차량으로 점거되고, 아이들은 또 곡예하듯 횡단보도를 건너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