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지킴이학교 <동해와 독도를 지키는 어린이 전사>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독도채널 e 시즌 1. 제2부.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의 날>을 아이들과 시청하였다.
1900년 10월 25일, 잃어버린 딸을 찾는 한국인이 있었다. 그리고 서울 한복판에서 통행을 막으며 사격훈련을 하던 일본군들이 있었다. 얼마나 공포스러웠을까? 일본은 총과 칼을 앞세워 경부선의 이권을 챙겼다. 당시 프랑스의 소유였던 경의선도 차지한 것이다.
그리고 1895년 명성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에 참여한 자객이자 식민사관의 기초를 제공한 역사저술가, 언론인, <기쿠치 겐조>가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고종에 대해서 “왕궁의 나무인형처럼 침묵한 채
어떠한 일에도 관여하지 않았다. “고 표현했다.
그러나 고종은 나무 인형이 아니다. 왜냐하면, 일본인의 무단 거주와 벌목으로 파괴된 울릉도를 보며 울릉도에서 일본일을 추방하려는 대한제국의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빼앗긴 게 독도인데 지키기 위해 반격했던 것이다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가 울릉도 거주를 묵인하고, 세금까지 거두었다고 하는데, 한국 정부는 세금이 아닌 벌금이라 반격한다. 그리고 일본 정부는 외교선교사는 가만히 두고 일본인만 소환하느냐 주장하는데, 한국 정부는 울릉도민을 침탈하고 벌목하는 일본인과 서양선교사가 같냐며 반격한다.
1900년 10월 25일, 고종황제는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를 제정하고 이틀 후에 반포한다.
울릉도를 울도로 개칭,
도감을 군수로 승격하고
그 관할구역은 울릉전도와
죽도, 석도를 포함한다.
독도는 우리의 섬이고 원명은 돌섬이다.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의 석도는 독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일본인도 알고 있던 것이다.
1900년 10월 25일은 독도를 빼앗으려는 일본과 독도를 지키려는 한국이 있었다. 독도가 근대 법률로 우리에게 다가온 날이 1900년 10월 25일이다.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의 날이 바로 10월 25일이다. 그리고 오늘날 10월 25일을 독도의 날로 정하고 있다.
식민사관의 나무 인형이 아니라, 빼앗기지 않으려 법으로 정하고 치열한 싸움을 한 날이 1900년 10월 25일이다.
영상을 통해 10월 25일이 독도의 날로 더 의미 있게 느껴졌다.
독도를 빼앗으려는 일본
그리고 지키려는 한국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의 날이
바로 10월 25일!
독도의 날이다!!
아이들과 함께 본 내용을 이야기하고 이렇게 정리하였다.